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운 어머님께

38주기를 맞이하여 올립니다

by 글사랑이 조동표

그리운 어머님,


어머님이 떠나신 지 어느덧 38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참 무심하게도 흘렀습니다.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합니다.


1987년 4월 하순.

당시 저는 서울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25일은 제 인생 첫 월급을 받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님께 맛있는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소박한 바람조차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전주에 도착했을 때 어머님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병실에서 어머님을 마주했을 때, 귀에 대고 소리도 질러보고, 다리를 꼬집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미동도 없으셨습니다.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저 무력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오후, 어머님을 119를 통해 병원에서 집으로 모셨고, 우리는 밤을 새워 곁을 지켰습니다.

고르지 못한 숨소리가 이어졌고, 날이 밝아올 무렵, 어머님은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순간,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집 앞의 기린봉이 울부짖는 것 같았고, 아중리 저수지의 물결도 요동치는 듯했습니다.

처음으로 '천붕(天崩)'이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던 아침이었습니다.


당신은 참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셨고 아버지를 섬기며 네 자녀를 정성껏 키우셨습니다.


당뇨병으로 십 년을 고생하셨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몸은 작으셨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넓으셨습니다.


자식 하나하나의 삶을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눈빛, 손길, 말투... 그 모든 것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머님이 떠난 후, 아버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1년 사이에 부쩍 야위셨고 상심 어린 표정이 얼굴 가득 묻어났습니다.

막내는 당시 19세였고, 세상을 헤아리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무기력했습니다.


38년이 지난 지금, 자식들은 각자의 삶을 꾸렸고, 손자손녀들도 장성해 새로운 가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어머님의 빈자리는 여전히 큽니다.


어머님, 그곳에선 부디 고통 없는 평안 속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드넓은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우리 가족은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하늘에서도 당신의 자손들과 아버지를 지켜주시고, 언제나처럼 따뜻한 미소로 품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편히 쉬시옵소서, 어머님.


그리운 그 이름, 안양선(安良善) 집사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