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액정 너머에 머물러 있는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강물 위에 내려앉아 눈꽃처럼 일렁이는 노을빛은 은은하게 넘실거리는 너울 아래로 잔잔하게 부서지고, 저 너머로 번져 간다.
바삭거리는 비늘처럼 부스스하게 돋아나 있는 빛의 자국들은 여전히 눈부셨고, 내 눈동자 속에서 찬란할 정도로 아스라이 반짝이고 있다.
찰나.
미간이 찌푸려진다. 너무도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운 모습 덕분에 이마 위로 현실적인 줄이 선명하게 딱 3개 그어진다.
내 시선의 끝과 시작, 그사이 애매한 공간 즈음으로 앙상히 비어버린 나뭇가지 한 뭉텅이 잔잔한 바람에 흔들린다.
불어오는 바람의 손길 덕분인지 나뭇가지 끝자락마다 봄을 알리려는 듯 초록빛 몽우리가 돋아나 있다.
포근함에 이끌리어 강가로 다가서는 나의 발에 무언가 미끈한 것이 밟혀 든다.
자연스레 떨궈진 고개 아래로 보이는 바닥엔 이름 모를 풀과 잎사귀들이 빽빽이 자리했고, 매끄러운 풀밭 사이에서 메아리치듯 웅웅거리는 바람들은 서스럼 없이 내 목덜미와 어깨너머로 밀려든다.
강가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다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를 으쓱하고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던졌다.
무언가 뿌듯하고 시원스러운지 흩날리는 외투를 팔 안쪽으로 휘휘 감아 걸치고서 남자답게 어깨를 들썩거려도 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머물렀던 세상은 그다지 풍요롭지도, 아름다웁지도 않았다.
다만, 빛살이 스며든 렌즈를 통해 보이는 황홀한 풍경은 내 눈길을 끌고 나의 넋을 잃게 만들기 충분했다.
찰나.
허나, 이내 서글퍼졌다.
단순히 오늘 하루의 허기를 김밥 한 줄로 채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의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기만을 바랐다. 랄까.
카메라에서 눈을 뗀 순간, '찰나'는 노을빛 한껏 머금고서 내 곁을 스쳤다 떠밀려가는 강물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석양에 흠뻑 적셔진 채로 멍하니 순간에 머물러 있던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지만 그 시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지러이 흔들리는 가지들. 멀어지는 자동차의 요란한 바퀴 소리. 먹먹한 공간들에 또 한 번 하루가 조용히 사그라든다.
철 모자라던 그 시절. 20년 전 즈음의 하루는 천천히 흘러갔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손을 꼽아가며 줄어드는 날짜를 세었다. 하루는 길었고 숫자는 느리게 줄어들었다.
별다른 이유 따위는 없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단지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었을 뿐.
허나,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넘겨지지 않았던 하루는 알 수 없는 나이를 기점으로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고, 급작스러울 정도로 서둘러 스쳐가는 하루는 미련이 남기도 전에 잊혀져 갔다.
뜨거운 사막 위에 피어나는 신기루처럼 시간이, 기억들이 허공에서 일렁이다 홀연하게 사라지고, 지워져 갔다.
느리게 가기만을 바라는 지금의 하루처럼, 아름다웠을 청춘, 찰나의 순간까지도 흩날리는 풀잎과 함께 멀어지고 뭉개져 갔다.
여전히 눈을 뜬 잠깐에 하루가 시작되고, 눈을 감는 순간에 하루가 잊혀지지만, 이제는 하릴없이 하루가 느리게 흘러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알 수 없는 언젠가로 급박하게 떠나가는 시간을, 하루를 흘러만 가게 놓아
두지만, 나의 시간이 더욱더 더디게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