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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Oct 19. 2021

서울에서 파리로 출근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것

Avoir une autre langue, c'est posséder une deuxième âme
-Charlemagne- 
또 다른 언어능력을 갖는 것은, 두 번째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샤를마뉴 대제-

"프랑스 임원의 매니지먼트 전반에서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 대표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커리어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꿈'에 대한 질문이 꼭 있을 거예요. "


최종면접을 남겨두고 헤드헌터사 대표님이 힘주어 말했던 부분이다. 처음에 구인 전화를 받을 때부터도 늘 강조했던 부분이지만, 반신반의했었는데 사실은 이 부분이 내가 결정적으로 이직을 하기로 결심을 굳히게 된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프랑스어 전문 통/번역사로 일을 해오기는 했지만, 변화에 대해 목이 말랐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온전한 나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상 당장의 업무보다는 한 발을 더 앞서서 살펴보고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또 이전과는 다른 업무를 하려니 막막함도 두려움도 차례로 나를 찾아왔다. 


"아마, 이 포지션에 있었던 사람 중에는 제일 프랑스 체류 경험이 짧으신 것 같아요"


괜한 걸 물었다. 처우 논의를 하다 헤드헌터 대표님에게 전임자들은 모두 해외 체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이직을 결심했는데, '체류 경험이 짧다'는 그 한마디가 괜스레 마음에 남았다. 이때만 해도 내가 가지고 있던 '국내파 콤플렉스'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던 때 이기도 하고, 통/번역 일을 하면서 프랑스어권 인사들과 일을 해볼 기회는 많았지만 이렇게 일상적으로 계속해서 진행하는 일은 해본 적이 없었으니 과연 어떤 모양새(?) 일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됐다. 그리고 신입이 아니라 경력직으로 이직을 했으니 그래도 전임자들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이직을 앞두고 일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임신소식까지 알았던 터라, 마음이 이래저래 많이 불편하기도 했거니와 함께 일하면서 모시게 될 대표님이 프랑스인이면서 20년 가까이 한국에 계시던 분이라고 하니, 한국사람들도 많이 봐오셨을 터. 무엇보다 그저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까지 설쳐가다 나중에는 그냥 '부딪혀 보자'라고 마음을 바꿨다.  


그즈음에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었었는데 그중에 그렇게 걱정이 되고 두렵다면 그 두려운 상황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보라는 조언이 있었다. 결론은 하다가 정 안되면 나오면 될 것이고, 내가 밥벌이 하나 못할까 갑자기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생겨 스스로 나를 독려하며  출근길에 올랐다. 



처음 면접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회사 안에는 대표님 말고도 프랑스인들이 참 많았다. 부사장님으로 계셨던 분이 한 분 있었고, 그 외에도 한 층에 프랑스인들이  열 명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이전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에도 사업주들이 많이 와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직원들도 있고 새로운 환경에 설렘도 있고 떨림도 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하게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말로 첫 출근날을 장식하게 된다. 한국 회사였다면 어땠을까. 프랑스인 대표님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첫마디는 '축하한다'였다. 그리고 뒤이은 질문. 출산 후에도 회사를 다닐 예정이냐는 이야기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긍정의 사인을 마구 보냈다. 그럼 문제없겠다는 대표님의 말에 대표님도 나도 안심을 하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이 듣는 말- 감사합니다(Merci)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 프랑스인들은 참 별걸(?) 다 감사한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계산을 하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나, 주문을 했을 때나,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에서보다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가끔은 짜증기 가득한 파리지엥들에게 속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후하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에게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났는데, 이직을 하고 다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국 회사에서 일할 때는 웬만해서는, 특히 상사에게서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일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던 것 같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감사의 표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매번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그 일이 작던 크든 상관없이 내가 하는 일에 '고맙다'라는 표현을 해주는 상사에게 나 역시 보답을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던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감사에 열일로 보답했다고 하면 우스운 일일까. 어찌 되었든 별것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가 서울에서 파리를 떠올리게 했던 주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하루 종일 입에 단내가 나게 불어만 해요"


이직을 하고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예전 회사에 있던 통역사 선배에게 했던 말이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프랑스어를 읽고, 쓰고, 또 말했다. 파리에서 인턴을 할 때 보다도 훨씬 프랑스어를 많이 썼던 것 같다.  언어 빈도 수로 따지자면 프랑스어 다음으로 영어와 한국어가 비슷한 비율이었다. 본사는 홍콩에 있는지라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영어로 이루어졌고, 프랑스어는 대표님, 그리고 팀 내의 프랑스 직원들, 프랑스에 있는 파트너사와 일할 때 주요하게 쓰였다.  


'파리에 와있다고 생각하자'


회사에 이직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 앞서 나는 프랑스에 왔노라고 스스로에게 자주 되뇌었다. 일을 하면서 배울 수도 있고 거기에 월급도 받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업무강도는 생각보다도 더 셌다. 흔히들 프랑스인들은 일 보다 사생활을 중요시 여기니 근무시간을 칼 같이 지킬 거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람마다, 회사마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전 회사에서도 프랑스 회사에서 일했던 미국인 엔지니어가 점심도 책상 앞에서 샌드위치로 때우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야근도 많이 했다고 한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쩌면 그냥 파리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파리'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선 물리적으로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아무래도 대표님을 보좌하는 일이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야 하는 일이 많았고, 또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세세하게 챙기는 일도 그리고 미리 예상해서 챙기는 일도 많아서 한동안은 집에 돌아오면 그냥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당시에 내가 임신도 해 있었던 상태이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더 힘들었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프랑스어로 태교를 하고 있는 거라고 나름대로 합리화를 하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이제 막 적응을 했다 싶을 무렵, 갑자기 찾아온 조산기로 그 길로 입원을 하게 되면서 출산까지 쭉 휴직을 하게 된다. 이직한 지 꼭 4개월 반이 흘렀을 때였다. 이제 막 대표님과도 합이 맞아가고, 서울에서 파리 생활도 할 만 하구나 적응이 되던 시점이라 못내 아쉬웠다. 아이와 나의 건강이 먼저라고 늘 말씀해주셨던 대표님의 배려 덕에 병가에서 출산에 육아휴직까지 8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왔다.


"한국인과는 한국인 마인드로, 유러피안들과는 유러피안 마인드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것 같다"


복직을 하고 난 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대표님께 내가 더 향상하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을 여쭤봤다. 일을 더 잘 해내고 싶기도 했고, 회사 상사이면서 멘토이기도 한 대표님께 어떻게 하면 내 역할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중간중간 피드백을 받고 싶었다. 늘 먼저 예측하고 나서서 행동하는 프로액티브(proactive) 정신도 강조하셨지만, 대표님의 코멘트 중에서 그래도 나에게 의미 깊게 와닿았던 점은 바로 두 가지의 마인드 세팅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비록 나는 해외 체류 경험이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각각의 문화를 이해하고, 한국사람과 일할 때는 한국인의 방식으로 유러피안들과 일 할 때는 유러피안 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전 회사에서 사업주들이나 외국인 동료들이랑 일할 때에도 비슷한 코멘트를 받았었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게 내가 가질 수 있는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좁게 보면 언어는 소통을 돕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 도구를 통해서 바라보는 세계, 문화,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통찰이 세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언어를 한다는 것은 두 번째 영혼을 가지는 것과 같다는 샤를마뉴 대제의 말이 더 와닿았다. 


여전히 서울에서 파리 생활도 이제 2년 차를 넘어가는 지금,  운 좋게 또다시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예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고 해보고 싶던 업무로 발령이 나서 이제 또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중이다. 이번 업무 역시 언어능력을 기반으로 파트너사나, 고객사와의 관계를 발전하고 향상하는데 기여하는 역할이라 새롭게 알아야 하는 것, 공부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해내려고 한다. 



어릴 때 집 근처에 있던 파리공원까지 욱여넣는다면 파리와의 인연은 20년도 더 된 셈인 것 같다. 출처:https://opengov.seoul.go.kr/mediahub/1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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