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면서 신혼집에 들여놓지 않은 채로 자연스레 6년이 흘렀다. 초반엔 '무한도전' 같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종종 pc로 챙겨보곤 했지만 요즘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가끔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에 호기심이 생기긴 하지만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고 나중에 떠오르더라도 그다지 아쉽지 않다.
누군가는 심심하지 않냐고, TV를 안 보면 대체 그 시간에 무얼 하느냐고 놀라워한다. 나는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잠을 자거나 집안일을 한다고, 할 일이 너무 많아서 TV 생각은 나지도 않는다고 솔직히 대답하고 싶지만, 그냥 '그러게요' 하며 웃어버린다. 그렇게 대답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겪은 일들 때문이다.
내가 TV를 보는 대신 읽거나 쓴다고 말할 때, 상대방은 마치 신기한 생명체 혹은 가식덩어리를 본 듯한 반응을 한다. 그리고 이내 하지 않아도 될 변명 비슷한 말들을 늘어놓는다. '나도 책을 읽고 싶은데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 '어떻게 그런 여유를 가질 수가 있어?'등등. 아이가 셋이나 있으면서 책 읽다가 애들 방치하는 거 아니냐는 비난의 눈초리마저느꼈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걸까.
글쎄.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책도 주로 이 시간에 읽는다. 그 이후엔 아이들이 낮잠을 자거나 혼자만의 놀이에 집중해서 나를 찾지 않는 짧은 시간에 책을 읽는다. 아이가 와서 같이 놀자고 부를 때도 혹시 모르니까 책을 들고 간다. 엄마와의 놀이에 싫증 낸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나는 옆에 있는 책을 펼친다. 내가 책을 보고 있는 걸 알아챈 아이가 다가와 책을 뺏어가고 내가 보던 부분을 찾지 못하게 여기저기 넘겨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도 몇 번 지나면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책 읽는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는 때가 온다. 그러면 나는 다시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읽고 있는 책이 너무 재미있거나 꼭 적어두어야 할 것이 생각난다면 아이에게 양해를 구한다. '엄마 잠깐만 이것 좀 하고 갈게'. 내 생각엔 책 대신 TV를 보는 부모들이 TV를 볼 때 아이를 방치하는 딱 그만큼, 내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하다. 나는 문방구에서 산 마음에 드는 노트에 감사 일기도 쓰고, 긍정 확언도 적어보고,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거나 일상을 계획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아이가 다가와 나를 따라 한다며 상형문자 같은 것을 적기도 하고 내가 쓴 글 위에 소용돌이를 마구마구 그려대서 써놓은 글을 못 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담임선생님이 일기 검사하고 도장 찍어주듯이 좋아하는 캐릭터 도장을 쾅쾅 찍어주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옆에서 아이의 예술활동에 맞장구를 쳐주며 함께 논다. 가끔 아이의 낙서가 유달리 독창적으로 보일 땐 잘했다며 칭찬도 해준다. 그렇게 한참 노트를 가지고 놀다가 돌려주면(=아무 데나 놓아두고 다른 놀이를 하러 가면) 나는 다시 아이의 그림과 구분이 되도록 색깔 볼펜으로 글을 쓴다.
읽고 쓰기 위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한다면 아마 꾸준한 취미로 삼기는 힘들 것이다. 책상을 말끔히 치우고, 아이를 재우고, 다른 유혹을 차단하거나 유혹에 넘어갈 만큼 다 넘어간 다음에 책을 읽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읽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마음은 읽고 쓰고 싶다고 해도 여전히 여러 가지 핑계가 떠오른다면, 핑계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도 그런 시간을 갖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마 아이들이 다 크고 나의 품을 떠나가게 된 후에라도 말이다.
정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하다면 내가 있는 곳이 시장 한복판이라도 할 수 있다. 글씨를 볼 수 있는 불빛과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길 손만 있다면. 중간에 나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더라도 금세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돌아와서 다시 그 즐거움을 느끼려 할 것이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 마음 맞는 친구와 수다를 떨 때도 그렇듯이.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건 따지지 않고 언제든지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면있는 시간 없는 시간 쥐어짜 내 그 일을 하고야 말 테니까. 모두가 굳이 억지로 책을 읽고 일기를 쓸 필요는 없다. 각자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면서도 또 술자리를 만들고 즐거워하는 사람, 여기저기 다쳐가면서도 계속해서 좋아하는 운동을 연습하는 사람, 얼마 못가 시들어버릴 꽃을 돈 주고 사서 곁에 두는 사람, 전에 산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또 책을 사서 쌓아두고 책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하는 사람. 이 중에 적어도 한 명쯤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아마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 사람 역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타인의 취향은 원래 이상한 점이 많은 법이다. 다만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적어도 좋아서 하고 있는 사람을 못마땅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우리 모두 각자 좋아하는 일 하며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