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누려온 행복 아이콘 ~
지난가을 오 년 만에 고향친구를 만났다.
서울에서 함께 근무하다 퇴직을 하면서 친구는 부산으로 이사를 갔다. 친구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는 아들한테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연락을 주었다. 나는 서울까지 왔으니 얼굴이라도 보고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먹자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덜컥 약속을 잡고 보니 하필이면 잇몸에 염증이 생겨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치료받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가끔 통화나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을 때마다 보고 싶다는 말대신 ‘언제 만나서 밥이라도 한 번 먹자.’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 약속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약속장소인 L백화점 8층 식당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먼저 와 있던 친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름을 부르며 그동안 쌓인 그리움을 달래느라 서로를 얼싸안고 몸을 흔들었다. 지나온 세월이 한순간으로 좁혀진 듯했다. 점심 메뉴를 고르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데 친구가 발을 조금씩 절고 있었다. 가을이라 단풍만 쳐다보며 걷다가 발을 접질렸는데 인대가 찢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깁스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인대가 붙으려면 두세 달은 걸린다고 했다. 발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만남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심전심이었다. 왜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서로에게 원망 아닌 원망을 했다.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걷다가 잠시 휴식용 의자에 앉아서 자유자재로 걸을 수 없는 불편과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고충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먹고 걸을 수만 있으면 무엇인들 못 할까 싶었다.
한식집에 들어왔다. 내 잇몸을 생각해서 청국장찌개백반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친구는 불편한 발을 이끌고 서울까지 온 이유를 털어놓았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일하는 성취감과 혼자 지내는 자유에 푹 빠져서 독신 생활을 즐기는 아들 때문이었다. 애간장이 탄다고 했다. 새치머리 희끗희끗한 친구가 측은해 보였다. 너무 걱정 말라고 위로하면서도 내 말이 너무 궁색했다. 멀건 내 위로가 무슨 힘이 되랴. 친구는 아들만 생각하면 밥맛도 없고 세상 사는 맛이 나지 않는다며 식탁에 놓인 물을 자꾸 들이켰다. 아들과 입씨름하느라 아침도 굶었단다.
이야기 도중에 청국장찌개가 뚝배기에서 펄펄 끓으며 도착했다. 친구는 국물이 끓어 넘칠까 봐 얼른 국물을 떠서 호호 불어서 후루룩 들이켰다. 밥맛이 없다고 하면서도 이미 먹을 태세가 되어 있는 모습에 둘은 실소를 터뜨렸다. 밑반찬으로 나온 총각무김치, 양념게장, 멸치볶음, 콩자반도 정갈한 모습으로 우리 입맛을 돋우었다. 구수한 청국장찌개에 식욕이 돌았는지 친구가 점점 맛있게 먹는 눈치다. 다행이었다. 친구가 푸른 무청이 달린 총각무김치를 우걱우걱 소리가 날 정도로 씹어먹다 말고 멈칫했다. 그저 찌개 국물이랑 두부를 밥에 비벼서 우물우물 대충 씹고 넘기며 밥과 씨름하고 있는 나를 건너다보았다. 친구가 급히 어디론가 가더니 총각무김치를 난도질해서 이유식처럼 아주 잘게 만들어 한 접시 들고 왔다. 주방에 가서 특별히 부탁했단다. 친구는 양념게장 살도 발라 주었다. 내 걱정 말고 어서 먹으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친구는 아기 밥 먹이는 엄마 같았다.
우리는 밥을 먹었다기보다 청국장처럼 발효된 정을 곱씹었다. 나부터 챙겨주느라 친구는 더 늦도록 밥을 먹었다. 남은 반찬을 싹싹 비우며 밥을 아주 달게 먹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며 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행복이 뭐 별것인가 바로 이게 행복 맛이 아닌가 싶었다. 아들 결혼 걱정도 청국장찌개에 풀어져버리고 나의 잇몸 통증도 친구 이유식에 좀 가라앉은 듯했다. 밥을 다 먹은 친구가 숟가락을 놓으며 맛있게 먹고 배부르니 아들 걱정이고 뭐고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해서 우린 절로 웃음보가 터졌다. 발이 아프지만, 잇몸이 아프지만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아픔을 견딜 마음 근육이 생기고 걱정도 좀 옅어진 듯했다. 밥심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엄살 좀 떨지 말라고 서로에게 농담까지 곁들이며 웃어 대다가 화장지로 눈물까지 찍어냈다. 한참을 웃고 나니 배는 부르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아들결혼 걱정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발 불편과 잇몸 염증도 별 것 아니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식당을 나와 친구를 배웅하느라 팔짱을 끼고 걸었다. 함께 먹고 걷는 한 조각 행복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졌다.
친구와 만나고 해가 바뀌었다.
발도 다 낫고 잇몸도 다 나으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아쉬움 속에 헤어졌는데 친구는 지금 암투병 중이다. 친구는 힘이 없어 보행기를 의지해서 걷는다. 한 번에 스무 알이 넘는 약을 먹기 위해서 억지로 밥을 먹는다. 지난번 통화에서 “아들 결혼도 시키려면 밥도 잘 먹고 보행기 밀면서라도 걸어야 해”라고 말하자 친구는 “ 결혼도 내 욕심이고 안달복달했던 내가 부끄러워.” 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병 온 아들이 밥을 떠먹여 주면서 “ 엄마, 나의 가장 큰 소원은 엄마가 건강해지는 일이야. 그러니 그저 밥 잘 먹고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걸어야 해.”라고 다독여 주더란다. 친구의 훌쩍거리는 소리에 나는 절절해진 가슴을 쓸어내렸다. 때로는 괜찮은 척 힘들지 않은 척 하지만 나날이 약해져 가는 목소리를 들으면 숨결이라도 불어넣어 주고 싶다.
이제 안부를 물을 때마다 먹고 걸었다는 대답이 친구가 살아있다는 표시가 되었다. 먹고 걸으며 하루씩 보태가는 삶이다.
사람은 역시 밥심으로 살고, 걸으면서 삶을 이어왔음이 확연해진다.
평생 무심히 해온 먹고 걷는 일! 매일매일 누리면서도 미처 알아보지 못한 행복 아이콘이었다.
평생 그럴 수만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