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독후감
트레바리 '이참에 읽자' 북클럽, 루이제 린저 『삶의 한가운데』
[개요]
주인공 니나의 삶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소설. 니나의 친언니 마르그레트가 니나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진행되며, 니나와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던 마르그레트는 몇년만에 니나의 부름으로 그녀를 찾아간다. 마르그레트는 니나를 평생 사랑했던 남자 슈타인의 일기를 함께 읽으며 니나에 대해,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삶이란 손에 쥐어 가질 수 있는 물건 같은 것이면서도, 그 소유자를 이끌며 때로는 벌하는 인격체이기도 하다. 삶은 누군가에게 속해 있기는 하지만 제 의지가 있어 무척 다루기가 힘들어서 보통 사람들은 삶을 크게 욕심내지 않는다. 반면 니나처럼 삶을 온전히 갖고자 투쟁하는 사람도 있다. 니나는 하나의 거대한 충격보다 여러 개의 작은 자극들을 원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며 우리를 앞으로 진전하게 하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라 했다. 니나가 생각하는 충격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진전해야 할까?
사람마다 각자 더 나은(진전하는) 삶을 살고 싶은 이유가 있을 텐데, 결국 그 기저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생명이 죽음에 이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픔에 대한 두려움이나 정말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서라기 보다도 죽음의 순간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되는 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나간 시간에 후회가 있어도 내가 살아있다면 미래에 그것을 만회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죽는 순간 그 가능성은 사라진다. 과거에 저지른 과오들, 언젠가 바로잡아야지 하고 내 진심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일들이 모두 나의 진실이 된다. 죽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결되는 순간이다. 매 순간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면 죽음의 판결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니나는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한다.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지식을 가르치는 대학을 그만두든지, 억울한 사람들의 망명을 돕는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타지로 떠나는 것처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선택을 떠넘기거나, 미루거나, 타협한다. 결국 니나가 생각하는 충격이란 매 순간 주어지는 운명에 대한 선택이며, 그 선택들이 모여 온전한 자신의 삶을 만든다.
니나는 소설가로서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작품에 반영한다. 소설가는 누군가의 삶을 글로 지어 사람들에게 파는 직업이다. 그래서 니나는 진짜 삶과 팔리는 삶 사이의 간극을 안타까워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선택한 안온한 삶과 비슷한 하나의 정돈된 결말을 원한다. 그러나 니나는 진짜 삶은 하나로 단정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쓴 소설이 삶은 없고 삶의 형식만 담은 장식품이 되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경계한다. 니나를 흠모하면서도 평범한 결말의 소설을 즐긴다는 점에서, 결국 사람들은 안정된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의 자극을 원하며 항상 자신의 삶을 반복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를 반복하는 심리는 니나가 말한 진정한 삶에 대한 의지보다는 마르그레트가 말한 평화에 대한 의지에 가까울 것이다. 슈타인의 일기에서 니나의 성공적인 신작에는 초기 그녀의 글이 가졌던 다차원적인 면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진짜 삶의 면모는 어느정도 덜어내면서 니나의 숨길 수 없는 생명력을 담은 소설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니나가 말하는 삶만이 진정한 삶이라면, 대부분 사람들의 인생은 모두 틀렸다고 말해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니나가 말한 것처럼 삶은 하나로 완결지을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대부분 사람의 삶이 틀렸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삶을 대하는 마르그레트와 슈타인의 태도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두 사람의 삶은 주변과 타협하며 산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마르그레트는 니나의 삶에 끌리면서도 주변과 융화되어 평화를 이룬 자신의 인생을 인정하고 긍정한다. 하지만 슈타인은 니나의 삶에 끌리면서도 주변과 타협하는 자신의 삶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다. 결국 "타협하는 삶이란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기준 역시 선택에 달렸다. 타협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 자신의 선택이었는지, 떠밀린 선택이었는지. 마르그레트는 그런 삶을 스스로 선택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삶을 살다 보니, 그리고 정반대의 삶을 산 니나와 자신을 비교해 보니 평화를 선택한 것이 자신과 맞는다고 여겼고, 슈타인은 자신의 선택이 틀린 줄 알면서도 용기가 부족해 결단 내리지 못했다.
결국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면 되는 것이다. '삶의 주인은 나 자신', '내가 선택하는 인생' 등등 주체적인 삶에 대한 문장들은 여기저기 넘치지만 그 문장들이 너무 흔하게 쓰여서일까, 어떤 문장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누구나 아는 문장 하나에 도착하기 위해 기나긴 생각이 필요했다. 삶으로 가득한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내리는 수많은 선택의 귀중함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