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 손맛과 육개장에 대한 이야기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 집에 오셔서 여러 가지 집안일들을 봐주시고, 맛있는 반찬을 한가득 해놓으시고, 아이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시는 장모님. 아내 입장에서는 늘 '우리 엄마가 최고!'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위 입장에서는 항상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우리 집에 일만 하러 오시는 것만 같아서, 주말이면 같이 어디라도 모시고 나가려고 하거나, 주중이라 내가 시간을 내기 어려울 때면 아내에게 모시고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드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매번 '뭐 하러 밖에 나가서 돈 쓰나, 집에서 맛있는 거 해 먹으면 되지'라고 이야기하시는 장모님을 아내가 설득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내가 '엄마가 육개장이 드시고 싶다는데?'라고 톡을 보냈다. 나는 잘됐다 싶은 마음에, '매번 우리 집에 와서 고생하시니 근처에 육개장 잘하는 집에 모시고 나가 서 맛있게 먹고 오면 되겠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사실 우리 집 주변에는 육개장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식당도 몇 개나 있었고, 음식 솜씨가 좋은 한식집이라면 육개장 메뉴는 어디든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아내는 '딱히 갈만한 데가...'라며 말끝을 흐렸고, 결국 집에서 다른 거 해 먹기로 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내심 '뭐 대단한 메뉴도 아니고 육개장이 드시고 싶다는데 그걸 못 사드릴까'싶어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때 아내의 망설임을 이해하게 된 건 한참 뒤에 명절을 보내려 처갓집을 찾았을 때였다.
명절 음식들이 다 느끼하니, 이번에는 시원하게 육개장을 한솥 끓이셨다는 장모님은 내게도 육개장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시고는 대접으로 한가득 빠알간 육개장을 푸짐하게 퍼주셨다. 일단 모양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렇게까지 푸짐하고 내용물이 실한 육개장은 거의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학교 앞에서 자취하면서 동네 분식집에서 육개장을 시켜 먹을 때면, 이게 그냥 대파가 들어간 붉은 국인지 육개장인지 헷갈릴 정도의 움식을 경험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장모님이 끓여주신 육개장은 일단 고기와 각종 야채들로 푸짐한 건더기의 실함 정도가 남달랐다. 그리고 시골 고춧가루로 맛을 낸 칼칼하게 매운 국물은 진하기 그지없었다. 크게 한 숟갈 입에 넣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고, 그제야 아내가 왜 어머님 모시고 육개장을 사 먹으러 가는 일에 난감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님이 이렇게 육개장을 끓이시면 세상 어디 가서 육개장을 사드셔도 마음에 안 드실 수밖에 없겠네.."
이렇게 정성껏 육개장을 끓여 오시던 어머님으로서는 일반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나오는 육개장이 마음에 안 드실 게 뻔했고, 그러면 또 아내는 '이 돈 주고 이걸 사 먹을 바에는 집에서 내가 해 먹는 게 훨씬 낫겠다'라고 한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비단 육개장뿐만이 아니라 장모님은 음식 솜씨가 정말 좋으시다. 아내가 어린 시절부터, 어디 잔칫집이 생기면 음식 하는 것 좀 도와달라는 요청에 항상 바쁘셨고, 심지어 '엄마가 끓여준 해장국이 오늘 저녁이면 다 끝날 거 같다'는 이유로 나와의 데이트 약속을 급하게 취소하고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던 아내의 결혼 전 에피소드도 있다. 함을 매고 같이 처갓집을 찾았던 내 고등학교 친구는 그 뒤로도 몇 달간 그날 먹은 음식 이야기밖에 안 했고, 우리가 새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진지하게 여기에 반찬가게 여는 거 생각해 보자고 수차례 건의를 드렸었다. 이 정도로 음식솜씨가 좋으신 장모님이시다 보니, 밖에서 사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 성에 차지 않으시고, 우리가 외식을 하러 가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평가는 '이 정도면 귀찮게 집에서 안 해 먹어도 되겠다~'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육개장은 단연 군계일학이었고, 그날 처음으로 장모님의 육개장을 먹으면서, 장모님 마음에 드는 육개장을 사드리는 건 정말 깨기 어려운 미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장모님 육개장뿐만 아니라 육개장이라는 음식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잘 먹는 메뉴이고, 어린 시절 크게 한 번 채하고 몇 년 간 입에 대지 않았던 때를 제외하면, 항상 주는 대로 잘 먹는 메뉴 중에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특히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육개장이 포함된 식사는 한 그릇 다 비우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나의 특기 덕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긴 장례를 치르면서 삼시세끼 육개장만 먹어야 했어도 큰 불만이 없었다.
시골에서 지내시던 할머니는 치료차 서울에 올라오셨다가 병이 깊어져서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시지 못하셨는데, 그 때문에 일단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고, 이어서 시골에 내려가서 추가로 손님을 더 받기로 해서 장례식 일정이 배로 길어졌다. 병원 장례식장의 육개장은 나쁘지 않았지만, 계속 같은 식사를 해야 하다 보니 지방에서 올라오신 어르신들이 좀 힘들어하셨는데, 특히 광주에서 올라오신 고모부는 영 입맛에 안 맞아 하셨다. 그렇게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고 시골로 내려가야 했는데, 누군가 미리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시골 가는 근처 식당에 음식을 미리 주문해 놓았고, 내가 아버지와 같이 가서 받아오기로 했다. 몇 가지 밑반찬들과 메인 음식으로 밥과 홍어무침 그리고 육개장을 한 솥 받아왔다. 같은 육개장이었지만 전라도 손맛이 배인 음식은 서울에서 먹던 것과 매우 달랐는데, 그 매운맛과 진한 맛이 며칠간 병원에서 먹던 것에 비해 몇 배는 더 진한 것 같았다. 그 진한 맛에 첫 술을 뜨고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제야 맛있게 식사를 하시던 광주 고모부께서 '아, 이제야 밥 먹는 거 같네~!'라고 하시며 흡족해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 뒤로 육개장을 볼 때면 늘 무더운 여름에 할머니 장례를 치르던 때가 떠오르곤 했는데, 충격적으로 맛있었던 장모님 육개장을 맛본 이 후로, 또 하나의 기억이 더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