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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담 Oct 19. 2019

상처 덩어리 삼 남매가 받은 처방전

상처라 명하고 시간을 처방한다.

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삼 남매.

성격도 생김새도  다른 우리는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물과 기름이었다. 목소리 크고 앞장서기를 좋아했던 언니와 다르게 나는 다른 사람의 말에 적기를 들지 못하고 순수히 응하는 아이였고, 우리가 사는 집 앞이니 친구들에게 다니지 말라고 길을 막던 동생은 동네의 대표적인 말썽꾸러기였다. 작고 움츠려있던 나의 내면에는 "싫다!"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었다. 양의 탈을 쓴 늑대가 공존하던 나의 내면이 서서히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서른 즈음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쳐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때 글 쓰는 걸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낙서장에는 절망적인 단어들로 가득했고 지금 틀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엄마마저도 나의 이야기를 외면했다. 다른 사람의 관점이 중요했던 엄마는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이렇게 하냐'는 보상심리로 가득 찼고 그럴수록 삼 남매는 메마른 나무가 되어갔다. 물을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갈증은 반항으로 나타났고 서른에 맞은 사춘기를 맞닥드린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심리적 갈등을 겪었다. 폭언과 폭력으로 나약함을 감추려 했던 언니도 그즈음 삶이 팍팍해졌음을 나는 몰랐다. 겉으로 보이는 경제적 풍요로움이 부러웠고, 언제든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부러웠다. 유일한 나의 돌파구였 동생도 청소년기에 겪지 못했던 잘풍 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듯했다. 짧은 대화에서 느껴지는 공감이 서로게 위안이 되고 위안이 돼주었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가 다른 색으로 채색되어 삶의 중간에서 구덩이를 만난 시점이 비슷했기에 나의 상처의 깊이만 생각하고 이해받고 싶어 했던 삼 남매.

만나면 언성이 높아지는 언니와 동생 사이에서 나는 또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삐딱선을 타는 언니는 아빠와도 동생과도 적정선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 언니가 꾸린 가족 사이에서도 갈등의 정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조차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아프다 외쳐도 들어주지 않는 메아리를 동굴 속에 갇혀 토해내기를 이십 년 즈음이 지났을까? 곰이 마늘과 쑥을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 설화처럼 우리는 곰이 아님에도 독백을 먹고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변화하는 인간의 마음을 담은 사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눈부신 세상의 햇살이 가와 아파올 때면 가끔은 부모를 찾아가 "해준 게 뭐가 있냐!"며 소리치기도 했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부모의 병실을 찾아가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부모를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고 힘들면 다시 나의 동굴로 들어가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덤비기만 해 봐! 기다리며 곪아버린 마음에 상처를 더해갔다.

그런 시절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생각해보니 시간이란 처방전을 받고 지내온 덕분인 것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더라는 카더라 통신이 삼 남매의 삶에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고 우리도 부모로 지내기에 부족하는 것을 깨닫자 삼 남매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내 식에게 우리가 준 상처의 크기만큼 우리의 부모를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 들어 거울을 보는데 엄마의 모습이 있어 깨뜨리고 싶었던 간도 잘 극복해 나갔다. 소리치고 대드는 모습에서 엄마가 그랬으니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는 언니의 말에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쏟아내는 자매의 모습도 보여줬다.



어릴 적 우리의 기억에 새겨진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우리가 아빠를 이해했더라면 상처가 줄어들었을까? 아빠는 늘 내 기억 속에서 가해자였다. 생각이 자라고 동굴에 갇혀 있다가 나와서 엄마 없이 아빠를 만났다. 아빠하고 둘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그동안은 왜 만들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민망할 정도로 아빠는 엄마의 변호인 역할로 변해 있었다. "너네 엄마가 너네를 얼마나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하느냐! 엄마한테 잘해라. 나는 괜찮다! "

차라리 옛날처럼 소리치고 손이라도 올렸으면 손목을 꽉 잡고 "아버지 우리도 다 컸습니다. 우리가 이제 힘이 더 셉니다!"라고 폼이라도 잡을 텐데 아빠의 옷을 잡고 흔들며 소리치는 언니의 행동에도 아빠는 흔들거리는 갈대보다도 더한 반동으로 마주했다.  "엄마한테 자주 찾아가라!"는 말을 뒤로하고 가는 아빠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무거운 짐이 왜 이제야 보이는 걸까? 무능력하고 자신만 아는 아빠는 그렇게 변해갔고 변해버렸는데 우리는 알지 못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마주한 큰아버지의  모습 뒤로 보이는 아빠가 먹먹함을 안겨주었다. 눈시울이 뻘게진 언니에게 "우리가 후회하지 않도록 엄마, 아빠한테 전화라도 자주 하자"라고 말을 했다.

흔쾌히 그러자는 언니.

"후회하지 않으려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는 사촌 오빠의 말을 동생에게 전하며 "우리에게 언제 생길지도 모르는 부모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동생의 마음에 문을 두드렸다. 부모 돌아가시면 나중에 못한 것만 생각나 후회하게 된다는데, 우리 힘들지 않게 부모한테 전화 한번 더하자고 하는 이기적인 말을 내뱉었지만 부모와의 이별은 아직도 먼 이야기 같다.

처방전: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생각나세요?  
가해자(부모)를 마주 하기 싫으십니까?
그런 분들께 시간이라는 약을 처방해 드립니다.

*부작용: 시간 약의 복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해자는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고 계실 수 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모른다.

상처를 파내는 일보다 처방받은 시간이란 약을 삼키며 삼 남매는 2019년 10월 처음으로 만약을 대비한 통장을 만들었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풀어가는데 필요한 건 시간임을 왜 몰랐을까?


만약을 대비한 통장이 하나 둘 쌓여가기를 바라는 건 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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