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007'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불사조처럼 살아나고 끝내는 악당을 물리치며 본드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제임스 본드는 영웅이었다. 오락영화 하면 007이었는데 요즘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밀려서 한물갔다고 한다. 미션 임파서블은 주연으로 톰크루즈가 계속 활약하는데 비해 007의 제임스 본드는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다니엘 크레이그까지 영국의 미남 배우들이 여럿 등장해서 긴 역사를 자랑한다.
007 시리즈 중에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 숀 코너리 작품이 있었는데 제목이 '007 두 번 산다'였다.
You only live twice(1969년 작품).
세상에나! 두 번이나 산다니! 내용은 뻔한 소재였는데 그 제목이 오랫동안 기억이 난다.
나도 죽을 고비와 사고를 여러 번 겪었다. 지금부터 하나씩 기억해 보자. 그래야 남은 인생을 조심하며 살 듯하다.
세 살 때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져 오른팔에 3도 화상 입고 평생 흉터가 남은 일. 지금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저수지로 놀러 가서 동네 형들이 물속에 내 머리를 처박고 숨도 못 쉬게 누르고 있던 일. 이 일로 인해 물에 대한 공포 트라우마가 생김.
국민학교 3학년 때 술래잡기하다 피하려고 죽기 살기로 달리다가(사실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 철봉대에 부딪혀 아래 치아 3개가 깨져버린 일. 옥수수가 날아간 후로 심한 출혈에 한 달간 음식도 제대로 못 먹었으며 전체 치아가 부실해져 겨울마다 시린 이로 고생한 일.
국민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에 펄펄 끓는 김치찌개가 엎질러져 등과 허리에 3도 화상을 입은 일.
국민학교 5학년 말에 황달 증세로B형 간염에 걸려 방소아과에 보름간 입원 후 한 달간 요양하다 6학년 1학기가 이미 시작된 3월 말에 복귀한 일. 학교에 가자마자 치른 월말고사에서 수업 한번 받은 일 없었어도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위안을 삼았음.
중학교 1학년 때 자전거 제어가 안 된 상황에서 문화촌 앞길을 쏜살같이 달려오던 택시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일.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하다.
중1 겨울에 연탄가스에 취해서 동치미 물을 마시고 의식은 회복하였으나 몸을 못 가누고 머리가 아파서 고생한 일. 연탄가스 중독은 대학 시절까지 이어져서 사경을 헤맨 기억이 다섯 번은 넘는다.
중2 체육시간에 평행봉에서 떨어져 무릎이 골절되어 접골원에서 뼈 붙인 일. 지금도 왼쪽 무릎을 구부리면 뚝 소리가 난다.
복교 후 대학 1학년 때 고대 운동장에서 같은 단과대학의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아침부터 빈 속에 막걸리를 과다하게 마시고 의식을 잃은 일. 후배 등에 업혀서 제기동에서 신림동까지 실려갔는데 사흘간 비몽사몽 했음.
대학 2학년 때 고향 선배와 서울역 앞에서 상한 안주에 술 마시고 식중독에 걸려 사흘간 꼼짝 못 하고 누워있던 일.
입사 후 4년 차 어느 겨울날, 해외연수에 갔었던 후배 환영식 2차 자리 가라오케의 화장실에서 나를 뒤따라온 옆 자리 젊은이와 시비가 붙어 말싸움하다 주먹다툼으로 안경이 깨지고 왼쪽 눈이 찢어져서 강남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33 바늘 꿰매고 애꾸눈이 될 뻔한 일.
결혼 후 가족을 태우고 분당에서 판교 방면 고속도로 진입 시 무리하게 커브를 꺾다가 대형 화물차와 부딪힐 뻔한 일. 구사일생으로 차와 가족은 안전하였음.
설명절에 15시간 운전하여 귀성하던 깜깜한 밤에 전주 아버지댁 앞으로 좌회전하다 공사판 자재 쓰레기더미 위로 차가 올려져 공중부양하며 떠있던 일. 가족들은 혼비백산하였는데, 어린아이들은 놀라서 눈만 끔뻑거렸다.
초보운전 시절, 첫 고속운전의 경험을 하러 무작정 경부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나가서 목숨 걸고 운전한 적도 있었다. 아내는 소심한 내 용기를 북돋우고자 연신 "도전 차차차!"를 외쳐댔다.
음주 상태로 호수 옆 오솔길 비포장도로를 5단 기어 변속해 가며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면서 토해가면서 집에 귀가한 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차 뒷문에 맥주 안주로 먹은 수박씨와 참외씨가 말라붙어 있었음. 지금 생각하면 음주운전 그 무모함에 등골이 서늘하고 아찔하다.
35살 무렵, 회사 주차장에서 후진으로 주차엘리베이터에 진입하려고 액셀을 밟던 순간 급발진하여 주차엘리베이터 후면에 충돌 후 엘리베이터 바닥이 뚫려서 차에 탄 채로 땅속 공중의 운전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일. 그나마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 안 그랬으면 튕겨져 나갔을 뻔...
중국에서 혼자 생활할 때, 52도 고량주를 맥주잔에 연거푸 마시고 의식을 잃어서 직원의 등에 업혀 호텔에 실려간 일이 3번이나 있었음. 하필 2002 한일월드컵축구 시기여서 한국의 승승장구를 질투한 중국인들이 술로나마 한국인을 제압하려 한 의도가 다분하였다. 고도의 독주를 퍼부은 여파로 위장을 버려 사나흘은 음식을 먹지 못함.
2018년 4월에 강남의 호텔 바에서 만취가 되어 로비 입구에서 의식을 잃고 뒤로 넘어져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혀 출혈이 심한 상태로 의식을 잃고 난생처음 119에 실려감(서울성모병원 응급실. 나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남). 뇌진탕에 뒤통수를 수십 바늘 꿰매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이 일로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쳤고 술이 무서워졌다. 당일 밤 일본인들과의 술싸움에 홀로 맞서 대항하였다. 빈속에 와인, 위스키, 소주, 맥주를 섞어서 퍼부어 마셔댔음. 음주 초반부터 와인에 취하면 답이 없음. 하지만 수술 사흘 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모자를 쓰고 출장 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행사도 참석하고 무사히 발표도 하였다.
양주로 필름 끊긴 일은 허다하다. 일본 연수 시, 빈속에 바나나 1개를 안주로 40도의 스코치위스키를 마시고 의식을 잃었던 일은 서막에 불과했다. 도수 높은 독주는 항상 사람을 잡는다.
부주의와 무모함, 태만으로 인한 사고, 교통수단, 물과 불, 그리고 술과 관련된 일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무모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신께서 구해주신 것이고, 사주팔자가 강해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사일생과 기적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