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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성 Aug 30. 2023

산전산후1

돌봄

“엄마~”


창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온 집안을 따스하게 물들이기 시작할 때 부신 눈을 가만히 떠보면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이 곁에 있고, 이내 엄마를 찾는 잠이 덜 깬 아이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시작되는 엄마의 하루는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기저귀를 갈고, 유축을 반복해야 하는 단조로운 하루를 엄마는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고, 편안하게 커피 한 잔을 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과 같은 육아를 하면서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엄마들은 점차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삶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이름조차도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포기해야 했었던 것이 너무나 많은 이 시대의 엄마들이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힘내자..”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해결할 수는 없다.

영화 '툴리' 스틸컷

이러한 출산과 육아를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툴리’를 보면 엄마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다.


아들 조나가 실수로 컵을 건드려 엄마 마를로에게 음료를 엎지르자 이미 탈진에 가까운 그녀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젖은 티셔츠를 벗어던지고, 몇 차례의 출산으로 망가진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때 그녀의 앞에 앉아 있었던 딸 사라는 엄마의 축 늘어난 뱃살과 퉁퉁 불어 터진 가슴을 보고 깜짝 놀라며 물어본다.

“엄마 몸이 왜 그래?”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답기를 원한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몸이나 마음이 점점 망가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육아를 하면서 자신의 몸이나 마음을 가꿀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마치 튼살처럼 생기가 없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게 한다.

영화 '툴리' 스틸컷

“당신을 돌보러 왔어요.”


마를로는 툴리 덕분에 조금씩 삶에 여유가 생기고,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서 조금씩 노력을 한다.


어쩌면 툴리와 같은 존재가 우리의 현실 속에 단 한 명만 있었어도 이 시대의 엄마들이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도 엄마라는 삶의 무게감으로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이를 감당하지 못해 사면초가에 몰린 엄마들이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다.


따라서 출산과 육아는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들에게도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쩌면 내 아내의 마음을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많은 남편들이 아내의 고충을 알고는 있지만, 그저 막연한 안심으로 모르는 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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