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는 그놈과 태준 엄마가 태준이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때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는 행동과 웃을 때 한쪽만 생기는 보조개까지.
사진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본다.
확실하다.
"그거 신기하죠? 거제도 가면 찍을 수 있는데, 우리 태준이가 너무 좋아해서 봄 되면 한번 더 가보려고요."
온갖 생각을 다 하는 와중에 태준이 엄마가 날 향해 말한다.
무슨 소리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보고 있는 사진 옆에 태준이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돌고래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다. 이것을 말하는 모양이다.
돌고래 얼굴과 태준이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 업 돼 있다. 눈에 확 띄는 돌고래보다 그놈이 먼저 보였다는 것에 짜증이 난다. 저놈의 얼굴을 가장 먼저 찾은 내 눈이 미워진다.
"아! 신기하네요. 여기 직접 돌고래 체험도 할 수 있나 봐요. 우리 애들은 이런 거 무서워할 텐데."
자연스럽게 잘 대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나쁜 짓 하다 들킨 상황을 잘 모면한 것만 같다.
"커피 거의 다 내렸어요. 오시면 돼요."
오라는 말이 들리지만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릿속에 태준이네와 관련된 또 다른 정보를 그놈과 대조한다.
태준이의 성은 진 씨다. 태준이를 처음 봤을 때 진 씨라는 것을 듣고는 움찔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놈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살면서 학창 시절 때 같은 반에 있었던 친구 한 명 정도 외에는 그놈을 만나기 전까지 거의 보지 못한 흔하지 않은 성씨다.
흔하지 않은 성씨를 가졌고 얼굴과 행동까지 그놈과 비슷하다면, 이 사진의 주인공이 그놈일 확률은 100%다.
그러면 그놈이 나를 버리고 떠나게 만든 그 여자가 태준 엄마인가? 등골이 오싹하다.
태준이가 세 살, 내가 그놈과 헤어진 것은 7년 전이다. 시기가 조금 뜨는 것 같지만, 오래 연애하고 결혼을 했다면 매칭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난 후 깨끗이 치워진 식탁으로 발을 옮겼다.
내게 커피를 건네는 태준이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적당히 마르고 하얀 얼굴에 단아하니 이쁘게 생겼다.
그놈의 취향이 어땠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기억 날 리가 만무하다.
진심이었는지 그냥 하는 말이었는지 모르지만, 항상 날 자신의 이상형이라 말해왔다. 그랬기에 늘 우리 집에서 날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말하던 놈이었다.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태준 엄마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내게 물었다.
"아니 그냥, 너무 상냥하고 친절하니까 내가 남자여도 반하겠다 싶어서요. 혹시, 태준이 아빠랑은 어떻게 만났어요?"
살면서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사건의 공범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꼭 알아야겠다는 의지가 잔뜩 담겼다.
가족사진을 보고 하는 질문이겠거니 느껴지도록 자연스럽게 꺼낸 질문이다.
살짝 부끄럽고 당황한 얼굴을 한 태준 엄마지만 또 상냥하게 조곤조곤 그놈과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한다.
이 대답으로 이 여자가 내 적인지, 여전히 내 친구인지 정해진다.
자, 어디냐. 그놈을 만난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