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오뚝 Sep 30. 2021

프랑스어는 열쇠다

20주년 특별판-제6화-한국문학을 세계로 알리는 Min님 인터뷰


파리에서 인턴이라니

 

지금으로부터 10년 하고도 여러 해 전, 파리와 인턴, 모두 졸업을 앞둔 대학생에게는 설레는 단어임에는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이 두 개의 조합이라니!

좋은 기회를 만나 파리에서 6개월 동안 인턴을 하면서 일을 해보았다는 경험과는 별개로 소중하게 얻은 자산이 있다면 바로 Min님과의 만남 일 것입니다. 갑자기 프랑스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인연들도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스레 프랑스어에게 고마워지네요.


20대 초/중반, 불투명한 미래를 어떻게 그려갈 것인가 고민하다가도 맥주 한 캔 들고 파란 하늘에 바람이 산들거리는 앵발리드 앞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갑자기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샘솟고는 했는데요.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복학을 하고 취업준비를 했던 저와는 다르게 Min님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위해서 다시 한번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프랑스어의 영향이었을까요 아니면 저희 둘의 성향이 비슷해서일까요. 프랑스가 그리워질 때면 보내는 편지에 늘 위트 넘치는 답장을 해주곤 했던 Min님과의 추억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에 마들렌처럼 언제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보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프랑스어라는 공통분모를 가졌지만, 문학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Min님의 소식은 독자로서도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더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저명한 작가분들을 직접 만나고, 프랑스에 도서전에 참가하는 Min님을 보면서 ‘참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프랑스어를 전공해서 이제는 프랑스 문학이 아닌 우리나라 문학을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Min님의 이야기 함께 만나보시죠.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어떤 일인지도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졸업 후에는 저작권 에이전트를 거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Min이라고 합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공 기관으로,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여러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2012년 프랑스어권 담당자로 입사하여 현재는 번역 및 출판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프랑스어와의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프랑스어를 접하게 되셨고 배운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프랑스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프랑스어에 관심이나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프랑스 문화나 언어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수능을 치르고 원서를 쓸 때 프랑스어 관련 학과에 지원을 했고, 대학에서 거의 처음 배우다시피 했어요. 대학 1학년 때에도 전공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에 더 전념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친척 모임에서 중국어를 배우지 프랑스어는 왜 배우느냐고 어른들이 맹 비난을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배워보자 하는 오기가 생겼던 것 같아요. 2학년 까지도 불어 성적은 하위권이었는데, 그 해 여름 중앙대 캠퍼스에서 하는 불어 캠프에 참가했고,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우연히 시험을 잘 봤는지 최 상급반에 배정이 되었어요. 수업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열심히 공부를 했고, 캠프 프로그램도 무척 흥미로워서 그때 본격적으로 프랑스어에 자신감이 생기고 흥미를 더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프랑스어를 배우기 전/과 후 프랑스어에 대한 편견이나 인식이 달라진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영어는 물론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언어이기 때문에 익숙했지만, 프랑스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는 영어 외의 외국어를 배운다는 일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도전해보기도 전에 ‘할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고요. 한번 그 경계를 넘고 나니,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와 같은 외국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프랑스어를 접했을 때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특히 문법)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어려울수록 꾸준히, 천천히 연습하고 배우고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재미를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전공으로 프랑스어를 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해당 전공 선택 후 어떤 커리어 패스를 계획하셨고, 이후에 어떻게 이루어지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사실 전공으로 프랑스어를 택하게 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고, 프랑스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 프랑스어에 대한 호감 정도였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는 전공을 잘 선택했던 것 같고요. 

사실 학부의 다른 동기들은 주로 경영학과 복수전공을 해서 국내 전공 취업에 몰두하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저학년 때 전공 성적도 좋지 않았고, 다른 전공을 병행할 만큼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어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 후반기는 나름 여기 포커스를 두고 지냈던 것 같아요. 3, 4학년 때 프랑스로 건너가 어학연수, 교환학생을 했고 졸업 후에는 프랑스의 한국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프랑스 현지 대학원 입학을 준비했어요.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그 나라가 주는 문화적 혜택도 많이 누리며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오래전부터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원 진학 시 출판을 전공으로 택했어요.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제가 다녔던 대학 외에 많은 대학에서 전문 석사 과정으로 수학할 수 있는 과목이에요. 문학, 출판, 홍보 관련된 전공 수업 외에도 실제 출판사에서의 인턴십을 통해 실무를 익힐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학원 전공을 통해 이후 커리어를 쌓는데 구체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을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서는 해외 저작권 에이전시에서 청소년 문학 및 프랑스어권 도서의 에이전트로 2년여간 근무 후, 지금의 직장인 한국문학번역원의 프랑스어 담당자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업무에서 프랑스어 혹은 프랑스와의 업무 유관도는 얼마나 되시는지, 그리고 프랑스어 전공자로 일을 하시면서 막상 필드에 나와보니 이런 게 다르더라, 혹은 이런 게 좋았다 싶은 게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한국문학번역원의 프랑스어 담당자로 2012년부터 근무를 했어요. 지금은 연차가 쌓이면서 그 외의 사업도 담당을 하고 있지만, 그 간 프랑스어와 업무연관도는 매우 높은 편이었고, 일을 하면서 다양한 기관, 담당자들과 협업을 할 기회도 무척 많았어요.


일례로 2016년에는 한국 작가 15인이 참가하였던 파리 도서전 한국 주빈국 행사 총괄을 하였고, 2015-2016년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인증사업을 통해 한-불 젊은 문학 번역가 워크숍(CITL), 프랑스 ARTE 한국문학 다큐멘터리(5부작) 제작 및 취재 지원, 프랑스 주요 문예지 한국문학 특집호 발간, 프랑스 생나제르 한국문학 행사 개최 등을 담당했고요. 그 외에도 프랑스 3대 주요 언론사 기자 초청 및 특집호 발간 사업, 프랑스 현지 한국문학 개최와 도서전 참가 등 많은 사업을 하였네요. 그 외에도 한국문학의 프랑스 진출에 필요한 다양한 사업과 번역 및 출판 지원 상시 담당하였고 프랑스어권 한국문학 번역가들과도 교류할 기회도 많이 주어졌고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프랑스어권은 특히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에 친숙한 담당자로서 협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편리했던 것 같아요. 프랑스 특유의 행정 처리 시스템이나 업무 처리 방식 등이 있는데, 거기에 익숙하지 않을 때에는 원활히 업무가 이뤄지기 힘든 것 같고요. 중간에서 조율을 잘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한국, 특히 공공기관의 특성상 정확하고 신속한 업무처리가 요구되는데 반해, 프랑스는 여름 바캉스도 길고, 또 담당자가 부재중인 경우도 많고, 기본적으로 진행이 느리기 때문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조바심을 느끼기보다는 이해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고요.


프랑스는 특히 문학에 대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문학 관련 기관과 지원 사업 등도 무척 잘 되어있기 때문에 관련 사업을 할 때에 배울 점이 많았어요. 특히 지방 소도시에서 한국문학 행사를 개최할 때에 그런 점을 많이 느꼈는데, 브리브라는 소도시에서 열리는 작은 도서전을 일 년 내 기다리고 길게 줄을 서서 입장하는 모습을 볼 때에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프랑스는 자국 문학뿐 아니라 해외 문학과 문화에 대해 다른 문화권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가 중 하나예요. 현재까지의 한국문학 해외 출판 통계를 보아도 영어, 중국어 다음으로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된 작품 수가 세 번째로 많고, 훌륭한 번역가들도 많고요.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로 먼저 번역, 출판되고 타 언어권으로도 소개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번역가들이 활발하게 한국의 문학을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프랑스어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던 경험이나, 혹은 인생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으실까요?


프랑스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자연히 프랑스에서 20대의 절반을 보냈어요. 누구에게나 20대가 그렇듯이, 돌아보면 그때 나도 모르는 사이 불안함 속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던 시간 같아요. 그 시간 동안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서 나 자신에 대해, 인생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또 다른 문화와 언어를 접하면서 생각의 폭도 넓어졌고요. 그런 계기가 없었더라면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사회에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프랑스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프랑스어란_______ 다

문장을 완성해 주시고, 이유를 함께 말씀해주세요.


나에게 프랑스어란 '열쇠'다 라고 하고 싶어요.

인생에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새로운 문을 열어준 열쇠 같은 존재니까요.




 Les limites de ma langue sont les limites de mon univers  
– Ludwig Wittgenstein-
내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서면으로 보내주신 인터뷰 답변을 읽어가면서 '열쇠'라는 단어가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을 활짝 열어주는 열쇠만큼이나 반가운 존재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프랑스어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하니 같은 프랑스어를 보더라도 저마다의 시선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는데요. 

저도 그렇지만 Min님도 프랑스어라는 열쇠를 통해서 들어간 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또 새로운 기회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Min님과의 오랜 인연을 이렇게 계속해서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도 프랑스어라는 열쇠로 들어간 세계에서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귀한 시간을 내여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Min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전 23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을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