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칭찬을 싫어한다. 특히 깜짝 놀라거나 큰 소리로 과장된 반응이 더해지면 강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심하면 울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칭찬을 거부하기도 한다. 과도한 칭찬은 첫째에게 스트레스다. 나는 그런 아이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맞춰주려고 노력했다. 칭찬을 하되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한 번만 이야기하기. 방방 뛰며 2절에 3절까지 반복하고 싶은 마음 꾹 참기. '내 아이지만 참 별나다...'하고 속으로 궁시렁대면서. 그래도 가끔 나도 모르게 격한 반응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가끔은 그런 상황이 일어나고 만다. '우와 대박! 이거 혼자 한 거야? 여보 이리 와 봐. 진짜 대단하다! 그치? 웬일이야~~' 말을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동시에 얼굴이 굳어지는 아이를 본다. 아차 싶지만 때는 늦었다. 좋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아이의 분노에 찬 절규로 싸늘하게 식어버리곤 했다.
며칠 전, 오랜만에 화장을 했다. 서툴기도 하고 게을러서 평소에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특별한 날이라도 쿠션 팩트를 얼굴 전체에 두드리고 립글로스를 바르는 정도가 나의 최선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인스타그램 광고에서 절대 번지지 않는, 똥손도 금손을 만들어주는 아이라이너라는 광고를 보고(인스타그램 광고 만드는 사람들 천재 같다.) 뭐에 홀린 듯 아이라이너를 주문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눈가에 슥슥 그려보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순간 나는 나의 감정에 깜짝 놀랐다. '아니, 아무도 눈치 못 채는 화장을 뭐하러 해?' 얼굴이 더 예뻐 보였으면, 삼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화장이 능숙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내가 화장했다는 사실을 남들이 몰랐으면, 내 얼굴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이 내가 화장했다는 사실을 눈치채더라도 그걸 나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어! 화장했네? 너 원래 화장 안 하잖아.' 하며 놀라는 반응을 접하면 나는 '아, 어어... 응..' 이런 어색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예쁘다, 잘 어울려.'라고 뒤이어 말해준다면 기쁘고 고맙겠지만 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반대로 '화장을 왜 그렇게 했어?'라고 말한다면 아마 나는 정색을 하고 입을 꾹 다물겠지 그리고 속으로 분노의 화산을 폭발시킬 거다. '내가 화장을 그렇게 하던 저렇게 하던 너랑 무슨 상관인데?' 긍정적인 반응이던 부정적인 반응이던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다. 나는 그냥 내 만족을 위해 화장을 했고 다른 사람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이런 마음 때문에 아주 가끔 화장하고 싶을 때조차 화장하기를 주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화장하는 사람에 비해 가끔 하는 사람에게 타인의 반응이 더 과장되고 격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이도 이런 마음이었구나. 아이가 잘했든 못했든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 그게 좋은 평가라 할지라도 평가받고 싶지 않은 순간에, 타인의 평가를 받았었구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고 마음이 힘들었겠다.
아이를 이해하게 된 순간에 나는 과거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결혼 초기, 남편이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여자 선배가 한 명 있었다. 남편 사수인데, 일도 잘하고 후배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술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내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보여주었던 모양이다. 자세히 나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회사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던 남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OO선배가 자기 CL기가 빠졌대!' 붓기도 아니고 기름기도 아니고 CL기가 빠지다니, 뭔 개소리야? 나는 그 카톡을 읽고 기분이 나빠서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화제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는 끊겼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그 이야기를 다시 했다. 살짝 기뻐 보이는 얼굴로, 'OO선배가 자기 CL기가 없어졌대!' 순간 나는 폭발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거 나 좋으라고 하는 소리야? 무슨 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는 말처럼 들리네!' 내가 큰 소리로 이렇게 쏘아붙이자 남편은 예상치 못한 나의 부정적인 반응에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남편은 지금도 그게 뭐가 문제였는지 모를 것이다. 쌍꺼풀이 없는 눈에 솟은 광대뼈 때문인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CL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다. 그런데 그 선배의 말속에는 자신이 보기에 내 얼굴은 전형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데, 최근 나의 얼굴이 조금은 자신의 미의 기준에 맞게 변화했기에 긍정적인 뜻으로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인 듯했다. 남편도 그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얼굴은 나의 것. 누군가의 미의 기준에 부합했건, 부합하지 않았건 내 얼굴이다. 평가받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더 나은 평가를 받았다고 고마워하거나 기뻐하고 싶지 않다. 타인의 외모에 대한 평가를 입 밖으로 내는 일은 그 사람이 직접 의견을 묻지 않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통용되면 좋겠다. 어쨌든, 다시 아이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아이 덕분에 타인의 평가가 그 내용에 상관없이 불편하고 싫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 초기 어느 밤 남편과 그 선배에게 느꼈던 불쾌함의 정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이에게 감사하다. 아이를 더욱 존중하고 예의를 갖춰야겠다. 본인을 앞에 두고 평가하는(그게 좋은 평가라 할지라도) 무례한 행동은 삼가야지. '칭찬은 좋은 건데 왜 화를 내?'라며 달라고 한 적도 없는 걸 마음대로 줘 놓고 고마워하라고 강요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