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 입원한 20살 청년

by 그 중간 어디쯤

개두술을 한 상태라서 머리 한쪽이 움푹 파였다.

머리뼈가 없으니 물컹한 뇌를 보호하려 헬맷을 쓴 키 크고 잘생긴 20살 청년이다.


걸어볼까요?

여기는 어디죠?

날씨는 어때요?

힘 측정해볼게요, 다리 들어 보세요


첫 만남의 질문 후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났다.

휴~ 다행이다.


한순간의 오토바이 사고로

어떤 이는 저 세상으로, 어떤 이는 식물인간이 된다.


그 기로에서

최소한의 후유증으로 다시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그를 보며 '대체 그 선택은 누가 해 주는 것인가?' 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저 청년은 선택받아서 참 다행이다.


앞으로 다시 머리뼈를 덮는 대 수술을 이겨내야 할 테고

코에 난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할 테고

오토바이를 보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후유증에 시달리는 나날들이 반복될 테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서 천만다행이라고.

그는 생각할까.


아니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닥쳤을까

원망하면서 살아낼까.


키가 185cm은 되어 보이는데

사고 때는 안 썼던 헬맷을 병원에서는 열심히 쓰고 다닌다.

그것이 무거운 것인지, 아직 당당하게 어깨를 펴는 게 망설여지는 것인지 목과 어깨가 구부정하다.


"또 오토바이 그렇게 탈거예요?"

어느 정도 친해지고 재활치료에도 제법 차도가 보이던 날

다소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을 불쑥했다.


"아니오"


세상을 다 알 것만 같았던 나의 10대와 20대가 생각이 났다. 스쿠버다이빙도 했고 번지점프도 했고

친구 오토바이도 타봤다.

그땐 무서운 것이 없었고 모험과 도전이 좋아 보였다.

게다가 지켜야 되는 두 아들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발적 안전 주의자다.


남편이 가까운 거리 갈 때 탈 스쿠터 사고 싶다 했을 때도 극구 반대했었고, 나중에 우리 아들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면 입에 거품 물고 반대하게 될 것 같다.


결국 남편은 헬멧 쓰고 아주 작고 느린 스쿠터를 탄다.

살 때도 내가 동네 한 바퀴 타보고 오케이 했다.

헬멧 꼭 써달라 100번은 당부했다.


겁이 많아지고

기우가 많아진

지금의 내가 때로는 나조차도 낯설지만


어쩌면 찾아올지도 모르는 삶의 기로에서

나를 선택해 달라고 요구하려면

이러한 노력이라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그 중간 어디쯤에 놓인 나는 자발적 안전 주의자로 한동안 더 지내게 될 것 같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20살이 될 때까진.

둘째가 4살이니 난, 앞으로 16년인데


제발 우리 아이들은, 욕심 좀 더 내서 나보다 더 젊은 사람들은 평생 안전주의자로 살아 주면 좋겠다.

요양병원은 좀 더 나이 드신 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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