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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랑이 거봉 Apr 10. 2024

창업일기 1장 2화

영화배우 일본 남자, 대사관 대만 남자

드디어 3.1절 날 오후에 일본과 화상회의를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D 이외에 처음 보는 남자 둘이 화면에 등장하였다.


그들은 암 치료기를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 회사의 직원들이었는데, 한 명은 영화배우를 연상케 하는 매우 잘 생긴 일본 남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P와 비슷한 또래의 중년 남자였다.


일본 남자인 S는 이 스타트업 기업을 세운 공동 파운더(창업자)이고 도쿄대학과 일본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에서 임상과 연구를 담당했던 의사 출신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핸섬한 얼굴에 유창한 영어로 본인의 팀에서 개발하고 있는 최첨단 암치료기의 원리와 미래의 활용 방안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하였는데 목소리도 꿀성대여서 마치 우주선을 타고 있는 듯한 둥둥 뜬 기분을 자아냈다.


그들이 개발 중인 것은 초소형 양성자 암치료기였다.

양성자 암치료기(Proton Therapy)는 방사선 치료의 한 형태로, 고에너지 양성자를 사용하여 종양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일반 방사선치료와 비교하여 종양 주변의 건강한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양성자 치료는 종양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 적합한 치료 방법일 수 있는데, 일부 종양은 양성자의 특성상 일반 방사선치료보다 더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또한 양성자는 특정 깊이에서 최대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 이후에는 역전되어 방출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조직에 미치는 영향과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양성자 치료는 현재 첨단 의료 시설에서만 제공되고 있으며, 종양의 종류와 환자의 상황에 따라 의사가 적합한 치료 방법을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치료 방법은 암 환자들에게 중요한 선택지 중 하나이며, 전문적인 의료진과 상담하여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한국에서는 국립암센터와 삼성병원 두 군데에서만 양성자 치료기가 가동되고 있는 중이며 꿈의 치료법이라 일컬어진다.


일본은 19개 병원, 대만도 4개 병원에서 가동 중임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는 더 많이 도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듯 1억 원씩이나 지불해 가며 이웃나라로 암치료 투어를 떠난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처럼 떠돌고 있다.


우리나라 연세의료원에도 양성자 치료기와 같은 입자 방사선 치료법인 중입자 암치료기가 2023년에 설치되었지만, 이것은 훨씬 더 고가의 장비와 엄청난 규모의 시설투자가 필요하기에 일반 대학병원에서 쉽게 도입하기는 어렵다.


중입자 치료기는 암세포를 표적으로 삼아 파괴하는 고에너지 입자인 중입자를 사용하는 장치인데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사용해야 해서 일반적으로는 양성자 치료기가 훨씬 더 보급형이라고 할 수 있다.


P는 S를 통해 처음 암 치료기에 대한 설명을 접했지만,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에 더해 알기 쉬운 자료로 핵심을 짚어가면서 어떻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는지 그 원리를 상세히 설명해 주어서 이해하기가 다.


또한 처음에 이 제품을 왜 고안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개발의도의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즉 중입자 치료기보다는 작다고 해도 종래의 양성자 치료기가 200톤에 달하며 운동장 크기의 면적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20톤 이하로 중량을 줄여 놓았고 2층 높이라고 한다.

게다가 기존의 방사선실을 개조하면 충분히 설치가능한 크기의 세계 최소형 양성자 암치료기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무리 작게 만들어도 20톤이나 나가고 200평의 면적은 필요하므로 기존의 방사선실 도면을 정확히 분석하여 리모델링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장치이다.

우리 몸에 위험한 방사선 노출을 막기 위해서는 차폐막도 설치해야 한다.


어쨌든 P는 관심을 갖고 경청하였는데 이것이 일본에서 설치가 되고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 질문에 S는, 아직은 일본에서 개발 중인 상황으로 2년 이내에 제품으로 허가받아 판매 승인을 받을 예정이라고 하였다.

이후 해외에도 진출할 계획이므로, 한국 진출 시에 꼭 도움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면서 P의 약력과 그동안 해온 업적을 간단히 정리하여 이메일로 보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말하자면 서류 심사를 하겠다는 의미였는데 그들의 개발품을 한국에 소개하고자 할 때 정식으로 P에게 협력을 부탁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S와 같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자신을 J라고 소개했는데 대만 사람이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주일대사관에 근무했던 대만 외교관 출신이었다.


그는 P에게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하면서 자기도 최근에 S가 설명한 벤처기업에 뛰어들었는데, 암질환에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에게 반드시 이 장치가 도움이 될 것이고 모국인 대만에서도 허가를 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직은 꿈을 팔고 있지만 멀지 않아 실제로 물건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같은 원리의 암치료기가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 크고 무겁고 비싸서 일반 대학병원에 설치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이 발하고 있는 것은 무게를 10분의 1로 줄이고 사이즈도 소형화했기 때문에 일반 대학병원에서도 얼마든지 도입을 고려할 수 있는 형태임을 강조하였다.


P는 일단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암치료기가 이미 도입되어 있는지 알아보고 그들이 소개한 장치가 한국에서도 유용할지 판단할 근거를 찾아보겠노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실용화되었을 때 환자들은 얼마의 비용을 지불하고 얼마의 기간 동안 치료를 받아야만 암이 치유가 되는지 등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서로 소통하면서 이 장치가 개발이 되면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겠노라 약속하였다.


3.1절의 화상회의는 서로에 대한 소개와 개발 중인 장치의 스펙, 그리고 앞으로 전개해 나갈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상견례 자리였다.


미남 영화배우를 닮은 일본인 방사선 전문의사 S와 외교관 출신 대만인 J는 P의 눈으로 봤을 때 상당히 호감을 주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연구개발하고 있는 첨단 장치는 장래 일본과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어 사용될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갑자기 P는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다만 아직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내용은 혼자서만 알고 고민해야 했다.


물론 의료라는 분야에서는 제약과 의료기기가 같은 영역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의료기기는 의약품과 달랐다.


P는 이제부터라도 암질환과 암치료기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암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 장치를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고 과연 이 장치가 도입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장조사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머릿속도 복잡해져서 어디서부터 이 실타래를 풀어가야 할지 막연하였다.


다행이었던 것은 코로나의 그림자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회사는 장기간 재택근무 중이라는 것이었다.


출퇴근에 허비하지 않는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암이나 치료기기에 대한 공부도 할 수 있어서 호기심을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아직 백지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자주 화상회의를 통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P가 어떤 분야에 있어서 도움을 줘야 할지 협의해 나가기로 약속하고 첫 번째 화상회의를 마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P는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물었는데, 그가 다니던 회사의 오너 비서실장이었던 D를 통해 소개받았다고 하였다.


D는 오너를 모시다가 알게 된 선배로부터, 최근 떠오르고 있는 첨단 벤처기업 중에서 장래에 유망한 양성자 치료기 개발업체인 이 스타트업 기업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그 기업에 연락하여 S와 J를 알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의 도입을 위해 적절한 사람을 찾고 있으니 혹시 아는 지인이 있느냐는 의뢰를 받았을 때, 한국이라는 나라가 언급되자마자 바로 P를 떠올렸다고 한다.


비록 P가 제약산업에만 종사해 왔지만 정부 관련기구의 일에도 협력해 왔고, 과거에 의료기기를 다뤄봤던 경력도 있으며 또 한국에서의 지명도로 봤을 때, 마케팅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P 만 한 인물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단다.


어쨌든 새로운 영역에 대한 소개를 해 준 D에게 감사하면서, 앞으로 일본인 한국인 대만인이 모인 화상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정보교류를 꾀하고, 각 국가의 상황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여 검토하기로 하였다.


 모든 것은 P의 CV(이력서)와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만한 자료를 제출한 이후에, S와 J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대표가 판단할 일이었다.

어쨌든 P는 새로운 세상에 눈이 떠진 느낌이었다. 개안을 했다고나 할까?


의료의 분야는 너무나 넓고 아직도 미개척 영역이 많아서 전문가들은 평생을 바쳐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또 빠르고 확실하게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작은 밀알이나마 자신의 능력이 의료에 공헌된다면 언젠가 닥칠지 모를 정년 이후에도 보람찬 삶을 살 수 있는 찬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당시 P는 그가 모시던 회장이 90살까지 현역으로 일을 하였던 전력이 있었기에 자신도 최소한 소속된 그룹사에서 70살까지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므로 하필 3.1절에 소개받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민이 되었다.

극일의 정점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윈윈일까?


게다가 아무리 코로나 시대의 재택근무 상황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회사에서 맡겨진 일이 있었으며, 또 비상근무 체제하에서 조직관리 책임자였던 P가 쉽사리 시간을 내어가며 열을 올리면서까지 일을 도와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3.1절 화상회의는 많은 난제를 안고 종료되었다.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양성자치료기만큼 무거운 숙제가 P의 앞에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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