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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Apr 21. 2019

평범한 무명 화가 고흐가 사랑한 마을, 프랑스 아를

#1

파리를 거쳐 니스로 그리고 다시 자동차로 38시간이 걸려 늦은 오후에 프랑스 아를에 도착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아를은 상상 속의 풍경 그대로였다. 색은 바랬지만 시간을 두르고 서있는 건물들과 소박한 광장의 회전목마,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스쳐가는 자동차 안에서 봤을 뿐인데도 애틋하게 기다려 온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약한 호텔에 주차만한 채 짐도 내리지 않고 드로잉 노트와 펜, 카메라만 챙겨 다시 광장으로 뛰어 나왔다. 빠르게 떨어지는 태양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져 거의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했다.      


건널목 앞에서 가쁜 숨을 돌리다 창 너머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를에서 급하게 뛰어 다니는 건 너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2

구시가지의 어떤 길이든 고흐의 걸음을 따라 걷는 기분이 든다. 골목길 구경에 전신없이 다니다보니 안쪽으로 로마 시대에 지어진 커다란 원형경기장이 나타났다. 경기장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커다란 몸집을 웅크리고 앉은 것처럼 있었는데 콜로세움에 비할바가 아니었지만 마을의 크기를 생각하면 과거 이 건물 앞에선 사람들이 느꼈을 장대함은 대단했을 것이다.      


마을의 축제 때가 되면 열리는 투우 경기를 보러 몰려드는 사람들 틈에서 고흐도 목을 빼고 흙먼지가 일어나는 투쟁의 현장을 살폈다. 결정적인 순간에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 탄식과 환호를 날리며 그 순간의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투우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그린〈구경꾼들>이라는 작품을 떠올리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빈 경기장에서 함성을 느꼈다.     


#3

장에서 서쪽으로 골목을 조금만 걸으면 고흐가 입원했던 생레미 정신병원이 있다. 이제는 고흐를 기리는 문화공간이 되었지만 그의 작품 속 풍경은 그대로 있었다. 볕이 잘 드는 정원 한 켠 기둥에 기대 책을 읽고 있는 여행자의 모습에서 고흐가 병원 정원에서 스케치를 하던 모습을 상사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순간에 나도 노란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정신없이 독서에 빠진 여행자를 스케치북에 그려 넣었다. 


#4

노란 벽면 때문이겠지만 포룸 광장에 있는 고흐의 밤의 카페의 외부는 그림 속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낡고 빛바랜 붉은색이 주를 이룬 카페 내부는 쓸쓸했다. 점원으로 보이는 두 여자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커피 한잔을 시켜두고 이층과 카페 여기저기를 둘러봤지만 고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흐가 수시로 찾아왔을 때도 그저 평범한 동네 술집이었을 이곳에 아무런 특별함도 없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스럽게 붙여 놓은 고흐의 그림 포스터가 여기저기 벽에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이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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