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가 된 틈새

아이들 깨기 전 라면 한 봉지 끓여 호로록 먹는 것을 낙으로 삼고있다.

by 오공부

아침에 아이들 깨기 전 라면 한 봉지 끓여 호로록 먹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집엔 남편 취향의 진라면 순한 맛 밖에 없었다. 내 취향은 너구리 매운맛, 참깨라면이지만 딱히 가리는 거 없이 다양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컵라면은 튀김우동과 김치 큰 사발) 거의 매일 먹기 때문에 한 가지만 먹는 것보단 기분에 따라 돌아가며 먹는 편이다. 따라서 집에 진라면 순한 맛밖에 없다는 것은 남편 취향의 라면만 산 게 아니라 내가 먹고 싶은 건 다 끓여먹고 남편 취향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던 중, 마트에서 틈새라면 멀티팩이 세일하길래 하나 샀다. 틈새라면(빨계떡)은 아주 예전에 틈새라면 매장에서 먹어보고 너무 매워 혼쭐이 난 후론 먹은 적이 없다. 하지만 삼천 원도 안 하는 가격이 나의 도전의식을 부추겨 사게 만들었다.

사 오자마자 바로 하나를 끓였는데 반을 먹고 버렸다. 그것도 참치김밥과 맨밥과 계란으로 겨우겨우 먹어낸 것이다. 써놓고 보니 밥 먹느라 배가 불러서 못 먹은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그 후로 한 봉지를 다 먹겠다는 거창한 꿈은 접고 반 봉지씩 끓여 찬밥과 먹거나(계란 필수!) 짜파게티에 섞어서 1.5 봉지를 먹거나(틈새게티?) 하며 나름 얼큰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얼큰한 틈새라면 반 봉지

그날도 삼 남매는 콩순이를 틀어주고 나는 여유롭게 저녁으로 틈새게티를 만들었다. 친정아빠는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었고 아이들은 어차피 따로 밥을 주어야 하니 그 전에 나만 1.5 봉지를 끓여먹었다. 구운 계란까지 곁들이니 꿀맛이었다. 다 먹은 냄비를 설거지통에 넣고 라면봉지를 치우려고 하는데 딸을 사랑하는 아빠가 나가는 길에 이미 치워주셨다. 앗 그런데!!! 반만 쓰고 남은 스프 봉지까지 말끔히 갖다 버리셨네.......


그리하여 나의 틈새라면 반봉지는 특색 없는 사리면으로 전락해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하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고

사리가 된 틈새

먹다 남은 김치찌개에 사리가 된 틈새를 투하해 야무지게 먹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물론 아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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