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라 쓰고 오작교라 읽는다

by 그 중간 어디쯤

생이별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겠지만

이 두 분에게는 더욱 그러했던 모양이다.


3층과 6층에 각각 두 분 할머니가 계신다.


6층, 혈액암을 앓으시는 한분은 심한 관절염으로 다리가 뒤틀어져 아예 걷지 못하고, 3층의 다른 한분은 몸이 불편하지만 매일 같이 그분의 침상으로 가 커피도 타드리고 말동무도 해드린다.


회진 때는, 6층에서 두 분을 동시에 뵙는 날이 많았다.


그러던 중

코로나 19의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었다.

병원은 말할 것도 없다.


환자의 외출이 제한되고

보호자 면회가 제한되고

환자분들 간의 긴밀한 접촉은, 제한까지는 아니지만 조심해 달라 권고하게 되었다.


6층에 올라와 계신 3층 할머니를 보고, 간호사실에서 '너무 자주 오시는 건 안돼요'라고 했나 보다. 면역력이 약하니 조심해 달라는 이야기였는데 '절대 오지 마란 것'으로 착각하신 3층 할머니께서 나를 만나자마자 하소연하신다.


난 6층 할머니 주치의인데

3층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분의 부재로 인해) 진짜로 6층 할머니가 더 나빠질 것 같아 걱정될 정도였다.


애틋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병원 수칙이니 지키는 게 맞지' 라며 애써 그 바람을 모른 척하던 어느 날

커피에 물을 붓는 3층 할머니를 정수기 앞에서 만났다.

병원에서 한 장 드린 하늘색 서지컬 마스크를 쓴 그분의 눈가가 촉촉하다.


촉촉한 눈가는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나의 전문지식이 든 머리는

점막 친화성이 강한 코로나 19이니, 마주 보고 대화를 오래 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외치고 있었지만


나의 입은

"두 분이 코로나 걸리신 것도 아닌데 그렇게 까지 안 하셔도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사실이 그렇기도 했고.


고개를 살랑살랑 흔드신다.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주기 싫다시면서.

"괜찮다니까요! "

내가 한번 더 확신시켜 드렸지만

그래도.. 라며 얼머무리신다.


할머니,

그럼, 잠시만 저랑 제 진료실에 같이 가요.


진료실에 얼마 전 한 장에 3000원을 주고 구입한 KF94 마스크가 딱 1장 있었다.


저 이거 드릴게요

6층에 가실 때는 이거 꼭 착용하고

저처럼 코 부분이 뜨지 않게 꼭꼭 누르고 가셔야 해요

간호사실에는 말씀드려놓을게요

그리고 이 마스크 하시더라도 너무 오래 이야기 하시진 마세요. 두 분 다 면역이 약하...


잔소리처럼 이야기하는 손녀뻘 의사를

갑자기 안고는 엉엉 우셨다.


이미 건강을 잃어

일상까지 잃은 분들이다.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사람'을 잃은 상실감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힘든 경험이었나 보다.


그렇게 한 장의 마스크는

두 분을 이어주는 오작교가 되어 주었다.


요즘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와 세상 앞에

마음이 동요된다.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다 드러난 얼굴을

슬쩍 마스크로 가려본다.


그다음 날 마주한 두 분은 행복해 보인다.

아까 잠시 커피 한잔 함께 했다며

내 손을 붙잡고 연신 고마워요, 고마워요

나는 뭘요, 뭘요 10번씩 반복했다.


마스크, 진작 드릴걸 그랬다.

하긴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싸게 몇 장 더 구했지만 사실 그땐 나도 딱 한 장 가지고 있었던 터라 용기가 필요했었다.


적절한 때에 나와준 내 용기를 셀프칭찬해본다.

그리고 더 큰 용기를 내준 사람들 덕에 뉴스 한켠이 훈훈하게 데워진 것을 보면서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 느낀다.


마스크 행렬이 이어져 많은 사람의 오작교가 되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진짜 다리도 아닌데 기왕이면 가격 좀 뚝 떨어지면 더 좋겠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0409070048_1_crop.jpeg 돈보다 소중해진 KF94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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