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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끝에서 만난 코로나

by 떼오 Theo
한 달 동안 멀리도 왔다.


비행기 창 밖은 뾰족하게 솟은 설산과 그 주변을 휘감고 있는 작은 산들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 그리고 산티아고를 지나 대륙의 끝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했다. 저녁 늦은 시간,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까지 갈 방법을 고민하던 찰나에 아직 벤을 운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가 벤에 짐과 몸을 함께 싣는다. 숙소 위치를 알려주면 이동하면서 순서대로 내려주는 방식. 밤 열 시가 넘는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고, 장거리 이동에 지친 나머지 바로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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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과 가까운 탓일까?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게 분다. 외부의 차가운 바람과 달리 숙소 내부는 따뜻한 아침햇살과 산장 분위기의 인테리어 덕에 따뜻하다. 오늘은 쿠스코에서 만난 동행형을 만난다. 어젯밤 산티아고에서 일찍 넘어오기로 해서 같이 시내를 둘러보자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외출준비를 마친다. 그 와중에 꺼진 배도 든든하게 채웠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익숙한 실루엣이! 대륙의 끝에서 또 이렇게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안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외로웠는데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함께 걸으니 거센 남극바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날아갈 거 같고, 모자도 날아갈까 봐 푹 눌러쓰고선 우리의 목적지인 '세상의 끝'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 표시판에는 우리나라의 평창도 있었다. 누가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평창을 만나니 기분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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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의 가슴을 더 뛰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푼타아레나스의 명물(?)이 되어버린 바로 '코코맨 신라면'이다. 무한도전에 나와 유명해진 라면집이다. 당시 TV로 볼 때도 박명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도착한 곳이었는데 그곳이 눈앞에 있으니 멀리 왔다는 사실이 더 실감이 났다. 안타깝게도 문이 닫혀있어서 다른 곳을 가야 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또 다른 한식집 'Akakiko Sushi 아키코'라는 곳에 도착했다. 식당은 초밥집이지만 한국 사장님이 하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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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가 좋아서 방문했는데 좋은 이유가 있었다. 사장님도 너무 친절하시고 가격도 저렴하고, 심지어 라면 한 그릇을 시키면 튀김을 무료로 준다! 돈이 부족한 여행자의 마음을 알기에 라면 한 그릇을 시키면 그릇 두 개에 나누어 주기도 한단다. 하지만 우리는 배고픔을 참을 수 없어 각자 한 그릇씩! 그리고 롤까지 아주 사치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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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정신없이 라면을 먹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오늘은 손님이 없을 거 같다며 다 먹고 TV를 보면서 놀고 가라고 하셨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친 뒤 우리의 눈은 동시에 TV를 향했다. 뉴스에서는 코로나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듣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심각성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남미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못한 양, 사람들이 전혀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다른 나라 문제처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코로나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거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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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의 여행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라면 국물을 들이켜는 순간 그 걱정은 한방에 사라졌다. 앞으로 벌어질 재앙을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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