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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26. 2024

루틴한 삶의 역설

나는 어릴 적에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살고 싶었다. 그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면 그가 무척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느꼈다. 직장 생활에 얽매이지도 않고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가고 싶은 외국에서 마음껏 여행도 하는 삶이란 정말 근사하지 않는가. 한 마디로 그는 자유라는 나의 워너비 라이프를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하루 일과를 알게 되면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시기의 하루 일과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장편 소설을 집필하는 시기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정도 집필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10km 정도를 달리거나 1.5km 정도의 수영을 합니다. 그 후 책을 조금 읽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 밤 9시 경 잠자리에 들 곤합니다. 이런 루틴을 변동 없이 일정하게 매일 진행합니다.


하루키의 하루를 보면 이렇게 지루하게 사는 사람이 없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달리기를 하고 밤 9시에 잠자리에 드는 삶이란 어쩌면 매우 무료한 삶이다.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일까 라고 자문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자유로운 삶이란 사이클을 벗어난 삶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 하고 육아를 하는 삶이라는 것은 틀에 박힌 감옥 같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한 사이클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었다. 무언가에 종속된 삶이 아니라 그거로부터 해방된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분명, 하루키의 하루하루는 내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감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하루키는 감옥 같은 생활을 했다. 이 두 가지 방향에서 차이가 있다면 단 하나다.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부과한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길 원했다면 하루키는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생활했다는 점이다. 즉, 자의냐 타의냐의 차이다. 


내가 하루키의 삶을 보고 깨달을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자유는 자신의 통제력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파도 같이 큰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 큰 파도를 유유히 서핑 할 수 있는 통제력이 없다면 쉽게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그때 파도는 선물이 아니라 재앙이다. 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저 멀리 보내버릴 수 있는 재난이 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조직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24시간 중 12시간은 타의로 만들어진 시간을 산다. 직장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직장 안에서 업무의 조율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직장인은 내가 속한 조직의 시스템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나머지 12시간 남짓이다. 그 12시간을 어떻게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지에 따라 자유의 질이 결정된다. 그것은 하루를 어떻게 루틴화 하는지에 달려 있다. 


루틴은 에너지를 관리하고 스케쥴링 해준다는 면에서 좋다. 한정된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루틴이 잡혀 있다면 생산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루틴이 없다는 건 마치 충동구매를 일삼는 프로 쇼퍼의 행태랑 같다. 얼마 있지도 않은 통장 잔고를 생각하지도 않고 물건을 사는 쇼핑 중독자처럼 충동적으로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나의 에너지는 마이너스를 허덕이다가 결국 번아웃에 몰린다. 


우리가 쉽게 번아웃에 빠지는 이유는 쓰지 말아야 할 에너지를 쓰고 써야할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쓰기 때문이다. 결국, 멱살을 잡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에너지는 바닥나고 누군가의 목줄에 잡혀 타의로 이끌려가는 부자유를 경험한다. 루틴은 효율적인 생산성을 통해서 자신이 삶의 주도권을 만드는 유효한 전략이다.


루틴이 생산력에 좋은 이유는 결국 생산력은 집중력의 문제기 때문이다. 나의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과 예상이 잡혀 있다면 에너지를 쓸 때 집중력은 올라간다. 에너지를 써야 하는 구간과 에너지를 회복하는 구간이 명확하게 체계가 잡혀있어야 집중력이 높아지고 그건 곧 생산력으로 이어진다. 하루키는 자신이 왜 이렇게 규칙적인 삶을 사는지 이렇게 말한다.


반복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 되고, 이는 최면술의 한 형태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제 자신의 깊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최면술을 겁니다. 6개월에서 1년간 이런 생활 패턴은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꽤 높은 수준의 단련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편 소설을 집필하는 것은 생존 훈련과도 같죠. 신체의 건강함은 예술적 감각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루키의 규칙적인 삶에서 루틴은 에너지를 관리하고 달리기와 수영은 에너지의 용량을 확장해준다. 자유로운 삶이란 루틴과 운동, 이 두 가지의 생활 습관이 기본이 되어야 맛볼 수 있다. 루틴으로 꾸준히 에너지를 관리하며 나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운동으로 에너지의 총량을 확장하며 에너지를 다방면에 투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는 사이클을 탈주하는 데 있기보다 자유시 안에서 정형시를 쓰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하루키는 바를 운영하다가 소설가로 전향해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자주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내가 어릴 적 하루키의 삶을 봤을 때처럼 그를 멀리서 보면, 그는 일반적인 사이클에서 벗어난 삶처럼 보인다. 그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가까이에서 보면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하는, 어떻게 보면 지루한 삶을 살고 있다. 


하루키를 보면 사이클을 벗어난 삶이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벗어난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키가 단련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단한 루틴과 사이클을 만드는 것이 필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유로운 삶을 위한 역설이 있다.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감옥 같은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로 루틴한 삶의 역설이 될 수도 있다. 루틴은 당신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자유롭게 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삶을 잘게 나누고 조직적인 루틴을 만든다는 것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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