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이 긍정으로 변하는 다채의 과정 #02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일상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라 표현하곤 한다. 나는 이 말의 어패에 대해 인지하는 것이 우리 삶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람쥐나 햄스터는 본래 쥐과의 야생동물이다. 그들은 넓은 초원을 달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애완용으로 들이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쳇바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쳇바퀴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즐거움, 자유’인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관점에서 ‘쳇바퀴 돌리듯이 산다’는 부정적인 해석은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지. 달리고 있는 햄스터나 다람쥐에게 묻는다면 실은 저 지금 너무 행복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 죽기 직전의 햄스터들은 남은 힘을 쥐어짜 쳇바퀴를 돌다 죽는다고 한다. 그만큼 쳇바퀴는 삶을 가두는 ‘창’이 아니라 끝까지 태워보고 싶은 ‘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라는 문장을 다르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변화구를 찾는 것도 너무나 건강한 방식이지만, 전제를 바꿔보면 무언가를 찾는다는 부담스러운 행위가 조금 더 일상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현실이 갑갑하지 않다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매일 같은 출근길, 매일 같은 풍경, 매일 같은 대화, 매일 같은 업무, 매일 보는 유튜브... 여기서 ‘매일 같은’만 지우면, 뒤에 붙는 행동들은 자유로워진다.
하루의 기분이나 날씨에 맞춰 선곡한 음악에 따라 달리 보이는 출근길,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와 한 정거장 전에 내려 걸어가는 사무실 근처의 생소한 풍경. 늘 하는 스몰 톡 대신 상대방을 관찰하여 건네는 다정한 질문 하나. 익숙한 업무는 일찍 정리하고 스스로 주는 개인의 과제. 알고리즘 대신 직접 택한 조금 두툼한 지식서.
사는 것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송두리째의 ‘송’은, 포도‘송이‘ 할 때의 송이다. 그러니 한 알만 바뀐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게임 속 캐릭터도 아니고, 버튼 몇 번에 성별이 바뀌고 외모나 음성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어진 것에서의 최선‘에 다급히 눈을 돌려야 한다. 일상 안의 변주를 하루라도 더 빠르게 느낄수록,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의 빛깔이 다채로워지기 때문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남자 주인공 팀의 아버지는 시간여행자였다. 그가 깨달은 시간 사용법은 '하루를 두 번 살라'였다.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사람도, 일상 속에 맺힌 소중함을 깊게, 더 깊게 느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하루라는 쳇바퀴가 주어진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이 살았다.
다람쥐나 햄스터의 달리고자 하는 습성이
쳇바퀴를 만들었고, 그들은 달리면서 행복하다.
그건 <주어진 삶에서의 최선의 즐거움, 자유>이다.
누군가는 쳇바퀴를 갇힌 창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쳇바퀴는 주어진 삶의 낙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쳇바퀴를 돌리며 살았다.
그래, 잘 살아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