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한 퇴사준비 1
퇴사는 왜 박수받지 못하는지
퇴사를 이틀 앞두고 앉아있는 사무실 데스크에서,
제목이 보이지 않게 엔터를 여러 번 치고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글.
나는 요즘 너무 아팠다. 몸이? 마음이? 둘 다!
처음에는 몸이 아픈 줄 알고 골골거리며 누워있기만 했는데, 곧이어 마음이 아팠고,
나중에는 어떤 것이 더 아픈 것인지 구분할 수도, 구분할 필요도 없이 무기력해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의 시선과 판단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성격이었다. 고등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나를 만난 사람들 중 몇은 겉만 한국인이지 속은 서양애들 같다고 '바나나'(요즘 시대에는 이것이 인종 차별적 발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대부분의 이슈에 대해 나만의 분명한 주장이 있었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대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던,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에 자신이 있던 맹랑한 아이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미성년자이기에 모든 종류의 자유가 주어지진 않았지만, 누구도 나의 사고의 폭과 방향을 제한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런 것의 반대급부로 나는 때로는 이유 없이 오해를 사거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아마 선생님이든, 친구들이든, "다들 가만히 있는데, 쟤는 대체 왜 저래?" "왜 저렇게 눈치가 없어?" 등의 이야기를 내 머리 뒤로는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나는 전형적인 조직 부적응형 인간으로 자란 것 같다. 이유 없이 시키는 일은 싫었고,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나 억지스러운 요청 등에 가만있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이상을 가지고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물론 사회적 동물로서 잘 적응하기 위해, 어설프게나마 처세술을 익혀 보려고 하였으나, 도, 모 사이의 개나 걸이었다. 배웠지만 체득하지 못했던 직장생활의 비기들은 엉성하게 머릿속에서만 걸리적거렸다.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갑작스럽게' 퇴사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인 나와 개인적 나는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을 겪어 왔다. 충성도, 안충성도 못하는 내가 이직을 꿈꾸며 몰래(!) 다른 회사 지원 준비를 하다니!.. 현 상황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대한 못내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기를 갈망하면서도 여전히 현 회사가 주는 혜택이나 제한된 자유에 그래도 고마움을 느끼고 충성해야 하는 건 아닌지 도덕적인 양심의 가책이 들기도 했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지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3개월 정도의 긴 전형 끝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 과정도 참, 할 말은 많지만 우선 표면적으로는 "이직 성공"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직장에서의 정의로움은 글자 그대로 바르고 옳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업무에서나 소통에서 가식 없이, 거짓 없이 솔직하게 내 판단을 드러내는 일이다. 물론 조직 내의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높은 수준의 정직함이나 도덕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오래도록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어찌 되었건, 이직을 준비하던 나는 그 정의로운 가치와 규칙을 살짝씩 비껴나가 "이기적으로" 보이는 선택들을 하는 것으로 자꾸만 유도되고 있었고, 점점 더 상황을 있는 그대로 오픈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이상과 현실의 내 행동이 보여주는 가치의 갈등 때문에, 회사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이 쿵쾅거리고, 만성적인 우울감이 들기까지 했다. 나 스스로는 나답지 않은 선택들을 계속하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 생기는 게 못 미더웠다. 나는 매일매일 되뇌었다. 나는 지금의 내 선택에 왜 당당하지 못한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나는 내 선택과 진로에 대한 고민에 대해 부끄럽지 않다. 적극적으로 대안을 탐색하는 것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이유는 바로 "타인의 시선"과 "판단"이었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한 발언, ~한 행동, ~한 선택을 했을 때, 상대방이 ~라고 생각하겠지, 라는 선입견이 나를 겁먹게 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또 타인 의식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대기업이라는 조직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들'과 다른 내가 되는 것이 어느 순간 두려워졌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칭송받지는 않아도 되지만, 나쁜 사람으로 욕먹는 것은 무지하게 싫었던 것 같다. 튀어서 욕먹는 것에 대한 혐오감을 배우게 되었다.
도덕적인 갈등이 생겼던 분명한 이유도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나름의 특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일정기간 업무에서 배제되어 본인이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직무적합성과 조직 구조에 대해, 그리고 회사생활에 대해 고민하던 시간이 길었던지라, 떠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것이 덜컥 선발이 되고 만 것이다. ((나처럼 완료하지 못한 전례가 있었던지, 끝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 사용한 예산을 모두 반납겠하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시작한 터였다.))
이직 가닥이 프로젝트 진행 중반 이후에야 잡히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결국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걸 프로젝트 차 머물고 있던 뮌헨에서 알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내가 상상 가능한 가장 뾰족한'다른 이들의 시선과 판단'이 칼이 되어 코끝까지 날아왔지만, '어떤 것은 끝을 알고도 시작한다'는 드라마 미생에서 들은 오 차장의 말을 명패 삼아 멘탈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는 어떤 모습의 공적인 나로 존재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잃을 것도 감수해야할 것도 분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퇴직을 알려야 할까? 어디까지 오픈해야 할까?를 수없이 고민하고, 파고들었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가까이 생각에 생각을 해봐도, 정답이 없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럴 때는 보통 사람들은 주사위를 던지거나,
비슷한 경험을 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계속 고민하다가 랜덤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나는 주사위를 던졌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곧장 조언을 구했고, 결국 랜덤과 다름없는 선택을 했던 것 같다.
아, 어리석었던 그때의 나에게 아주 잠깐만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다면, (계속 보내고 있어도 해석을 못했겠지..)
지금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말해줄 수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결국 나는 며칠간 퇴직하며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감정과 상황은 모두 떠안은 채,
내 두 번째 회사의 마지막 출근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