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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뚝 Oct 24. 2021

나의 오래된 친구, 파리

파리에서의 일주일을 보내고 

Grâce aux langues, on est chez soi n’importe où  – Edmund de Waal
 언어를 할줄 알면 어디서든 내 집처럼 편안해진다. 에드문드 드 왈  

오래된 친구와 만난것 같았다. 늘 떠올리면 기분좋고, 보고싶은 그런친구. 그렇게 오랜세월 떨어져 있다 만나니너무 반갑고 좋은데, 막상 어떤말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이게 되는 그런 오래된 친구. 그래서 처음엔 좀 어색한가 싶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헤어지기 아쉬운 그런친구. 


나한테는 파리가 그랬다. 


가장 가고싶은 곳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늘 빠지지 않던 파리. 다른 좋은 곳도 많은데 왜 자꾸 파리만 가고싶느냐고 묻는 남편에게, 늘 나는 '파리니까' 라고 대답하곤 했었는데, 지금도 그 대답은 변함없다. 주기적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소원해질것 같은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어쩌면 처음으로 부모님을 떠나 외국에서 살아 본 곳이기도 하고, 지금의 내가 있기 까지 많은 기회들을 가져다준 언어의 본고장이라 그런것도 같다. 또 같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너무도 다른 모습의 환경속에서 예전의 나와는 또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있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어쩌면  정작 파리는 아무생각도 없는데 나 혼자 그동안 많은 정을 주어버려서 그런것 같기도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여행으로 한번씩 오가고는 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있고나서는 그마저도 어려워져서 참 혼자서 많이도 그리워 했다. 


그 전에도, 여행말고도 프랑스어를 하니 업무로 프랑스에 갈일이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대학원을 졸업해서 지금까지  쉽사리 기회가 닿지않았던 파리를 드디어 얼마전에 다녀왔다. 물론 출장으로.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남짓. 


업무차 가게 된거라 개인시간은 뒷전으로 두고 우선 일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출국 당일날도 자료 준비에 짐 준비에 일주일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낼 아들의 먹거리며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 머리속에 파리는 그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려줄거라는 생각에, 사실 크게 개인적인 계획도 짜지 않았다. 그저 파리에 있는 몇몇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식사약속을 잡는 것 외에는 큰 계획도 없었다.


늘 파리에 가면 하고싶었던건 거창한게 아니었다.


'정처없이 걸어다니기'

'노천카페에서 커피마시기'

'커피마시면서 책보기' 같은 일상생활 체험(?) 같은 것들이었으니 더더군다나 계획같은건 생각할 생각도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늘 좋았던 클로드 모네의 작품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야겠다는 생각,

파리에 남아있는 몇몇의 지인들과의 식사약속,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인 크렘 브륄레를 먹어야겠다는 생각 그정도였다.


한국에서 자정이 넘은 시간에 출발한 비행기가 어느새 파리에 새벽에 다달아 있었다.

어둠이 드리워진 파리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자 드디어 내가 여기에 왔구나 싶었다.


근 4-5년 만이었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차안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가 내가 파리에 와있다고 되새겨주는 것 같았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차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금새 도로를 가득채웠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고있으니 더디게 흘러가는 행렬도 그다지 지루하진 않았다.


예전에 외국에서 손님들이 오면 의전으로 인천공항으로 픽업을 가야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 바깥 풍경을 찍거나 혹은 영상으로 남기는 그들의 모습이 나는 참 신기했었다.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풍경들이 그들에게는 카메라에 고이 담을만큼 진기한 풍경이라 생각하니 그러려니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들처럼 카메라에 풍경을 담고있으니 새삼 하루만에 이방인이 된 내모습이 신기했다.


이윽고 파리시내에 들어서자 개선문이며 에펠탑이며 여기가 파리! 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은 늘 감격스럽고 참 좋다.


아침부터 예정되어있던 일정을 위해 준비를 하고 다시 나와 파리의 아침을 맞이했다. 오후에는 짬이 잠시 나서 여기저기 가보지 않았던 곳들을 둘러보는데, 마냥 좋기도 하다가 한번씩 갑자기 좋은 곳에 혼자만 와있다는 사실에 장기출장으로 고생하고 있는 남편에, 방긋방긋 웃는 아들래미 얼굴, 그리고 장난꾸러기 손주 봐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엄마 아빠, 그리고 파리를 함께 했던 동생의 얼굴이 차례로 지나갔다.

한국보다 먼저 쌀쌀해진 날씨에 한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 자리를 잡고 혼자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 혼자 대견스럽기도 하다가 처량하기도 하다가 그렇게나 혼자만의 시간을 염원해왔는데 왜 더 신나지 않는건지 의아한 마음을 핫초코 한잔으로 달래고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 이틀 정도 일정을 소화하면서 시차도 적응되고 체력도 어느정도 돌아오면서는 모든것이 다시 다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업무를 하면서도 어쨋든 내가 있는 공간, 함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과 내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생경하게 다가오면서도 편안했다.  한국에서도 물론 불어를 많이 쓰기는 했지만 공간이 주는 새로움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면서 오래된 기억속 파리의 모습과 지금의 새로운 모습이 주는 색다른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일정을 하면서 마주하는 파리의 모습은 예전에 내가 생각했던 그것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늘 변치않고 그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을것만 같았는데 변하지 않는것은 없다고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예전에 내가 살던 곳, 파리를 대표하는 건물, 분위기 같은건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20대의 꿈많던 대학생 김오뚝이가 봤던 모습과,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밥벌이도 하고 있는 30대의 내가 마주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달랐다. 

파리가 달라진건지, 파리를 바라보고 느끼는 내가 달라져서 그런건지 아니면 둘 다 일지, 머리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에 앞으로의 나의 모습도, 그리고 파리의 모습도 새삼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오래된 친구를 되도록 자주, 보러 오겠노라고.


동방신기에서 오징어게임까지


내가 교환학생으로 처음 파리에 왔던 때에는 한국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기 까지 중국, 일본, 북한까지 돌아서 남한에 오는일이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있었던 학교가 동양어전문대학이었던지라 한국어학과도 개설되어있었고 학생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동양인에 대해 호의적인 학교분위기라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이없었다. 당시에 대부분 프랑스 학생들이 한국어를 중국어나 일본어를 먼저 접하고 흥미가 생겨 오는  경우가 많았고 학생수도 두 언어에 비해 적은 편이었는데, 이번에 가서 뵈었던 교수님께서 이제는 200명까지 정원이 늘은데다가 200명 정원에 2000명이 지원한다고 하니 위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수치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한창 프랑스어 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절, 같은 학교에 한국학과 학생이 한번은 동방신기 이야기를 한적이 있어서 적잖이 놀랐던 적이있다. 전공어에 대한 관심이라고 하더라도 당시 프랑스에서 한국가수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 어쨋든 그 당시에는 '특이하다'라고 생각할 만큼 한국어를 아는 사람도, 할 줄 아는 사람도, 하고 싶은 사람도 적었는데 이제는 그때와는 정말 달라졌다는걸 명함지갑을 사러가서 다시 한번 느꼈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던 차에 여권을 보여줬더니, 대뜸 직원이 아까와는 달리 더 상기된 표정으로 한마디를 건넨다 


 '한국 여권만 보면 오징어게임이 자꾸 떠오른다.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속편이 나올지 어떨지 신나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직원에 이야기를 듣고있는데 멀찌감치 서있던 다른직원이 와서 오징어 게임 얘기하는 거냐며 대화에 합류한다. 사무적이기만 했던 태도를 보이던 직원들이 컨텐츠 하나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놀랐고, 또 파리 한복판에서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프랑스어로 할 수 있는 일이 한국어와 함께라면 더 많이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가만히 생각해봤다. 


파리 노천카페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징어 게임 카드




"누군가에게는 경복궁이 에펠탑만큼 와보고 싶은 장소 일수도 있어요"


막 모네의 작품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들렀다 점심식사를 하러 갔던 참에 한국학과 교수님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나온이야기다. 학생때 봤던 파리와 지금의 파리가 여러모로 달라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우리는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그림들이며 작품들을 현장학습으로 와서 직접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풍요로움에 다시한번 놀랐다는 나에게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다.  


프랑스어라는 언어를 배우면서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를 연마하는 것도 배웠지만, 그 도구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살펴 볼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생겼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융통성, 유연성이 생긴것도 프랑스어라는 언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나에게 프랑스어가 그러했듯 한국어가 그런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다른 언어를 할 줄 안다는것이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서 정말 많은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언어가 가진 참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어를 애증이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는데, 어쩌면 내가 '증'의 부분을 넣었던 것은 그 소통의 도구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도구가 제대로 쓰일 곳을 찾기 못했거나, 아니면 어떤 곳에서 더 빛나게 사용될 수 있을지 더 고민해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이전의 추억을 함께 꺼내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지만 그만큼 나를 잘 알고 있는 친구이니 또다른 조언을 구할 수 있기에 그 만남이 더 소중하다. 언어를 했을 뿐인데, 언제고 찾아가고 싶은 친구가 생겼다는 것도, 생경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밥벌이로서 뿐만이 아니라 덤으로 얻게된 작은 행복, 그리고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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