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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케이 Oct 17. 2021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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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 엄마가 나눠준 반찬을 들고 우리 집으로 건너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는 작은 반찬통 여러 개에 갖가지 나물을 담아 내가 갈 때 내 손에 들려주었다.


굳이 됐다는데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이 안 주고는 못 배길 모습이었나 보다. 조신하게 좀 먹을 걸.


식탁 의자에 가만 앉아서 골똘히 생각해본다.


'로스쿨?'


그놈을 처음 만난 곳이라고 했다.


로스쿨 동기로 처음 만나 친하게 지냈는데, 오랫동안 혼자 좋아했다고 했다.


로스쿨은 변호사 같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 가는 대학원이 아닌가? 역시 내 추측대로 그녀는 나와는 먼 부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차였을 때 그놈은 누구나 아는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그놈은 두 달 정도 연수에 가서 합숙을 하고, 부서에 배치받은 지 얼마 안돼 이별을 통보했다.


그놈은 어떠한 회사라도 잘 다닐 놈이었다. 적성에 안 맞다며 금방 진로를 바꿀 놈도 아니고, 적응력이 떨어지는 놈도 아니었다.


태준 엄마에게 자연스럽고 이상하지 않게 몇 살 때 로스쿨에 갔냐고도 물었다. 철저히 그놈에 대한 질문은 배제하면서 퍼즐을 맞춰갔다.


그녀는 스물여섯 살 때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때 그놈은 서른한 살, 회사를 퇴사하고 로스쿨에 진학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쨌든 그놈이 태준 아빠라는 명제에는 오류가 없다.


그렇다면 태준 엄마는 내 적인가?


그놈이 서른 살 때 나랑 헤어졌으니 그 이후 태준 엄마를 만날 때까지 1년의 시간이 뜬다. 그렇다면 적어도 태준이 엄마는 내 적이 아니라는 계산이 나온다.


괜히 다행스럽다는 마음이 든다.


이 판의 퍼즐은 다 맞췄다. 그놈이 내 옆 집으로 이사를 왔고, 그놈 이외의 다른 적은 없다.


그놈을 파멸시키고 싶은 복수심이 타오르려다 만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나도 뭔가는 희생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도 지킬게 많고, 그의 파멸은 내 친구에게도 타격을 줄 것이다.


조용히 그놈만 아프게 하거나 그놈을 안 보고 살거나 해야 하지만, 바로 옆집에 살면서 그놈과 마주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놈은 전세로 들어왔으니 2년만 있으면 나갈 것이다. 민지 엄마네도 남편의 부산 전근이 길어야 2년이라고 했으니 그 부분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벌써 한 달 이상 지났으니 1년 11개월만 그를 잘 피해 다니는 방법은 어떤가?


그놈이 신경 쓰여 힘들 테지만, 모두에게 좋은 방법 같아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왜 내 집에 살면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안 그래도 미운 놈인데.


아니면 내 존재를 알게끔 그놈의 와이프랑 대놓고 친하게 지내면서 그놈의 피를 말려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녀를 이용하는 것 같아 이 방법도 피하기로 한다.


여러모로 현실적인 방안을 고려한 정공법이 좋겠다.


모두를 위해 네가 떠나 주어야겠다. 두 시간 동안 식탁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고민한 결론이다.


정든 태준 엄마는 아쉽지만, 그놈이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빨리 여기서 나가라고 해야겠다. 그냥 보내긴 아쉬우니 조금이라도 마음 아프라고 소심한 복수는 해야겠다.


'오빠가 '전세'니까, 오빠가 나가는 게 수월할 것 같아. 난 아직 양도소득세 때문에 '내 집'을 팔 수가 없네.'


이 정도 멘트로 그의 맘에 생채기 정도는 내야겠다. 그래야 조금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집도 없고 처 자식 잘 적응해서 사는데, 자기 때문에 이사를 해야 한다면 마음이 좀 아프겠지.


내게 커다란 상처를 준 사람을 몇 년 만에 다시 본다는 것. 많은 감정 변화를 갖게 한다.


그놈을 봐서 그런지, 그때가 많이 생각나고 그때의 내가 많이 생각난다. 가여운 우리 미영이.


하염없이 7년 전의 나를 위로하다 문뜩 부부 둘 다 변호사인데 왜 아직 자기 집도 없이 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변호사가 되자마자 결혼했고, 아직 결혼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뒤늦게 변호사 씩이나 되는 세상 제일 잘난 여자한테 훈계질 해온 내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가정 주부면서도 연봉 1억 집 있는 여자니까. 전혀 부끄럽지도, 꿇리지 않다고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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