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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1 정의

내가 만든 정의

by 오필

호화로운 한 침실. 이곳을 홀로 사용하는 사람은 황자 세르바부스다.

엄마의 죽음 이후, 그가 유일하게 홀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황자 업무로 인해 쉴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침실 한편에 간이 서재를 만들어 사색을 하거나 자신을 기록해 놓는다. 자신을 기록하며, 일기인지 일지인지를 써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야망과 야망 속에 숨겨진 슬픔만이 남아있다. 이 기록만 훑어보아도 그의 삶을 알 수 있으리라. 이 기록의 첫 장에는 단 한 문장만이 적혀있다.

'자유를 위해 먼저 쇠사슬을 움켜쥐겠다.'


자유를 위해 먼저 쇠사슬을 움켜쥐겠다.

1323년

그는 엄마의 죽음을 지켜만 봐야 하는 아들의 심정을 아는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그를 내가 얼마나 원망하는지 아는가?

나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슬플 수 없었다.

슬픔이 나를 지배하면 다시는 일어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황궁의 사람들은 침묵했고, 나는 그 침묵을 규율이라 불렀다.

규율은 슬픔보다 무겁다.

슬픔은 흘러가지만, 규율은 남는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남는 쪽을 택했다.

...

격렬해진 황자교육부터 업무까지 쉴 새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나는 그날이 일어난 이후로 무너진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접었다.

아스테라의 죽음은 나의 본질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나는 잘 버텼다.

접은 감정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나는 버틸 수 있다.

칼레온의 규율 속에선 무너지지 않는 자만이 무언가를 세울 수 있다.

버틴 자만이 쇠사슬을 쥔다.


1324년

황자 업무를 하다 보니 그들이 왜 아스테라를 죽음으로 몰았는지가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그들이 황궁에서 칼레온의 규율을 따르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언제나 자유보다 먼저 움직인다.

그들은 아스테라가 말하는 자유, 변화를 무서워했다.

그 두려움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유는 다시 불태워질 것이다.

나는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는 자리에 오를 것이다.

...

요즘 문서에 서명을 하고 명령을 내릴 때면 두려움을 다룰 방법이 눈에 보인다.

나는 세 가지 방법을 배웠다.

빠르게 결정할 것, 놀라게 할 것, 그리고 침묵하게 할 것.

그 세 가지가 모이면, 두려움은 내 편이 된다.

두려움이 내 편이 되면, 자유는 불태울 수 없다.


1327년

황궁은 여전히 칼레온의 규율에 갇혀 있다.

나는 황제가 되기 위해 그것을 따른다.

그러나, 자유를 없애는 그 규율을 믿지는 않는다.

내가 규율을 믿지 않는 이유는 물음으로 답 할 수 있다.


아스테라가 마녀사냥을 당할 때 황제는 뭘 했는가?

나의 엄마가 죽임을 당할 때 나의 아버지는 뭘 하고 있었는가?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잘못된 칼레온의 규율, 황궁에서 사라진 포르투나 엘렉티오의 진실된 역사를 알지 못하니까.


그를 원망한다.

사람이 있고 규율이 있지, 규율이 있고 사람이 있지 않다.

그는 내가 그날 뛰쳐나가 아스테라의 죽음을 막으려 했다면 나까지 죽였으리라.

...

황궁의 공기는 아직 칼레온의 규율로 숨 쉰다.

나는 그 공기를 마신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러나 숨을 내쉴 때마다 염원을 담는다.

이 숨을 내 뜻으로 돌리는 날이 자유의 시작일 것이다.


권력은 단지 수단이다.

수단이 없다면 자유는 말뿐이게 된다.

나는 내 뜻이 통하는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황제의 자리를 향한 길이라면, 그 또한 감수한다.


1328년

황궁의 사람들도 자유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자유를 원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자유는 세습이고 핏줄이다.

그들에게 자유는 권력을 쥐는 것이고, 누리는 것이다.

삶에서의 자유가 아닌 핏줄의 자유를, 세습의 자유를 따른다.


사람은 믿을 수 없지만, 자리는 믿을 수 있다.

자리가 모이면 체계가 생기고, 체계가 생기면 명령이 통한다.

명령이 통하면 나는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자유롭게 명령하고 싶다.


자유를 위해 권력을 쥔다.

그 권력이 나를 속박할지라도,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쇠사슬은 생각보다 손에 잘 맞는다.

...

내가 차기 황제로 거론되는 횟수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이름이 거론될수록 이유는 따라온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름이 아닌 구조가 나를 그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을.


문득 루카르가 떠올랐다.

황제가 된다면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자가 곁에 있어야만 한다.

루카르가 내 곁에 있으면, 나의 결정을 설명하는 절차가 줄어든다.

설명이 줄어들면, 통치는 단단해진다.

단단해질수록 자유는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루카르를 곁에 둘 이유다.


칼레온의 규율에서 루카르를 황궁에 부를 수단이 필요하다.

세습이라는, 그들의 자유에 타격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곁에 둘 구조가 필요하다.


1331년

루카르가 내 곁에서, 황궁에 자리를 잡았다.

루카르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움직였다.

루카르는 말이 아니라 구조만으로도 이해한다.

나는 방향을 말하고, 루카르는 틀을 만든다.

나는 목적을 말하고, 루카르는 길을 닦는다.

루카르는 나의 손이자, 나의 계산이었다.


요즘은 결정보다 침묵이 더 큰 명령이 된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스스로 움직인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벌이 아니라 자리의 모호함이다.

모호함은 그들의 상상력을 나에게 묶어두게 만든다.

나는 그 상상력을 놓치지 않는다.


두려움이 내 편이 되자, 사람들의 말이 달라졌다.

명령은 머뭇거림 없이 전달되고, 보고는 내 뜻에 맞춰 올라온다.

이제 두려움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할 것은 확신이다.

그 확신이 내 정의가 될 것이다.

내가 쥘 쇠사슬은 이제 무겁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무게는 내가 만든 확신의 무게다.


1336년 황제 즉위

자유를 위해 쇠사슬을 쥐겠다고 쓴 지 오래다.

나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시기에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자리를 얻었다고 해서 바로 권력을 쥔 것은 아니다.

황자 시절에 마주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이들이 황궁을 채우고 있었다.

황제의 자리에 앉았음에도 그들을 쉽게 움직일 수 없다.

황제에 걸맞는 구조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황제는 허울뿐이다.

자리는 허락이었고, 권력은 여전히 허락 밖에 있었다.


황제가 되어 바라본 황궁은 사뭇 달랐다.

명령은 쉽게 내릴 수 있으나, 명령이 닿는 곳은 멀었다.

권력은 자리의 높이에 있지 않고, 말이 멈추는 곳에 있었다.

그곳까지 손을 뻗으려면, 한 번의 명령으로는 부족했다.

칼레온의 규율은 여전히 황궁의 공기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선황의 이름만이 머물 뿐 그의 위엄은 존재하지 않는다.

...

황제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침묵의 의미를 알겠다.

아버지가 침묵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경로를 본 것이다.

명령이 닿기 전의 공백은 가장 위험하고, 또한 가장 필요했다.

그 공백에는 아스테라의 죽음을 막고 대륙의 분란을 만들 것인가,

아스테라의 죽음을 허락하고 대륙을 지킬 것인가의 갈림길이 존재한다.

황제가 무너져내리는 것은 새로운 황제의 탄생이 되지만,

황궁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대륙 전체의 몰락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이 공백을 메우는 황제가 될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되 그 뜻을 따르지는 않는다.

나는 이미 황자 시절 아버지가 본 한계에 대한 방법을 찾았다.

침묵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구조로 다스린다.

침묵은 사라지지만 구조는 남는다.

나는 말보다 빠른 구조를 세울 것이다.

그것이 진짜 권력이고, 진짜 자유다.

...

루카르의 계산 아래 나는 경로를 바꿔나갔다.

명령서의 전달 순서를, 서명문의 종이 방향을, 보고가 올라오는 시간을.

그 작은 차이가 하루를 바꾸고, 하루는 곧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철저한 설계라 부른다.

루카르와 나는 설계를 통해 구조를 만들었고, 그 구조는 정당한 권한을 만든다.

나는 그렇게 황제에 걸맞는 권한과 권력을 쥐었다.


언제부턴가 루카르의 정의는 진실과 멀어졌다.

자신이 만든 정의가 곧 진실이 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진실이란 믿음이 아닌 균형이어야 한다.


1341년

나는 이제 안다.

자유는 허용이 아니라 분배다.

권력은 자유를 분배하고, 그 분배는 정의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는 무너지지 않는 세상이다.

그 세상을 지탱하기 위해선 균형이 아닌 무게가 필요하다.

나 세르바부스는 그 무게가 되기로 했다.


정의란 무너지지 않는 자유를 설계하는 일.

나는 새로운 황제로서 그것을 완성했다.


마지막 기록

세르바부스는 황제가 된 이후로 자신을 기록하는 것이 뜸해져 갔다. 그리고 1341년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황제의 자리만 탐했다면 진작에 황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궁의 자유라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이는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치기 위한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의 뜻이 바뀌는 것을 막는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오랜 황자 시절, 자유를 위해 묶었던 쇠사슬이 너무나도 편해졌던 것일지도, 익숙해져서 자유를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황제가 되기까지 받아들였던 현실을 자신의 힘으로, 능력으로 바꾸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황제가 된다고 이 버거움이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미리 알고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묶고 풀 수 있을 줄 알았던 쇠사슬을 맘대로 풀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황제가 된 후 바라본 현실 속에서, 자유로 시작했던 신념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그가 믿었던 자유는, 그가 만든 정의라는 구조 속에서 일부만 존재했다. 오로지 권력을 위한 자유, 권력에 의한 자유, 권력 속의 자유였다.

그는 어린 황자 시절 황제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치욕스러워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때마다 그는 스스로 느꼈다. 아버지의 핏줄임을 부정할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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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키워드 - 정의 균형 책임

세르바부스는 엄마의 죽음 앞에 세웠던 결심의 열매를 맺지 못했다.

자신이 원하는 열매를 맺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세월이 너무나도 길었다.

결국 현실에서 그의 마음속에 쌓여간 것들은 다른 결실로 도달했다.

자신이 살아온, 자유를 위한 삶을 부정할 수도 없고

자유를 얻기 위해 권력을 손에 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 정당화를 했고,

자신이 어려서부터 꿈꿨던 것을 정의라 정리했다.

정의에 속하는 가치관은 사람마다 달라진다.

고로 어려서부터 추구하는 정의라는 말은 진실이 된다.

다만 정의 안에 속한 가치관이 달라진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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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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