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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에서 인간까지, 그리고 생명의 경이로움

고교 포럼 감상문

by 글사랑이 조동표

삼성동의 한 회의실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57노송포럼’의 열세 번째 모임이 있었다. 고교 동창들이 모여 단순한 친목을 넘어 학문적 토론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번 주제는 다소 철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물음이었다. “생물세계의 구성체계”— 가장 작은 소립자에서부터 인간과 생태계까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우리나라 유이(有二)의 지렁이 박사인 배윤환 교수의 강의는 생명의 구성 요소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물질세계는 원자보다 더 작은 소립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이 기본 단위에서 출발한다.


업쿼크, 다운쿼크, 전자, 광자, 그리고 힉스 보손까지. 이 모든 것이 모여 원자를 만들고, 분자가 형성되며, 결국 세포가 탄생한다. 우리 몸을 이루는 47조 개의 세포도, 결국은 이러한 미시적 요소들의 정교한 조합이었다.


그러나 생명체를 정의하는 것은 단순히 화학적 결합만으로는 부족하다. 생명은 물질과 에너지를 활용하여 항상성을 유지하고, 환경에 반응하며, 스스로를 복제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이러스였다. 숙주 없이 존재할 때는 비생물과 같지만, 살아 있는 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스스로 복제하며 진정한 생물처럼 행동한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생명체일까?


생명의 경이로움은 단순한 구성 요소를 넘어 그들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구조 속에 있었다. 개체는 조직을 이루고, 조직은 기관을 만들며, 기관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개체들이 모이면 개체군이 되고, 개체군은 생태계를 이루며,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된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지구의 주인은 누구인가?


흥미로운 질문도 나왔다.

“동물과 식물 중 어떤 것이 더 많을까?”

정답은 의외로 명확했다. 종의 수로 보면 동물이 더 많지만, 무게(바이오매스)로 보면 식물이 압도적이었다. 지구 생물량의 80% 이상이 식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포유류의 무게는 지구 전체 바이오매스의 0.1%도 되지 않았다. 즉, 개체 수로 보면 동물이 많지만,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식물이었다.


배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인가, 아니면 지배자인가?”


싱가포르의 사례도 흥미로웠다. 그곳은 뎅기열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대량의 살충제를 살포했고, 그 결과 벌레 한 마리 없는 ‘완벽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자연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일까?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자연을 정복한 듯 보이지만, 결국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 과학과 철학, 그리고 다윈의 위대함


과학과 철학은 종종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 경계는 모호하다. 진화론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명이었다.


2020년,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혁명가’로 다윈이 선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전해야 한다면, 나는 진화론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설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자보다 작은 소립자로부터 시작해 거대한 생태계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에는 생명의 비밀이 단순한 화학반응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DNA가 마치 USB처럼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즉, 생명은 단순한 물질과 에너지의 조합을 넘어, 정보를 저장하고 활용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 끝없는 질문,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포럼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으로 던져진 질문이 있었다. “과학자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주를 설명하는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 큰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명의 기원은 무엇이며,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학과 종교, 창조와 진화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같은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동시에 자연을 탐구하는 존재다. 생명은 단순한 화학반응이 아니라,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며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그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 것이다.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 연계된 깊이 있는 논의는 뒤풀이까지 이어졌고 서로 비운 술잔을 채워주기 바빴다. 문과 이과 가릴 것 없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수준 높은 담론은 끝날 줄 몰랐다. 시간은 어느새 춘분을 밝히는 날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우리의 포럼도 낮과 밤이 같아지는 균형을 찾게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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