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현실로
장기여행을 다녀오면 항상 다짐했던 언어공부,
하지만 여전히 실패한다. 그 다짐은 한 달이 가지 않아 흐지부지된다. 특히 영어공부를 하다 보면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제 영어는 기본이 되었고, 잘하는 사람도 너무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특(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틀리면 고치려고 안달이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고서야 영어를 내뱉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여행을 하다가 주변에 한국인이 있으면 영어를 하지 않는다. 틀릴까 봐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전 파트에서도 말했듯이 프랑스어는 그런 나의 자신감을 되찾아준 언어였다. 왜냐하면 프랑스어는 영어보다 상대적으롤 할 줄 아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나를 '프랑스어 조금 하는 사람'으로 본다. 하지만 자신감은 생기지만 내가 하는 말이 틀리면 고쳐줄 사람이 없다.
아내와 함께 프랑스에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어학원에 다니는 것. 우리는 유학생들처럼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러워 보였다. 물론 유학생들 입장에서는 왜 부러워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누구한테는 꿈과 같은 일일수도 있다. 해외에서 공부하면서 외국 친구들을 사귀고, 문화체험을 하면서 현지 문화에 녹아드는 모습이 너무 낭만적이고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기회가 왔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어학원을 1~2개월 정도 다니면서 프랑스어를 배워 남은 프랑스 생활을 조금 더 풍성하게 보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파리에, 우리가 처음에 거주했던 파리 15구 근처에 우리 마음에 드는 어학원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한 어학원에 갔었는데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고, 우리의 진도와 추구하는 교육방식이 맞지 않았다. 그런 거 치고 가격도 비싸게 느껴졌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어학원은 학생비자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최대한 편의를 봐주는 곳인 거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비자보다 정말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한번 참관수업을 해보고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학원 등록은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파리에서 3개월 정도 여행과 더불어 독학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카페에서 공부도 하고, 도서관에서도 공부했다. 아내와 함께 끙끙대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기특했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았다. 특히 발자크의 집 안에 있는 카페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며 응원을 해주기도 했다. 뿌듯하면서 점점 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거보다 다양한 감정들을 프랑스어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보르도로 향했다. 확실히 파리보다 집값도 저렴하고(심지어 파리보다 집 크기는 2배가 넘는다) 물가도 저렴한 느낌을 확 체감했다. 인구밀도도 확실히 파리보다는 낮아 더 여유로운 느낌도 받았다. 서울에서 지방도시로 내려온 느낌이랄까? '이곳에는 괜찮은 어학원이 있지 않을까?'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다 발견한 한 어학원. 'comenfrance'라는 작은 어학원인데 소규모로 운영되고 가격과 후기들도 괜찮았다. 고민할 것 없이 이메일을 보내 헝다뷰를 잡고 방문했다. 직접 학원에 방문하니 생각보다 더 작았지만 한 강의실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바로 결제를 하기로 결정했다. 책으로 하는 일방적인 수업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소통하고, 계속해서 대화를 이끌어주는 방식의 수업이 마음에 들었다.
한 달 동안 아내와 나만 들을 수 있는 프라이빗으로 수업을 선택했고, 일주일에 두 번 월, 목 수업을 잡았다.
드디어 떨리는 첫 수업..!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3개월 동안 배우고 왔지만 그때는 한국에서 한국인선생님께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는데 해외에서 현지 선생님께 수업을 들으려고 하니 너무 떨렸다. 우리는 쭈뻣쭈뻣 학원문을 들어가 첫마디를 내맽었다. "Bonjour...?" 봉쥬흐...? 계신가요?
강의실에는 우리의 선생님으로 보이는 한 남성분이 긴 머리를 묶고 계셨다. 딱 봐도 첫 수업을 들으러 온 우리에게 밝게 웃으며 인사로 화답하고 바로 치고 들어오는 프랑스어. Ça va? 싸바? (프랑스 인들은 싸바라는 말을 엄청 사용한다. 영어로 하면 How are you? 의 뉘앙스이지만, 그것보다 더 다양하게 쓰이는 마법의 단어이다.) 우리도 똑같이 맞받아쳤다. Oui, ça va ! 위 싸바!
그렇게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 선생님 이름은 브느와흐였고 우리 소개도 간단히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온 이유, 보르도에 온 이유, 보르도에서 얼마나 지냈고, 어디에 갔었는지 등 일상적인 안부를 물으면서 대화 중 중요한 문법이 있으면 한 번씩 체크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이 되었다. 그런 식으로 한 시간 정도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프린트를 가지고 수업을 하는데 이것도 프린트 위주의 수업보다는 프린트 속 문법들을 활용하여 최대한 대화를 많이 하는 수업으로 진행이 되었다. 딱 우리가 찾는 방식의 수업이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선생님 브느와흐는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해주었다. 우리가 느려도 기다려주고, 짧은 문장에도 계속 꼬리를 물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의 수업태도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감사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선생님은 찾으라고 해도 만나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런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집에서 복습도 열심히 하고, 숙제도 빠지지 않고 해 갔다. 정말 학생이 된 것만 같았다. 비록 아내와 나 둘이서 하는 수업이지만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되었다. 사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학원생활을 꿈꿨지만, 어쩌면 곁으로만 보았을 때 좋아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고,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루어 나가면 된다.
여행도 다니고, 공부도 하면서 보르도에서의 두 달이 이렇게 마무리되어 간다. 우리는 마지막 수업을 가기 전에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고민만 하고 결국 아무것도 준비해 가지 못했다. 헤어질 때도 감사한 마음을 가득 전하고 싶었는데 언어가 되지 않으니 'Merci beaucoup 메흐시보꾸'로 밖에 전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보르도를 오게 된다면 꼭 부 느와흐 선생님을 보러 어학원에 들릴 거 같다. 그때쯤이면 이곳에 계시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으로서 도시를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부느와흐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