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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3반, 그리고 사진이라는 거울

57노송포럼

by 글사랑이 조동표

변호사로 활동하며 57노송포럼을 이끌고 있는 곽세열 회장은 우리 동기들을 지혜의 아테네 광장으로 이끄는 길잡이다. 그가 말하는 포럼은 3학년 13반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데 그 취지는 이러하다.

사진 왼쪽: 곽세열 회장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이과 8개 반, 문과 4개 반, 도합 12개 반으로 졸업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3학년 13반’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모이고 있다.


어리둥절할 수도 있지만, 그 어리둥절함이 바로 3학년 13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식 명칭은 ‘57노송포럼’이지만,

‘3학년 13반’이라는 이름은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세월을 돌아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의 궤적과 경험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공감을 확장하며,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고수들을 발굴하고, 그 지혜와 진가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곧 ‘3학년 13반’의 반훈이라 할 수 있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20회의 강연이 그러한 취지 아래 열렸고, 이번 달에도 그 정신에 꼭 맞는 강연이 예정되었다.


동기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정서와 감성, 지성과 역량을 함께 나누는 이 자리야말로 57회 동기회가 추구하는 진정한 ‘공유의 장’이 아닐까?


앞으로도 더 많은 동기들이 강연자로 참여해 주고, 좋은 주제와 강연자를 추천해 주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과 우정, 그리고 지혜는 이 자리에서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 6월의 포럼은 사진이 주제

6월 18일 강연자 조대연 교수

이번 달 3학년 13반 강연의 주제는 ‘사진 이미지의 시작과 지금’이었다. 조대연 동기의 강연이었다. 그는 당시로는 희귀했던 사진학과를 전공하여 현재는 광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자신의 삶과 사진을 겹쳐 놓았다. 신문사 사진기자로 시작해 미국 유학을 거쳐, 대학에 몸을 담았다. 후학들을 가르치며, 남도 사진의 기록자로, 그리고 전주 도시경관의 아카이브 작업자로 살아온 삶. 그 모든 궤적은 사진 한 컷에 담긴 시간처럼 깊고 조용하게 우리 앞에 펼쳐졌다.

남도 사진과 전주시 경관
전주시 경관들
1900년과 2005년의 전주시

"사진은 진실을 찍는 것 같지만,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의 이 말은 사진의 본질을, 어쩌면 우리의 기억을 꿰뚫는다.


그는 필름카메라를 100대나 갖고 있다. 디지털의 편리함보다는 기다림과 고생 속에서 얻어지는 단 한 장의 사진을 더 사랑한다.

가장 비싼 카메라는 215억 원 정도

멋진 눈 사진을 찍기 위해 폭설이 내리길 기다리며 다섯 번이나 같은 자리를 찾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에서 진짜 한 컷을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지를 은유한다.


사진의 역사는 1839년, 프랑스 다게르의 발명에서 시작되었다. 당시는 노출 시간이 20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 긴 기다림 속에서 한 장의 이미지를 남겼던 그 시절. 지금은 1/250초 만에 찍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진실에 가까워졌는가?

- 빛으로 그린 기억, 사진


사진은 ‘어두운 방에 비친 작은 창’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부터, 르네상스 시대 다빈치의 회화 실험에 이르기까지, 카메라 옵스큐라는 빛의 본질을 포착하는 인간의 오랜 열망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이 '기록'이 된 순간은 1826년 니엡스가 태양빛으로 농장을 찍은 첫 이미지, 헬리오그래피에서 비롯된다. 다게르가 이를 계승해 1839년 공표한 ‘다게르 타입’은 예술을 보조하던 장치를 세상의 진실을 고정하는 도구로 탈바꿈시켰다.

그 후 폭스 탤벗의 네거티브-포지티브 방식은 사진을 반복 재현 가능한 매체로 진화시켰고, 디스데리의 카르트 드 비지트는 사진을 사적 기념에서 사회적 도구로 확장시켰다. 사진은 명함이 되었고, 얼굴이 되었으며, 사회적 신분의 징표가 되었다.


프랑스 경찰 베르티옹의 머그샷은 사진을 통제와 감시의 장치로 만든 대표적인 예다.


조선인의 골격을 재려는 일제의 집요한 시도와, 유관순의 수형기록표 역시 사진이 정보이자 억압의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한 장의 사진은 기억이 되기도, 망각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동시에 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고, 도시의 삶을 보존했다. 크림전쟁에서 남북전쟁까지, 나이팅게일의 손끝에서 브래디의 렌즈까지, 사진은 진실을 포착하려는 눈부신 시도였다.


광주의 5.18 기록 역시 눈물과 진실을 고스란히 남겨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사진은 더 이상 단지 풍경이나 얼굴을 담는 수단이 아니다. 도시의 경관과 시민의 삶을 기록하고, 역사의 경계와 문화의 유산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사진은 빛으로 쓰는 역사이며, 기억의 가장 섬세한 붓이다.

한 장의 사진이 묻는다. 이것은 진실인가, 혹은 누군가의 시선이 만들어낸 허상인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결국 사진은 보는 자의 눈이 말하게 만든 이야기라는 것을.

6.25 전쟁 중의 이대 합창단과 이기붕, 박마리아 그리고 미군 장성(부산 피난지)

조대연 교수는 5.18 광주의 아카이브 사진 약 4,000컷을 정리하고 전국을 돌며 전시를 열었다.

"사진은 기록이고 증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광주 5.18 사진


일제가 기생 사진을 찍어 감성을 자극하고, 월남전의 처형 장면이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것처럼.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놓쳤는가?"

그의 강연은 사진을 통해, 우리가 시대와 삶을 어떻게 마주해 왔는지를 묻는다.

이번 방학을 이용해 라오스에서 국립박물관과 협업을 하러 가고, 도시의 경관을 사진으로 남기고, 드론과 VR로 미래의 기록 방식을 실험하는 그이지만, 여전히 그는 말한다.

"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결국, 사람과 시대를 담고 싶습니다."

현대의 사진

그의 강연을 들으며 기억에 남는 어록을 정리해 본다.


"사진가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진이 나오면서 그림이 바뀌었다. 사실화가 추상화로 변화하였다.


사진으로 진실과 사실의 기록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귀족이 되고픈 신분상승 욕구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다.


'조선고적도보'는 일제가 우리를 지배할 목적으로 찍었다. 한국의 사진을 유리원판 약 4만 컷을 찍어서 보존한 것인데 일본인 시각으로 찍은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시각의 사진이다.


전쟁 시의 사진은 히틀러 등에 의해 프로파간다(선전)의 도구로 쓰였다.


6.25 사진은 워싱턴의 국립문서기록보관소에 있다.


사진은 누가 찍었느냐가 중요하다.


사진은 기계와 과학과 예술의 기묘한 결합이다.


광주 5.18 사진을 아카이브로 수집한 책을 '위대한 유산'으로 발간하였다.


사진을 찍는 건 쉬워도 설명 글을 쓰기는 어렵다.


한국을 알리는 유럽순회전에 동원된 해인사 등 불교 관련 사진, 장엄한 분위기의 종묘 사진, 수원 화성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현대 건축물의 형태는 유리가 많아지면서 그림보다는 사진이 더 조화를 이룬다.


요즘은 AI로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그 기술은 더 정교해지고 길어질 것이다.


나는 필름 사진이 더 정감 있다.

사회학적이며 인류학적이고 다큐멘터리에 입각한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다.


사실을 찍지만 사진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진은 서양에서의 발명품이다. 서양은 산 위에서 찍고 동양의 산수화는 산 밑에서 올려보고 그린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사진은 산 정상에서 찍는다. 우리가 동양에서 살고 있지만 사진은 서양적인 사고로 바뀌었다."


강연을 들으며, 나는 문득 ‘사진’이란 단어를 곱씹었다.

‘寫眞’. 글자 그대로 진실을 베낀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수십 년도 어쩌면, 진실을 따라 그려온 한 장의 필름이었는지도 모른다.

3학년 13반.

정식 반은 아니지만, 가장 진실한 반.

서로의 이야기를 담고, 공유하며, 세월을 함께 인화하는 반.

그리고 그 안에서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인연들이 다시 색을 입고 선명해진다.


오늘도 한 컷의 인생을, 함께 모여 찍었다.

2025년 6월 18일
강의하는 조대연 교수
새만금 사람들과 기름통
남도의 불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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