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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아나 Mar 16. 2021

12월의 그날.

12월의 마지막 즈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물씬 풍기는 도로 위, 서글픈 냉기는 주인 없는 공간들에 온통 채워져 있다.

어둠의 저편에서 밀려오다 보이지 않는 공간 너머로 떠나가는 오토바이 한 대.

흉폭한 굉음을 내지르다 주황빛 흔적으로 남아 나에게서 멀어진다.

바람이 분다. 정해진 패턴에 맞춰 처연하게 깜박이는 신호등은 추운 기색 하나 없이 그곳에 서서 본연의 역할을 다 한다.

많은 것들을 꿈꿨지만 올해 2020년은 어느 것 하나 이룬 것이 없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내리는 모래알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려고 했던 일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했었던 것들은 여기저기 욕이나 얻어먹기 일수.

작년만 같아라 싶었던 모든 계획들은 어림 반푼 어치 없는 망상 쪼가리에 불과했었나 보다.

바람이 분다. 마주하며 불어오는 동천변의 바람은 매섭게도 휑하니 비어 있는 내 옷깃 사이를 서스럼 없이 파고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옛 속담처럼 바람과 나는 매우 깊은 인연에 속해 있나 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매해 12월의 마지막 날 즈음엔 항상 밖으로 나와 추위와 사투를 벌였다.

그런 기억이 난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까지도.

이제는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코끝 찡하게 매달려 있는 냉기들을 옷깃 여미고 털어낸다.

언젠가 힘들었던 모든 일들을 추억하며 그때는 그랬지 생각하며 웃고 떠드는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

과연 그 날이 오기는 하는 건지. 올 수 있는 날이 맞는 건지.

생각에 상실을 더하고 상상에 상심을 더해가는 지금의 기억들이 어제라는 과거로만 남아있기를.

이전의 기억들을 추억하기보다 그날의 기억들을 찾는 걸 포기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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