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나라면 어떻게 할까? 이 복잡한 상황들을 걷어내고 생각해본다면, 내가 하고 싶은 선택은 뭘까?
나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본질로 돌아가자. 원래 내가 지켜온 원칙을 따르는게 탈이 없겠지. 그냥 사실대로 말을 하자. 거짓말하는 것도 싫고, 따지고보면 잘못한 일도 아니잖아, 숨겨도 언젠간 밝혀질텐데.
그와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듯 했다.
정말 괜찮겠어? 여긴 한국 사회야. 그것도 대기업 조직. 그들이 과연 너의 의도를 순수하게 받아들일까?진심으로 응원하고 축하해줄 수 있을까?고깝게 여기진 않을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 책망하진 않을까? 프로젝트 기간을 트집잡으며 의혹삼지 않을까?
내가 욕을 먹을 것은 사실 각오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치자.무엇보다 멀쩡히 잘 다니고 있는 회사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이직을 선포하고 나가는 것은 떠나는 사람의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어느 누군가는 회사에 자부심을 느끼며 대만족하면서 다니고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회사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아무 생각 없이 다니다가도 누군가 퇴직(혹은 이직)한다고 하면 마음이 흔들릴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마음 속의 이상은 '모두가 다 괜찮은' 그림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이상하게 그때는 그게 최선의 답 같았다.
그래, 여러가지로 남아있는 사람들한테도 피해 끼치지 않고, 사기 떨어뜨리지 않고, 퇴직은 내 개인적인 문제로 덮고 정리하는게 좋겠어.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욕구와 열망과 불만족의 문제로 치부하자. 누구나 그정도의 문제의식은 공유하고 있고, 또 내 성향을 아니까 특별히 문제삼지 않겠지. 이게 모두의 기분을 덜 상하게 하는 좋은 일일거야. 라고 온점을 찍은 그 순간이 문제적 사고의 시작이었다.
어설픈 배려는, 배려를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는 것을 그때 나만 몰랐나 보다. 그렇게 나는 '박사 진학을 위한 유학준비'라는 한 구절의 이유를 마음에 새긴 채, 프로젝트 진행으로 한 달정도 머물고 있었던 독일의 뮌헨을 떠났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나는 이직할 회사측으로부터 완벽한 합격통보를 받지 않은 상황이었고, 모든 상황은 뒤엉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직 명확히 이쪽도 저쪽도 아니게 걸쳐진 상태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본질은 가린채로 눈치보며 퇴직 관련 일들을 진행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나친 비유를 쓰면, 날 기다려주고 있는 남편을 두고 바람난 아내가 된 기분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복귀한 나에 대해 팀 내 사람들은 당연히 궁금하게 여겼고, 솔직하게 퇴직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모두들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았다. 며칠 내로 새롭게 일할 회사의 발령 날짜를 받았고, 요청받은 날짜가 너무 촉박했던지라 리더에게는 최대한 빨리 퇴사하고 싶다고 알렸다. 그렇게 차근차근 순조롭게 퇴사하게 될 줄 알았다.
항상 상황은 예상했던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나의 퇴직면담. 복귀한 나에게 그간 진행되고 있던 업무 분담 이야기를 꺼내던 파트리더에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는 신중하게 생각해본것이냐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고, 나는 간단하고 명료하게 지금껏 업무를 해오면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점들, 가령 주도적으로 업무할 수 있는 범위와 권한의 한계, 동기부여의 부재, 업무에서의 성장 가능성 등에 대한 어려움을 설명했다.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는 단계는 아니며, 의사를 번복할 정도로 가벼운 결정은 아님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듣던 리더는 그렇다면 퇴직 날짜는 한달 후 12월 말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하루라도 빨리 퇴사해서 입사 날짜를 맞추어야 하는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고 이유를 물었다. 리더는 사원평가 이야기를 꺼내며, 마지막으로 나가면서 다른 팀원들을 '배려'해주기를 요구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 수 있는데, 대부분의 회사의 사원평가는 상대평가다. 대학 교양 수업 때와 같이, (절대적인 퍼포먼스의 양과 질을 반영할 수는 없지만) 참여자의 일정 비율 이상은 C 이하를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인데, 이 때 팀에 부여받는 각 평가 등급(A,B,C 등)의 개수 또한 해당 팀이 소속된 상위조직의 성과에 따라 정해진다. 리더의 논리인즉슨, 사원 평가 대상자에 현재 내가 포함되어 있는데,(내가 받아야할 나쁜 등급의 점수를) 내가 중도에 빠짐으로써 누군가는 받게 되어 있고 그것을 통제하지 못했을 시 누군가가 보게 될 피해와, 자신과 나를 향한 감정적 원망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이전에 그런일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복잡해보이지만, 결국 앞 문장의 괄호안에 숨겨진 내용은,... 응당 자리를 오래비우고 퇴사하는 나에게 리더가 강요하는 도덕적으로 옳은 어떤 것ㅡ내가 누군가 받을 수 있는 나쁜 등급의 평가를 대신 받아 십자가를 지는 것ㅡ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이것이 내가 치러할 '퇴사의 대가'였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지만, 서로서로 얼굴 찌푸리지않고 헤어지는게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건 너무 답정아닌가. 자신이 맡고 있는 팀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주려는 리더의 책임감은 수긍할만 한 것이지만, 누군가가 퇴사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결정된 인과관계로 보고 미리 자신에게 돌아올 원망을 방어하려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했다. 왜 그의 인식 속에서는 나는 나쁜 점수를 받고 나가야만 하는 대역 죄인이고,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이라는 내용이 이 회사에 남는 나의 최종기록이 되어야 할까. 원래 욕먹기 싫어하는 성향이라는 것은 알지만,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나니 리더가 끝까지 못나보였다. 한심했다.
끝끝내 그는 평가가 확정되는 기간까지 근무하기를 요청했고, 심지어 퇴사 날짜를 리더가 결정지을 권한이 있다는 (법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나에게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다른 사람이 피해보지 않도록)을 하기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2시간 넘게 면담을 했지만, 서로가 원하는 결과가 너무 명확히 평행선을 이루고 있었기에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나는 계속 갈등했다. 사실대로 이직을 이야기 할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둘러댄 말일지라도 처음 뱉었던 말의 일관성을 지키고 싶어하는 내 마지막 자존심이 있었다.
대충 면담을 버무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 상황을 복기하면서, 엉엉 울었다.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내가 한 행동이 뭘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에, 상황이 요구하는대로, 리더가 원하는대로 맞춰주어야 하는가? 하는 원망이 들었다.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나쁜 사람으로 몰아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기 입장을 완수하려는 리더가 신물이 났다. 그도 절박했고, 나도 절실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한마디 당당하게 반박할 수 없었던 내가 미웠다.
"왜 제가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을 거라고 전제하시고 말씀하시는건가요?그건 부당한 것 같은데요."
"평가의 본질은 팀원들을 만족시키는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해온 일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발전적인 피드백을 주는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