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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7. 2021

부동산 전문가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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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커가니까 집이 좀 작은 것 같네. 30평대를 분양 받을 그랬나 봐."


눈이 오는 주말이다. 며칠째 계속 오는 긴 눈이다.


출근도, 별다른 일정도 없어 내리는 눈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에 좋은 주말 아침부터 곰탱이 남편이 혈압을 오르게 한다.


24평인 이 집 조차 부담스럽다며 청약을 못 넣게 하던 사람이 30평대 타령이니.


"내가 무슨 말을 할 거 같아?"


한껏 열 받은 내 마음을 타이르고 말한다.


"뭐, 열 받는 소리 한 번만 더했다간 가만 안 둔다?"


이 인간이랑 오래 살았나 보다. 요즘 내 생각을 잘 읽는다. 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오빠가 청약할 때 24평펄쩍 뛰길래 30평대는 말도 못 꺼냈는데, 그때 오빠가 적극적이었으면 30평대 넣었지!"


그때 30평대를 넣었다면 3억 원 가까이 빚을 냈어야 했는데, 사실 그때 나도 3억 원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둘이고 집이 작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집값 상승률도 30평대가 더 큰 것 같고 남의 떡이 훨씬 커 보인다.


"오빠, 이 집 팔고 다른 데로 이사 갈까? 이 집 2년 살 양도세 비과세 혜택 받을 수 있으면 30평대로 옮기자. 요즘 호가 10억 정도 하더라. 신축이라 엄청 오르나 봐."


최근에 왔다 갔다 하다가 부동산 창가에 붙어있는 시세를 보고 온 터다.


10억. 드디어 백만장자가 눈앞이다. 아직은 그 10억이 호가일 뿐이지만 곧 거래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든다. 요즘 부동산은 활활 타오르는 '불장'이다.


집을 넓혀 이사를 가야 한다면, 지금부터 슬슬 알아봐야 한다. 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까지 이제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첫 집이자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 집이라 파는 건 너무 아쉽지만, 내 투자 안목을 믿고 더 좋은 동네, 더 큰 집을 산다면 더 큰 부자가 될 것만 같다.


안 그래도 이제 7살이 되는 은재가 1년 뒤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에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여기서 초등학교를 보내기 위해서는 큰길을 한 번은 건너야 하고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이왕이면 '초품아'라 불리는 초등학교를 단지 안에 가진 아파트면 좋겠고, 또 이왕이면 학군이 좋다는 목동으로 가고 싶다.


"글쎄, 가능할까? 한번 알아보든가."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말이지만 말의 온도가 처음 이 집 분양 받을 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부정적인 어조는 유지됐다.


이번에도 내 능력을 통해 이 계획이 실현 가능함을 남편에게 증명하고 싶어 진다. 


우리는 목동에 있는 초등학교를 품은 단지의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이다. 난 능력자니까.


그나저나 지난번 태준이네 집에 다녀온 이후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는 한 번도 그놈과 마주친 적이 없다.


뭐 변호사라면 엄청 바쁠 테고, 아침 일찍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올 것이고, 주말에도 무척 바쁜 것 아닐까?


TV 드라마를 보면 변호사들은 항상 바빠 보였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어진 듯하다.


아파트 길 건너에 있는 마트에만 가도 아무렇게나 옷을 입을 수가 없었고 항상 신경을 썼는데, 요즘은 그냥 '안 마주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다닌다.


이러다 얼굴 한 번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이사를 가는 것은 아닌지, 그러면 모두에게 좋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넓어지는 건지. 지금 전세 집도 어렵게 구했을 텐데, 법으로 보장하는 2년 마저도 채우게 하고 등 떠미는 게 맞나 싶다.


아니다. 그놈이 내게 상처 준 게 얼마나 컸는지 잠시 망각했다.


내가 이사를 나갈지언정 그놈에게 꼭 작은 아픔이라도 주고 가야겠다.


인생은 돌고 도든 것. 남한테 눈물 흘리게 했으면 본인도 피눈물 한 번은 흘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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