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프랑스의 파업, 우리도 경험했다.
때는 파리에서 잠시 벗어나 보르도에서 두 달간 지내며 근교여행을 떠났을 무렵이었다. 보르도에서만 해도 가볼 만한 곳이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방문해보고 싶은 도시가 따로 있었다. 보르도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바로 스페인 국경선과 가깝고 서핑으로 유명한 '비아리츠'이다. 프랑스에서 고급 휴양지로 유명한 이곳은 프랑스 최초의 해수욕장이 있고, 코코샤넬이 오랫동안 활동한 곳이라 유럽에서는 특히 유명하다.
우리는 여행 출발 일주일 전에 미리 SNCF(프랑스 기차예약 사이트 및 어플)을 통해 티켓을 예약했다. 가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냥 보르도 생장역에서 기차를 타고 쭉 가면 도착이다. 환승 없이 직항이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당일치기 여행이므로 아침에 출발해서 비아리츠 도착 후 점심을 먹고, 해수욕장과 비아리츠 시내를 여유롭게 구경하고 돌아올 예정이었다. 계획대로 된다면.
하지만 여행이란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는 법.
평소 계획대로 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살짝 화가 날뻔했다. 아니 화가 났다.
사건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는 예약한 기차를 맞게 잘 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편안하게 비아리츠까지 가면 되는 것이었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여가 지났을까? 기차직원이 돌아다니면서 티켓검사를 했다. 우리도 문제없이 티켓을 확인받았다. 하지만 직원이 티켓을 검사 후 우리의 목적지를 확인하더니 '비아리츠'는 어쩌고 저쩌고...라고 했다. 너무나 빠른 불어.. 그 순간에는 '비아리츠' 한마디에 '위!'라고 확신에 찬 듯 대답했다. 직원이 떠난 뒤 순간 들린 단어가 불현듯이 생각났다. 바로 'changer' (썽제)라는 단어를 들은 거 같았다. 설마 아니겠지...
"나 썽제를 들은 거 같아..."
아내에게 내가 들은 단어를 공유했다.
"설마 아니겠지...?"
우리는 설마설마했다.
그리고 마침 기차는 어느 역에서 생각보다 오래 정차를 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SNCF 어플에는 따로 알림이 뜬 게 없었다. 이전 남프랑스 여행을 했을 때 기차의 시간이 바뀌거나 하면 알림이 떴던걸 생각하면 이번에는 따로 그런 게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가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잠깐 기차에 문제가 생긴 거겠지.'
내 생각은 맞았다. 문제가 해결됐는지 바로 기차가 출발했다. 우리는 한숨 돌리고 다시 창 밖에 지나가는 풍경을 즐겼다. 그러나 뭔가 모르게 드는 이 찝찝함.
30분 여가 흐른 뒤 찝찝함을 참지 못하고 구글맵을 확인했다. 오 마이갓... 구글맵은 우리의 목적지와 정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장 이 사실을 아내에게 알렸다. '침착해...'
다음 역에 정차하자마자 후다닥 내렸다. 순간 정적.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역에 서있다. 우선 여기서 비아리츠로 가는 기차티켓을 다시 예매해야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역 직원에게 물어보니 다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차노선이 갑자기 바뀐 이유를 물어보니 파업 때문이란다. 그리고 역 안에 있는 기차노선을 자세히 보니 잠시 멈췄던 역은 비아리츠 방향과 바욘 방향으로 나뉘는 방향이었고, 만약 당시 상황에서 비아리츠롤 가야 했다면 기차를 갈아탔어야 했다. 티켓검사를 했던 직원분이 '썽제'라고 했던 게 맞았던 것이다. 우리는 비아리츠만 제대로 듣고 자신 있게 "위!!"라고 외쳤으니 직원분도 우리가 제대로 이해했을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한 시간 반정도 뒤에 비아리츠로 향하는 기차가 있어 티켓을 다시 예매를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동네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너무나 조용한 시골동네였다. 그래도 빵집은 있다. 빵으로 요기를 하고 다시 비아리츠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직항은 아니었다. 바욘에서 내려 거기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더 이동했다. 그렇게 우리는 2시간 거리를 6시간이 걸려 비아리츠에 도착했다.
모든 일정이 무산됐다. 여유롭게 비아리츠를 즐기고 싶었지만, 꼭 가봐야 하는 해변만 둘러보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다시 보르도로 돌아와야만 했다.
왜 이렇게 프랑스는 파업이 많은 걸까? 외국인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프랑스인들은 불만이 정말 많다고 한다. 그걸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파업일 것이다. 좋게 보면 나의 권리를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 즉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내 이익이 먼저인 즉 욕심쟁이, 불만쟁이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직접 거리로 나서지 않아도 개인이
SNS를 통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힘이 약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SNS상의 목소리가 한번 힘이 실리면 전 세계의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단순히 목소리에서 끝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거리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고 파업을 하는 것이다.
내가 100% 프랑스 사람들의 심리를 알 수 없지만, 프랑스 역사를 조금만 엿보면 해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몽마르트르에서 파리를 지킨 파리코뮌과 프랑스 대혁명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민중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온몸으로 체득한 프랑스 국민들은 지금도 그 역사적 피가 남아있는 듯하다. 이제는 그 역사적 피가 이전보다 작은 단위인 자신의 일터, 마을, 가족, 개인까지 지키는 하나의 수단이 아닐까 싶다.
모든지 악용되고, 깊게 빠지면 위험해지는 법. 우리가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결국 대화를 통해 지혜롭게 풀어가기 위함이다. 절대 갈라서거나 편을 나누거나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