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삶으로 읽는 문장들

<아무튼, 인터뷰>에서 만난 문장

by 주정현


독서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고, 한 사람의 삶에 잠겨 있다가 나올 때만 몸에 배는 가르침이 있다.

은유, <아무튼, 인터뷰> 12쪽


독서만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영역이 있고, 한 사람의 삶에 잠겨 있다가 나올 때만 몸에 배는 가르침이 있다. 사흘 전, 서울국제도서전 제철소 부스에서 만난 은유 작가님의 신간 <아무튼, 인터뷰>의 책 표지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2025년 6월 18일이라고, 그날의 날짜가 초판인쇄일로 찍혀 있는 이 갓 태어난 책을 나는 장바구니에 담아올 수밖에 없었다. 책으로는 끝끝내 알 수 없는 인생의 진실. 나는 그것을 양육에서 배웠다.



양육자이자 심리상담사인 나는 엄마가 된 지 15년이 지나서야 엄마의 마음이 조금 '몸에 배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이론만으로는 메워지지 않은 영역이 있었다.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나는 타인의 마음을 심리검사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읽고, 이론으로 진단하고, 언어로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정작 내 아이가 열이 나서 밤새 뒤척일 때, 그 어떤 전문 지식도 나의 무력감을 달래주지 못했다. 새벽 3시,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열에 들뜬 아이의 체온을 재고 해열제를 조금씩 먹이면서 나는 내 이론의 껍데기들을 하나씩 벗어냈다.


'엄마'라는 정체성 또한 이론으로는 길러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와 함께 눈을 맞추고, 때론 싸우고, 후회하고, 다시 사과하고, 그리고 또 싸우기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언어로는 정리할 수 없었던 '응어리'였다. 내가 지금까지 누군가의 삶에 이토록 깊이 관여해 본 적이 있을까. 그것도 이토록 전적인 책임을 지며.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양육자가 된다는 것은, 한 생애를 동반한다는 일은 그 어떤 책에서도 제시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전공서에서도 정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상담사로서, 나는 삶의 서사를 귀로 듣는다.

양육자로서, 나는 그것을 몸으로 겪는다.

그리고 이제 작가로서 그 서사를 글로 옮긴다.

세 겹의 감각이 내 안에서 겹쳐지며, 나는 조금씩 '엄마의 삶'을 통째로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요즘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양육자의 이야기를 모은다.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대부분 피로와 좌절, 눈물과 오기,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아주 작은 성취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누군가는 하루치의 육아일기를 머릿속으로 쓰고 있을 것이다. 바닥에 흘린 우유를 닦다가,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다가, 또 어딘가에서 죄인처럼 울음을 삼키며. 누군가는 아픈 아이를 안고 지금 응급실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끼니는 미뤄둔 채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하루는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은 책이 되기 전의 진실, 언어가 되기 전의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으나 몸에 새겨진 진실이 있다는 것.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는 모두 조금씩 내 인생이라는 책의 저자가 된다. 반복되는 문장을 견디며 한 편의 서사를 완성해 간다.

내 몸에 밴 이야기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들. 그 어떤 이론보다 단단하게, 그 어떤 문장보다도 깊게 내면에 남는 문장들. 그 이야기를 모은다. 그리고 나는 이 작업을 통해 다시 묻는다. 한 사람을 키우는 일은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삶을 건 이 여정은 양육자에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앗아가는가. 아이들이 자라면, 우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1화수능 시험이 사라진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