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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May 10. 2020

5월 비 갠 아침 목장길 산책육아

달팽이도 함께 했답니다



어제는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이와 함께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 우리 아침 산책하러 갈까?"묻는. 이렇듯 비 갠 날씨에 숲길 걷는 걸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을 이젠 알아버린 모양이다. 어느덧 녀석이 자라 엄마의 단짝 친구가 되고,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함께하는 시간이 신기하기만 하다.


요즘은 아이를 보다 문득 '내가 태어나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나 해냈구나'하는 감동에 취해 가슴이 벅차오를 때가 있다.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고 이만큼 키워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듯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부쩍 자랐고 어른스러워졌다.


산책을 나가기 전 그의 장난감 바구니를 뒤적여 플라스틱 칼과 페브릭 청진기 그리고 긴 줄을 손에 들고는 "이것들만 있으면 내가 엄마를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 소리에 신발을 신으려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감동 눈물을 뚝뚝 떨군 것은 물론 나였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양통통볼 입술에 아무리 뽀뽀를 많이 해도 마르지 않는 이 행복한 감정들! 이제야 비로소 보람을 느끼는 부모로 살아보는 시간이 주어진 것 같다.


코로나 덕분에 인적이 드문 집 근처 목장길을 재발견한 것은 운이 좋았다. 이 길을 따라 왕복하면 30분이 걸린다. 3세 아이와 함께하는 산책으로 최적인 셈이다.
부모님께서 가꾸시는 텃밭에선 일 년 내 먹거리가 자라난다. 현재 텃밭 한켠에서는 마늘, 감자가 자라고 있다. 다음달 햇감자를 캐고, 김장용 배추와 무를 수확할 즈음이면 겨울이다.
상추 잎에 달팽이들이 함께 따라왔다. 녀석들도 촉촉한 수분을 즐기느랴 무아지경이었나 보다. 덕분에 상추에 대한 신뢰도 급상승! 더 많이 먹기 위해 두 장씩 겹쳐 밥을 싸 먹었다.


아이가 그의 동생이라 여기는 아지 빠방을 앞세우고 셋이 함께 집 뒤에 있는 목장길에 올랐다. 눈 앞엔 온통 초록색만이 가득했고, 물기를 머금고 서 있는 그 모든 것들은 싱그러웠다.


미세먼지 없는 촉촉한 대지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었고, 우리의 발소리는 모이는 순간 고요히 흩어졌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평온했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아이의 말소리잦아들었다.


짧은 30여분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께서 가꾼 텃밭에 자라나는 상추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식욕이 동해 갓 지은 밥에 싸 먹을 상추를 뜯고 보니 달팽이 서너 마리가 함께 들려왔다. 비가 내린 뒤 촉촉함을 즐기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나 보다. 미세먼지 일상에 들어온 이후 가장 반가운 것이 비가 되고, 비가 오는 날이 좋은 날이 되고, 비 개인 순간을 고대하노라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모든 것들이 평화로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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