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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순정 Jun 17. 2019

블랙홀 너머에도 세상이 있었네

강제로 인생 2막 - 암환자의 삶

 


   1차 진단(암 여부) - 수술 - 2차 진단(암 타입과 이후 치료방향)을 마친 뒤


 항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초보 암환자로서 감히 투병 역사를 들여다보건대,

 가장 힘든 것은 저 '2차 진단'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기다림과 불확실성이었다.


   나와 같은 무지한 환자들은 의례히 대형병원 '교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진료실을 방문한다. 사실 그 진료실 '방문'도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위 빅 3 병원 저명하신 교수님들은 첫 진료 예약 잡는데 한두 달, 또 수술받는데 그로부터 두세 달. 이러다 내 몸을 떠다니는 암세포들이 여기저기 다른 장기에 들러붙어 전이가 되고, 수술받을 날 기다리다 그전에 황천길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해 보았을 것이다.



    몇 날 며칠을 검색해 본 '유방암 명의' 리스트는 쓸모가 없었다. 나는 그 저명하신 교수님들의 알현 기회를 그저 기다리고만 있기에는 너무 성질이 급했다. 명의 알현을 포기하자 운 좋게도 빅 3중 한 곳에 첫 진단으로부터 나흘 뒤에 진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조직 결과 검사지와 슬라이드 자료를 챙겨 새벽같이 상경길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 더부살이를 하게 된 친정집에서 오송역까지 30분. 다시 SRT 열차를 타고 수서역까지 40분. 역 앞에서 5분 남짓 기다린 뒤 병원행 셔틀버스를 타면 병원 본관을 거쳐 암 병동까지 데려다준다. 어렵지 않은 길이다. 소요시간은 두 시간 남짓. 병원을 자주 오가게 될 테니 이동의 편리성과 소요시간은 꽤 중요하다.



   생전 처음 방문해 본 '암병동' 이란 곳은 예상보다 훨씬 크고, 현대적이고, 쾌적했는데 그것 또한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 고약한 병이 엄연히 현실세계에서 세련된 모습으로 내, 외부를 꾸미고 '서비스' 차원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니 뭔가 허를 찔린 기분이랄까. 남편과 마주 앉아 미국행 비행기 표를 취소하던 그 순간이 스쳐갔다. 끝없는 우주를 허우적거리며 떠돌다 재수 없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 너머에 무언가 또 있었구나.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안도감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나. 거대한 통유리로 해가 가득 쏟아지는 최신식의 암병동 건물 안에 분주히 움직이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그동안 전혀 생각도 못했던, 존재 자체도 상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에 얼떨떨하게 발을 들이미는 순간이었다.



   기존의 세상에서 개인을 규정짓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 사람의 성격, 외모, 직업, 지식의 깊이 혹은 세계관. 이루 헤아릴 수도 없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어떤 사람과 만나 소통하는지에 따라서도 수시로 변화한다. 일을 할 때는 기자로, 그러다가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면 순식간에 엄마로 변신했었다. 미국으로 거처를 옮긴 뒤부터는 아시아인 이민자이자 나이 든 학생으로 살았지만 '고 기자'를 찾는 제보 메일도 여전히 길을 잃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세계에서의 '개인'을 나누는 범주는 비교적, 아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직업군은 단 세 종류에 불과하다: 환자, (의료 등 각종) 서비스 제공자, 그리고 보호자. 모든 행위의 목적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환자의 상태를 좋게 만든다; 육체, 정신, 기분 등등 그 무엇이든!" 이 목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환자의 개성은 그의 정신이 아닌 그가 가진 암세포에 의해 규정된다. 암 종류, 전이 여부, 진행 속도 등등. 이름과 생년월일도 여전히 잊히지 않고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것들은 순전히 환자 착오와 그로 인한 잘못된 진료를 방지하기 위한 '식별수단'으로 그 지위가 철저하게 강등되었다. 호랑이의 가죽처럼, 사람이 죽어서도 남기고자 하는 그 고매한 '이름'의 사회적 함의는 이 세계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통과 의례도 존재한다. 그 피로도와 비용도 만만치 않다. 각종 피검사와 방사선 촬영, 초음파 검사, CT, MRI, 뼈스캔까지. 오며 가며 주워들은 병원에서 한다고 하는 대부분의 검사라는 검사는 다 하는 데 하루가 꼬박 소요된다. 1박 2일로 입원해서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과정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고 체력 소모도 어마어마하다. 이 검사실에서 저 검사실로, 중간중간 수납을 위해 원무과로, 또 검사복 환복을 위해 탈의실로.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다. 물을 포함해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하는 24시간 이상의 금식과 가련한 내 위장의 요동침은 덤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사들 중간에 유방외과 외래 진료 대기실에 들어섰다. 의료진은 잠시 말 걸기도 미안할 정도로 다들 바쁘고, 환자들은 마치 정지영상처럼 멈춰있다. 진단을 받은 날의 나와 남편처럼, 같은 공간에 머무르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에 처음 들어온 신입 환자는 흘깃흘깃 다른 환자들을 곁눈질하며 관찰하기 바쁘다. 모자 쓴 환자, 두건 쓴 환자, 가발이 자연스러운 환자, 민머리에 후드티만 뒤집어쓰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젊은 환자, 아기를 데리고 온 환자, 엄마랑 같이 온 환자, 남편이 손을 꼭 잡아 주고 있는 환자, 그리고 나.



   10분 단위로 잡힌 예약 일정에 함께 이름이 올려져 있는 환자는 세 명씩. 환자들이 들고 나는 시간도 그저 앉아서 기다리며 허투루 보낼 수 없는지 의사는 나란히 붙어 있는 두 개의 진료실을 오가며 환자를 만난다. 이 3분 남짓한 시간을 위해 나를 비롯한 이 많은 환자들은 새벽같이 집을 출발해 끼니를 참아가며 무수히 많은 검사실을 전전했구나. 이렇게 힘들게 의사를 만나 알고자 하는 것은 모두 똑같다.



    "얼마나 나쁜가요? 몇 기인 가요? 완치될 수 있는 거죠?"


    "조직검사결과지를 보면 오른쪽에 2cm가량 악성 종양이 있는 걸로 나오네요. 타 장기 전이는 없는 것 같고, 림프절 전이 여부는 수술을 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촬영해보니 왼쪽에도 미세석회화가 보이니 확대 촬영 한번 더 하고 가세요. 왼쪽에 수술 전 조직검사를 다시 하면 일정이 늦어지니까 일단 오늘 수술 날짜를 잡고 양쪽을 동시에 열어서 제거하도록 하죠. 정확한 병기나 치료 방향은 떼어낸 암세포를 조직 검사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워딩 그대로는 아니지만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의사의 답변은 이러했다. 궁금한 것에 대한 답변은 하나도 없었다. '만나면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혼자서 쌓아 올려온 근본 없는 믿음이 무너져버린 충격에 어버버하고 있는 사이 3분은 물 흐르듯 흘러가버렸다.


   진료가 끝나자 간호사가 기다리고 있는 상담실로 안내받았다.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한다. 어쩌겠는가, 일단 열어봐야 안다는데. 환자는 지식이 없으니 힘도 없다.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무지한 자의 결정권은 어린아이가 무작정 부리는 생떼처럼 권위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의 기다림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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