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불인견 없는 여름을 보냈으면
여름은 본래 활기찬 계절이다. 햇살이 강하고, 나무는 짙푸르며,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진다. 그런데 요즘 들어 무더위가 사람들의 마음까지 가볍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며칠 전, 사무실 층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한 남자가 웃옷을 벗은 채 머리를 감고 있었다. 물이 사방으로 튀고 거품이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누구도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다. 어쩌면 더위에 지친 몸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 모르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최근 상탈족이 한강공원을 질주한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지만, 실내의 상탈족은 낯선 풍경이고 건강한 모습도 아니었다.
2호선 전철 안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젊은 남자가 다리를 꼬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어폰을 끼고 고음처리하는 목소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용히 하라는 내 손짓에도 무심했다. 시비가 될까 두려워 조용히 다음 역에서 내렸다.
환승역에서 갈아탄 8호선 전철에서는 배꼽과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의 여성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껌을 씹으며 붓을 놀리는 모습은, 무심코 마주한 사람들의 시선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거리에 나오자 풍경은 또 달랐다. 어린 학생 커플이 더위 속에서도 짙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신혼부부를 연상케 했다. 조금 떨어진 골목에서는 또래 학생들 무리가 모여 담배를 피우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들이 남기고 간 꽁초와 음료수 병이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과속하는 차량과, 곡예하듯 두 손 놓고 자전거 묘기를 보이는 아이들, 갑작스럽게 나타난 킥보드가 주차하려던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이 있어 올림픽대로를 탔더니 토요일임에도 만성 정체에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 진입로에 길게 늘어선 차량들을 무시하고 맨 앞에서 슬쩍 끼어드는 얌체족,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으로 급브레이크를 밟게 만들어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이른다. 간신히 귀가하는 도로에 진입하니 노란선을 침범하는 무법차에 꼬리물기도 눈에 거슬린다.
아파트 주변 도로에는 여학생을 선두로 3명씩이나 올라탄 킥보드와 이를 쫓는 자전거 무리, 도로 중앙선을 가르는 곡예운전도 눈에 띄었다. 위험천만! 위기일발!
모두가 바쁘고, 모두가 지쳐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정말로 무더위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더위는 단지 핑계일 뿐, 우리 안에 숨어 있던 무심함과 무례함이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여름은 곧 지나간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듯, 사람들의 마음에도 다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뜨거운 햇볕 속에서 잠시 잃었던 배려와 질서가, 서늘한 바람과 함께 다시 제자리를 찾기를 기대해 본다. 결국 우리가 견뎌야 할 것은 더위가 아니라, 더위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목불인견(目不忍見) 꼴불견은 8월로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