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흐리멍덩함으로 가득 찬 구름 사이에서 미적지근한 빗방울 한 무더기 후두둑 떨어진다.
미련한 만큼 미련도 많이 남는다던가.
너와 함께라면 무얼 해도 마냥 좋았던 나. 그런 나와 온종일 같이 있어 준 너에게 아무것도 준비 못 해, 아무것도 주지 못해 미안했다.
생각 없이 잠들 수 없는 밤들은 가슴속에 쌓여만 간다.
과거에 남겨 놓고 시간이 훔쳐 간 줄 알았던 기억들 덕분에, 끝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그 날이 어제처럼 선연하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미련한 하늘 따위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홀연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너머로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 홀로 있던 어제의 계절들을 어렴풋하게 지워간다.
창밖으로 뻗어진 손바닥 위로 고요함이 녹아 있는 비가, 그리움에 흠뻑 적은 비가 후두둑하고 떨어진다.
내 손을 지나쳐 떨어지는 비는 땅바닥에 닿으며 조용히 고였다.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이면 땅은 가만히 젖어갔다.
오늘도 땅 위로 비가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