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도 안 아픈 대상포진

by 그 중간 어디쯤

우측 소뇌 그리고 연수의 경색

우리가 중풍으로 알고 있는 그 뇌경색


평소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다른 지병이 없었던 이분의 진단명이다. 매번 유쾌한 미소로 맞아 주셔서 회진 시간에 나를 즐겁게 해 주시는 이분.


하루는 간호사실에서 이 분 엉덩이 좀 봐달라고 연락이 왔다. 커튼을 치고 환자분 엉덩이를 보니 '대상포진'이 교과서 사진보다 더 리얼하게 쭉~ 포진되어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되기 전부터 이미 죽을 만큼 아프다고 배웠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온 첫말은


"안 아프세요?"였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

"그다지 안 아파요~"

"네...?"

감각이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그렇지..

이게 안 아픈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나에게 이야기하실 때도 침대에 앉은 모습이 엉거주춤 하니 분명히 아프신 것 같은데 계속 괜찮다고 하신다. 내가 약을 드려도 되지만 심해 보여 피부과 진료를 권했는데, 보호자 동행이 필요하여 말씀드리니 그제야 속내를 이야기하신다. 자식한테 걱정 끼치기 그렇게도 싫으셨단다..


설사를 좔좔하고, 장 마비가 심해 금식이 필요한데도 굳이 영양제 맞기를 거부하시는 할머니의 경우도.."영양제 싫어요"라는 말이 사실은 "자식들한테 짐 되기 싫어요"라는 말이었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처음 며칠 동안은

마냥 낯설기만 했고 내 아이 같지 않아 생경했었다.

그러다 젖을 물고 꿀꺽꿀꺽 온 힘을 다해 먹고 엄마를 열심히 찾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 아이의 엄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점점 깊어졌다. 모성이..

출산을 얼마 앞두지 않은 후배에게 그때의 기분을 이야기하면서

"있잖아, 모성은 점점 깊어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처음에 아이에게 모성이 안 생겨도 당황하지 마~"

이렇게 경험담을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부성도 모성과 크게 다르지 않아 세월에 점점 깊어지는 것일 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분들의 세월은

부성과 모성을 대체 어느 정도까지 깊게 만들었기에

출산의 고통과 맞먹는 대상포진을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장 마비 상태에서 영양제 대신 식사를 고집하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아버님, 어머님

그런 통증이 아픈 거고, 지금 이게 힘든 거예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숨기지 말고 정확히 말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치료해 드리죠.

그래야 빨리 나아서 자식들 걱정 덜 끼치지요..


그분들께 대놓고 못한 말을

괜히 허공에 소리치듯 브런치에다 끄적여 본다.


항상 대단한 우리 부모님들인데 오늘 더 대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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