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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Feb 22. 2024

불안은 나를 복잡하게 만든다

불안해서 불안하고 그래서 불안하다. 불안은 구르면 구를수록 더 커지는 스노우볼 같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정수리 끝까지 차면 떨어지는 낙엽도 불안하고 신발 끈이 풀린 것도 불안하다. 불안은 자석처럼 내 주변의 일상들을 다 빨아들여서 자신의 몸짓을 키운다.


불안은 불확실함에 기생한다. 나영석 PD가 소스테이프를 100개까지 찍은 이유는 불안해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물어보자. 그럼 불안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 30개만으로 재미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해서다. 소스 테이프 30개로 시청률 20% 찍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100개 소스로 자신을 혹사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불안은 무(無)라고 말했을 때 그는 불안이 지닌 원초적인 불확실성을 염두 했다. 불안에는 실체가 없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는가. 이유 없는 불안함이 혈관을 타고 온몸을 휘감는 기분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함을 느끼는지, 이 불안이 무엇을 향하는지 도통 감도 잡을 수 없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공포와 불안의 차이를 대상의 유무로 파악했다. 공포에는 대상이 있지만 불안에는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개를 무서워한다고 해보자. 그 무서움을 없애는 방법은 간단하다. 개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면 된다. 하지만 불안은 그럴 수 없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애벌레처럼 내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시간을 두고 나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실체를 모르니 불안을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실체가 없어서 불확실하고, 그 불확실함은 불안을 만든다. 불확실함은 불안을 만드는 주요 동력이다. 그래서 불안의 시제는 미래다. 미래는 필연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지만 그것이 확실한 사실은 아니다. 확률일 뿐이다. 과거는 확실하다. 과거가 불안하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2시간 뒤에 시험 치는 데 어제 공부하지 못해서 불안해’ 라고 말해도 그 불안의 원인은 공부 못한 어제가 아니다. 2시간 뒤 있을 그 알 수 없는 미래의 시험이 불안한 것이다. 모든 불안은 미래를 향해 있다. 미래는 내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우리가 복잡하게 사는 근본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우리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늘 무언가를 한다. 왜 불안하지 모르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면 나을 거 같아서다. 적어도 무언가를 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이렇게 나를 혹사하는 인생이 과연 맞나 싶은 생각에 또 불안하다. 이렇게 당신의 외면과 내면은 복잡함에 잠식당하고 정작 찾아야 할 스스로를 잊고 만다.


불안이 만든 복잡함이 당신의 인생을 서서히 파괴하는 순서의 첫 시작은 망설임이다. 당신은 이미 불안함 때문에 A부터 Z까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었다. 이제 그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당신만의 힘으로 이끌어 나가면 된다. 하지만 불안에 중독 된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른다. 선택을 불안해하고 망설이는 순간이 길수록 점점 파국으로 인생을 치닫게 한다. 《불안의 철학》을 쓴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왜 사람이 망설이는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불안해져서 결정 내리기를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안하지 않으려면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망설이고 있는 동안은 결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반면 망설이기를 멈췄을 때는 바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결정을 나중으로 미루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볼안해지면 되는 것이다. 즉, 불안은 결정을 내리지 않기 위해 만들어 낸 감정이다.


망설임은 회색지대 시간이다. 한 마디로 버려지는 시간이다. 결단을 하고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도 아니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지만 거기에 따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망설임이라는 회식지대 시간이 잦아질수록 점점 내가 삶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나를 맞추게 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단순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은 빠르게 선택하고 수습한다.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은 늘 불안해하고 망설인다. 선택하는 사람은 결과를 불안해 않고 수습하려고 한다. 망설이는 사람은 결과를 불안해하며 신중이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한다.  


선택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체 삶을 놓고 봤을 때 그리 큰 비율은 아니다. 우리는 선택의 결과를 수습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선택은 찰나이고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되도록 수습하는 데 온 힘을 쓸 뿐이다.


단순한 삶은 선택을 통한 수습에 더 큰 비율이 있다. 더 나은 선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더 나은 수습인지가 더 중요하다. 수습을 잘하면 그 선택은 좋은 선택이 되는 것이고 수습이 엉망이면 그 선택을 잘했다고 해도 결국 잘못된 선택일 뿐이다.


솔직해져보자. 사실 우리는 불안해지고 싶어서 불안해하고 복잡해지고 싶어서 복잡해지는 건 아닌지. 지금 당신은 어떤 불안에 중독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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