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가 잘 끌리지 않아 동행들이 끙끙된다.
아스팔트 도로에서 거친 흙먼지가 날리는 울퉁불퉁한 도로로 바뀌었다. 나는 배낭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이 자유로워 그들에게 약간의 힘을 보탠다.
원래 이번 일정은 나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딱히 동행도 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스터미널에서 이전에 마추픽추에서 함께한 동행들을 만난 것이다. 행선지가 같았다. 그렇게 일정을 함께하게 되었고, 덕분에 이번 여행도 혼자가 아니었다. 남미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그리고 다시 헤어지고. 남미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꼭 들어보는 말이 '시계방향'으로 돌건지, '반시계방향'으로 돌건지이다.
이는 남미대륙을 어떻게 이동할 건지를 말하는 것으로, 브라질을 시작으로 남부로 내려갔다 볼리비아, 페루 쪽으로 시계방향으로 이동하거나 페루를 시작으로 브라질 쪽으로 반시계방향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있다. 나는 후자인 반시계방향의 경로를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로만 같으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이전에 멕시코에서 만났던 동행들은 나와 경로가 반대여서 나는 남미여행의 시작이었는데 동행들은 마지막인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일정을 함께할 동료가 생겼다는 사실에 든든했고, 숙소도 추천받아 같은 호스텔로 예약할 수 있었다.
칠레의 첫 번째 도시인 아타카마는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그런 자연환경을 이용한 다양한 여행상품들이 있다. 나는 아타카마에도 사해와 비슷한 소금호수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소금호수까지 가는 방법을 알아보았는데 대부분 투어를 예약해야만 갈 수 있었다. 나는 소금호수만 가고 싶은데 이를 위해 비싼 돈을 내며 투어를 예약하는 것은 돈과 시간 둘 다 낭비였다.
그리고 한 블로그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사이클을 타고 소금호수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타카마 중심가에는 사이클 대여점이 꽤 있었다. "이거다!" 그런데 혼자 가기는 좀 무섭고... 결국 동행 한 분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우리의 소금사막행 사이클팀이 결성되었다. (비록 2명뿐이지만)
대망의 출발날이 밝았다. 말은 이렇게 거창하지만, 블로그에 따르면 자전거를 타면 금방 도착한단다. 약 한 시간 반정도? 나는 꾸준히 운동도 해왔고, '이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지'라고 생각했다. 전날 미리 예약해 둔 자전거 대여샵에서 자전거를 비롯해 헬멧등 필요한 장비들을 챙겼다.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드디어 출발!
힘차게 페달을 밟자 자전거가 앞으로 나아갔다. 울퉁불퉁한 흙길이 온몸에 느껴지며 적당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좋다. 오늘은 캐리어가 아닌 거친 자전거 바퀴가 흙먼지를 내며 굴러간다. 우리가 빌린 자전거는 나름 산악자전거 느낌이라 모험을 떠나는 느낌이 난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의 모습은 사라지고, 황량한 느낌이 나는 직선도로가 이어진다. 적당한 속도로 질주한다. 질주하고 또 질주한다... 끝없는 길이 이어진다. 우리는 잠깐 멈춰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체크한다. 약간의 기대는 큰 실망으로 다가온다.
'아직 많이 가야 하는구나'
온몸으로 느껴지는 흙길의 느낌은 엉덩이부터 시작해 몸 전체의 아픔으로 번진다. 아픔과 더불어 아무것도 못 먹고 나와서 배가 너무 고프고 힘이 없었다. 불타는 엉덩이와 의도치 않은 공복유산소의 조화다.
'끝나고 나면 다이어트효과는 확실하겠네.'
이런 우리의 마음은 모르는 듯, 다른 여행객들이 신나게 인사를 하며 '쌩' 지나간다. 우리도 힘을 내서 다시 출발한다. 소금호수를 가리키는 전광판을 지나 이전보다 더 방치된 흙 자갈길로 들어선다. 엉덩이는 더욱 불탄다. '맞다, 여기 사막이었지...' 잠깐 이곳의 존재를 잊고 있었지만 우리는 현재 사막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쩌면 힘든 게 당연한 거고,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로 잠깐 멈춰서 다시는 없을 이 경험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나의 배경을 책임져준 풍경을 쭉 감상했다. 정말 멋졌다. 내 모습만 제외하곤.
한 시간여를 더 달렸을까? 드디어.. 소금호수의 도착을 알리는 전광판이 보였다. 자전거를 전용주차장에 보관하고 인포메이션에서 입장확인을 한 뒤 소금호수 쪽으로 들어갔다. 호수가 가까워질수록 호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흙이 아니라 소금이 바닥에 가득했다. 하지만 호수는 다른 호수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물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상의를 탈의하고 호수로 달려갔다. 과감했던 준비동작과는 상반되게 누구보다 조심히 호수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남들이 다하는 자세로 누워보았다. '오오... 옷...!!' 뜨...뜬다...!! 몸이 뜬다!!' 가라앉으려고 몸에 힘을 줘봐도 몸이 그대로 물에 떠 있었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천천히 몸을 이동시켰다. 몸이 가라앉지 않아 여기가 얼마나 깊은 곳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 무서웠다.
동행이 소금호수의 신비함을 경험하는 동안 나는 밖에서 짐을 지켰다. 도난방지를 위해서다. 호수 밖에서 신나게 즐기고 있는 동행을 바라보는데 강한 햇빛에 물기가 마르면서 온몸이 소금범벅이 되었다. 말 그대로 절여졌다. 내 몸뿐만 아니라 들고 있던 핸드폰까지 완전히 소금에 절여졌다. 호수에서 나온 동행은 소금에 절여진 나의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전혀 모른 채.
다행히 호수 근처에 몸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기가 있어서 깨끗한 물로 소금을 덜어냈다. 그런데 샤워기 물에서도 소금물이 나오는 거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소금을 씻어내지 못한 거보다 더 끔찍한 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불쌍한 내 엉덩이. 돌아가는 길엔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말없이 자전거 페달 돌리는 소리만 가득. 남은 거리를 확인할 때마다 자전거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렇게 다시 아타카마 시내에 무사히(?) 돌아왔고 자전거를 반납하고 나서야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서 선풍기를 쐬며 호스텔의 침대에 누우니 이제야 살아 돌아왔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서서히 잠든다. 몸이 펴져버린 게 맞을 수도.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대단한 건 환경에 따라 빠르게 적응해서가 아니다. 생각지 못한 경험, 직면해보지 못한 환경 등에 빠졌을 때, 그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를 한 단계 발전시켜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같은 상황에 빠졌을 때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일종의 '능력'을 얻게 된다. 단순히 적응만 한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난 이유다.
앞으로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이 세상에 있는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겠노라, 또한 격렬한 신체활동 전에는 꼭 에너지를 보충할 것. 이러한 깨달음이 앞으로의 여행에 있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