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작에 떠오른 이름
코시모시
- 가을의 시작에 떠오른 이름
비 내리는 초가을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단어, '코스모스'.
순간, 고향 길가에 하얗고 붉게 피어 있던 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꽃을 '코시모시'라 철자하던,
어눌한 글씨 속에 막내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담아내던 한 어머니가 떠올랐다.
- 산사태의 밤
1984년 여름, 전방 12사단 천도리를 덮친 집중호우.
전쟁의 포화처럼 쏟아진 빗물과 무너져 내린 흙더미 속에서 친구는 죽음을 눈앞에 보았다.
나무뿌리가 눈동자를 겨누며 숨통을 조이던 그 순간, 동료들의 손길이 물과 뿌리를 헤치며 겨우 한 줄기 공기를 열어 주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떠오른 두 얼굴은, 어머니와 지금의 아내였다.
산사태로 잃어버린 어머니의 편지,
그리고 먼 전방까지 1박 2일 여정으로 면회를 오던 아내.
“사랑하는 우리 막내야...”
그렇게 시작되던 편지에서 발견된 서투른 철자의 '코시모시'.
그 단어 속에는 아들을 살려낸 사랑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 또 다른 어머니
마흔의 나이에 뜻밖의 선물처럼 막내를 품었던 어머니.
말년에 삶의 고단함을 술로 달래기도 했으나, 아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술보다 깊고 뜨거웠다.
그 아들은 자라 금융의 최전선에서 나라의 환율을 지켜내며 어머니의 사랑을 증명해 보였다.
사랑으로 삶을 살고, 사랑으로 죽음을 맞이했던 또 한 어머니의 이야기.
- 밥상을 차리던 손길
또 다른 친구의 어머니는 늘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맞이하셨다.
친자식뿐 아니라 친구의 친구들까지 품어내며 따뜻한 밥과 반찬을 내어주시던 분.
자식이 장성한 뒤에도 여전히 품을 내어주던 분이었다.
강아지 같은 막내에게 젖가슴까지 내어주던
그 끝없는 어머니의 마음.
마지막 순간마저 의연히 맞이한 그 곁에서
아들딸은 굳건히 자라났다.
- 막내라는 운명
어쩌다 보니 내 곁의 세 친구는 모두 막내였다.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늘그막에 얻은 막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막내.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죽음을 건너고, 고난을 이기며,
어머니의 사랑을 증거처럼 품고 살아간다.
비 내리는 초가을,
길가에 다시 피어난 코스모스.
아직도 귀에 맴도는 그 단어, '코시모시'.
철자는 틀렸으나 사랑은 정확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막내들은 살아남고, 살아가며, 살아내며
가을의 시작을 맞는다.
*이미지: 구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