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Screen
작가에게는 세 가지 세계가 있다.
블랙, 블루, 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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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꿈은 작가였다. 아이는 종이 위의 무한한 가능성을 사랑했다. 흰 종이가 까만 글씨들로 채워질 때 하얀 불안이 검은 안정과 명확성으로 뒤바뀌는 현상을 즐겼다. 아이는 아이였기에 이불을 뒤집어 쓰면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줄 알았다. 반대로 이불 아래 검은 세상에서는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였기에 하얀 이불을 뒤집어 쓰면 자신이 검은 신이 되어도 검다는 사실만큼은 들키지 않는 줄 알았다. 떠들썩한 수치와 공포와 눈물로 얼룩진 어느 날이었다. 아이는 하얀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서는 꽤 오랫동안 잠이 들었다. 새까만 잠 속에서 아이는 식은 땀까지 흘리며 악몽을 꾸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 연결되고 싶어. 글은 관계에 대한 아이의 소망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아이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진실한 관계였으며, 아름다운 언어와 의미로 가득한 긴밀하고 섬세한 소통이었다. 힘 있는 언어로 나를 뚫고 너에게로 가는 것. 세상과 마주하는 것. 그러니까, 살아내는 것. 살아내면서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면서 살아내는 것. 온 육신과 마음을 다해. 현실에서 예민하고 미숙한 아이에게 맞는 관계와 언어와 소통은 끊임없이 좌절되었다. 좌절된 욕망은 혼란한 악몽을 구성하는 대담한 요소들이었다. 아래로 아래로 깊숙이 소용돌이치는 구덩이 안에서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아이의 악몽에 푸른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악몽은 점차 푸른 바다가 되었다. 생명의 어머니, 제2의 어머니의 품 속에서 아이는 다시 양육되었다. 새로운 언어와 몸가짐을 습득했다. 새하얀 세상에서 아이는 소근거렸다. 내게는 슬픔도 절망도 있지만, 온화한 희망도 있어. 슬픔도 절망도 소외시키지 않는 공정한 평온이 있어. 그것은 검은 신의 지배를 벗어나면서도 검은 균열을 허용하는 새하얀 평면과도 같다. 눈이 소복히 쌓인 흰 평면을 비집고 새로이 조합된 텍스트가 정갈하게 튀어나온다. 기나긴 수면을 통과한 i는 종이가 스크린으로 전환된 시대에 깨어난다. 홀로 대면하는 종이가 아닌 연결되고 함께 하는 스크린. 아이는 아이가 아닌 채. i는, i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