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은 열두 달의 명칭을 그들만의 세계관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중에서 11월을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이라고 했고 또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숲의 11월은 그들이 표현한 바로 그대로다.
11월 전나무 숲에는 때아닌 눈이 내린다.
숲에 내리는 눈 - 나뭇잎들
숲에 바람이 불자 잎들이 떨어진다. 물기 없이 바싹 마른 잎들이 저마다의 색과 모양으로 스르륵~ 툭, 하며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베어낸 나무 밑동 위로 떨어지고 있다. 뺨을 스치는 약간의 바람에도 작은새가 소리 없이 날아올라도 잎들은 싸라락~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 소리가 영락없이 깊은 겨울밤 눈 내리는 소리와 닮았다.
전나무의 짧고 뾰족한 잎과 구멍 난 상수리나무잎, 갈참나무의 잎, 바싹 말라 가장자리가 말린 밤나무 잎, 물에 슬쩍 젖은 손수건 같은 칡덩굴의 잎들이 따로 또는 한꺼번에 떨어진다. 진달래나무의 작은 잎들도 분홍 꽃잎을 미처 지우지 못한 채 제 나무 밑에 수북이 쌓여 있고 손바닥보다 넓적한 일본목련나무의 잎은 불경한 삐라처럼여기저기 허옇게 어지럽다. 숲에는 때 아닌 눈이 쌓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신푹신한 것이 발은 피곤을 모르겠다. 숲에 내리는 눈을 맞으며 나는 세상을 잊는다.
"첩첩한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의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
천 년 전 신라인 최치원이 '흐르는 물'로 경계를 삼아 자신과 세상을 떼어놓았듯이 나는 이 숲을 내 주변에 둘러놓고 간절히 세상을 잊는다. 남의 나라 선거에 시시비비 하는 매스컴의 수선도 코로나 위기도 내 가슴의 통증이 주는 현재의 두려움도 확신할 수 없는 은퇴 후의 미래도 모두 잊는다. 수선스럽고 번잡하며 부끄러움을 모른 채 이익만 추구하는 이 세상의 논리에서 나를 떼어놓는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나의 애매한 실존도 떼어놓고 자신은 세상을 버리고 싶으면서 젊은 아들에겐 도전하여 원하는 것을 얻으라고 말하는 나의 이중성도 훌훌 떨어 버린다.쓸쓸한 서술어 '~싶다'로 돌아오는 가난한 나의 염원도 숲에 내리는 저 눈을 보며 잊는다.
가만히 호흡을 정리하고 서 있으니 온통 사라락 거리는 소리로 미련 없이 잎을 비워내는 숲.
비워내지 못하고 또 다른 염원만 채우는 나.
숲은 겨울을 준비하고 더 나아가 이듬해 봄도 준비하고 있는데 나는 한 발 앞도 잘 딛지 못하고 자꾸 미끄러진다.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티 내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숲에서 나는 겸허해지고 깊어지고 싶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 하지만 반복되는 순환을 통해 끊임없이 변하는 숲처럼 날마다 변화되는 사람이고 싶다.
잎들은 숲에 고스란히 떨어져 다시 숲을 이루기 위한 시작이 된다. '만물을 거두어 들이'나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숲. '산책하기에 좋은'달 11월의 숲은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일상의 선물이며 보물이다. 그런 숲에서 나는 자발적 고립을 꿈꾸며 나뭇잎이 눈이 되어 내리는 숲을 한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