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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싫어하는 사람_5화

헬스장에서 만난 계절과 사람들

by 글사랑이 조동표

밖은 37도.

올여름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다. 태양은 뜨겁고, 도로는 지열로 일렁인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났다.

누군가는 섬으로 배를 타고 나가고, 누군가는 산속 펜션에서 자연을 누린다.

어떤 이는 바다로 갔고, 또 어떤 이는 텃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수박과 참외를 따고 있다.

자녀의 가게를 돌보는 친구도 있고, 아픈 아내와 어린 손주를 돌보며 하루를 보내는 친구도 있다.


나는 집안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한 뒤, 늘 가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산도 바다도 아닌, 바로 헬스장이다.


요즘의 헬스장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실내 골프장. 시원한 에어컨 아래 스크린 속 필드를 응시하며 땀 흘리는 골퍼들이 있다. 각자의 자세를 영상으로 점검하며, 셋업과 스윙을 반복한다.

또 하나는 나처럼, 몸을 채우고 단련하는 체련장, 진짜 운동의 본무대다.


내가 향한 곳은 당연히 후자다.

먼저 러닝머신에 올라 30분을 달린다.

땀은 흐르지만, 머리는 오히려 맑다.

달리는 동안은 히스토리 채널을 켜 둔다. 요즘은 ‘전당포 사나이들’이 꽤 흥미롭다. 물건 하나에 얽힌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화면에 집중하게 된다.


그 후에는 사이클을 잠깐 돌리고, 하체 중심의 근력 운동으로 넘어간다.

무게를 버티는 힘, 자세를 유지하는 끈기, 그리고 반복.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마음을 가다듬는다.


운동 중, GX룸(스트레칭룸)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은 서늘하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 덕에, 흘렸던 땀이 서서히 식는다.


매트를 깔고, 관절을 늘리고 몸을 푼다.

몸이 굳어 있었다는 사실을, 스트레칭을 하면서 뼈저리게 깨닫는다.

피곤함이 빠지고, 서서히 근육이 말을 듣기 시작한다.

마사지기를 활용한 간단한 회복 운동으로 마무리.


어느새 1시간 반, 운동을 마치고, 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런데 늘 눈에 띄는 풍경이 있다.

매번 그렇듯 오늘도 어김없이, 헬스장의 ‘꼴불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헬스장의 풍경들, 그리고 민망한 단면들이다.


기구에 앉아 폰만 들여다보는 사람.

사진 찍기에 몰두해 운동은 제쳐둔 사람.

벤치에 땀을 흘려놓고 닦지도 않은 채 자리를 뜨는 사람.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소리를 내며 역기를 내던지는 사람.

트레이너도 아닌데 자세 지적을 일삼는 자칭 전문가.


특히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주머니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들의 대화는 큰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요즘 우리 아들 진짜 말을 안 들어~"

"나도! 애 키우는 게 제일 힘들어~"

"그 요리에는 소금보다 간장으로 간을 맞춰야 해~"

그 잡담들은 헬스장이 아니라, 동네 카페에서 들었어야 했을 이야기다.


물론 그분들도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때로는 운동보다 대화에 더 열정적인 모습이, 보는 이의 집중을 흐트러뜨린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 내 모습을 본다.

핸드폰을 들고 화면을 넘기던 나.

운동보다 TV 모니터에 집중하던 내 모습.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 꼴불견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운동은 단지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다.

생활의 태도를 바꾸는 습관이고,

타인을 배려하는 예의이며,

스스로를 통제하는 인내이기도 하다.


친구들이 자연 속으로 떠난 이 계절,

나는 헬스장에서 더위를 밀어내고,

땀으로 하루를 갈무리한다.


단련이란 몸만의 일이 아니다.

굴절된 마음을 펴고, 굳은 자세를 고치고,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하루의 피로를 씻기 위해, 혹은 삶의 중심을 다시 잡기 위해 찾은 헬스장.

그곳은 땀 냄새와 무게, 음악, 거울,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한 작은 사회다. 하지만 운동 기구보다 더 무거운 건 사람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몇 가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정리해 보자.


1. 기구 점령자, 그리고 스마트폰 전사


가장 많이 보이는 유형이다. 기구에 앉아 뭔가 열심히 보는데, 그건 유튜브다.

팔 운동을 하러 온 건지, 엄지운동을 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

"아직 사용 중이에요?"

"네, 한 세트 더 남았어요."

그 세트가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시간은 멈춰서 있다.


2. 고성방가형, 괴성 퍼포먼스


운동 중 나는 소리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나친 괴성은 마치 사극 액션씬 같다.

“크아아악! 으아악! 헉헉! 푸우 푸우!"

그 소리에 놀라 주변 사람들도 민망하다.

괴성은 본인의 한계를 넘는 증거일 수 있으나, 타인에겐 공공의 스트레스다.


3. 땀은 남기고, 사람은 떠나다


운동 후 벤치나 바닥에 남은 건 고열량 땀방울.

헬스장 곳곳엔 “땀은 닦고 갑시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지만, 그 문구를 보지 못한 사람들일까?

공용 공간에서의 예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4. 셀카 천국, 거울 앞은 내 무대


운동보다 중요한 건 인생샷.

바벨보다 무거운 숫자의 얼짱 각도 찾기에 여념이 없다.

팔에 힘주는 그 각도가 마치 화보 촬영 같다.

가끔은 트레이너도, 주변인도 배경 인물로 차용된다.


5. 수다 요가, 유산소 대화?


운동보다는 수다가 목적이다.

기구 곁에 서서 "요즘 그 맛집 값 봤어?", "우리 아들이 이번에 말이야..."

오히려 체육관보다 커피숍에 가까운 풍경.

물론 그들의 활력은 존중하지만, 시간을 나눠 써야 하는 공간에서는 조금만 줄였으면 싶다.


6. 지도자 코스프레


자기 운동도 못 끝낸 사람이 옆 사람 자세를 지적한다.

"그거 자세 틀렸어요. 허리 세우셔야죠."

지적은 트레이너에게 맡기자. 우리는 서로에게 전문가가 아니니까.


7. 커플의 운동은 나의 휴식


기구 하나를 두고 번갈아 가며 쓰는 커플도 있다. 대화, 웃음까지 다정한 풍경이지만, 그 뒤엔 운동을 기다리는 솔로가 서 있다.

운동은 개인과의 싸움이지, 커플의 데이트가 아니다.


8. 무게 허세형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무게를 들어 올리고, 바닥에 쿵 내려놓는다.

기구는 고통을 호소하고, 주변은 놀란다.

성장은 조용히 이뤄져야 한다. 소리보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다.


혹시 나도 그중 하나였을까?

문득 거울을 보았다.

휴대폰을 오래 들여다보던 내 모습, 셀카를 한 장 찍으며 흐뭇해하던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남들보다 더 하는 척하던 나.


헬스장의 꼴불견을 떠올리며 누군가를 비판했지만, 그중 하나쯤은 어느 날의 내 모습이었음을 인정한다.

운동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가짐도 가다듬는 과정이다.


헬스장은 거울이 많은 공간이다.

그 거울은 근육만 비추는 게 아니라 내 태도와 습관도 비춰준다.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도 나를 단련하는 법, 그게 진짜 운동일지 모른다.


오늘도 운동을 하러 갔지만, 결국 사람을 배우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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