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카시아 Oct 17. 2023

11. 외계인을 감당하려면 지구인의 자기 돌봄은 필수

나는 내가 돌본다


나를 따뜻하게 대한다는 건 왜 중요할까?

나를 따뜻하게 대한다면 양육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육은 내 밑낯을 수도 없이 보게 하며 나의 바닥을 보게 하고 최악의 나를 만나게 한다. 양육은 참 고독하고 외롭다. 오직 나와만 함께할 때가 많다.


유일하게 나와 함께하는데 그런 내가 자책과 비난에 빠진 나를 따뜻하게 “그럴 수 있다.”라고 위로해 준다면, 마음을 더 빨리 추스를 수 있게 된다.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나를 가장 따뜻하게 대해야 하며, 나에게 가장 친절해야 한다. 그래야 고된 외계인과의 험난한 여정을 버틸 수 있게 된다.


나는 나의 부모에게 배우지 못했다고? 그래도 괜찮다. 왜냐면 사실 학습해 나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힘든 순간, 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적어두고 그 순간이 오면 나에게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나에게 편지를 잘 써두는 노력만 필요할 뿐이다.


자기 자비 Self-compassion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는 마음이자 가엽게 여기는 마음인 자기 자비는 타인에게 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자기 친절을 의미한다. 자기 자비는 정서조절 전략 중 하나로, 부정적 경험으로부터 얻는 고통을 명료하게 바라보지만 이에 대해 자신을 비판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반응함으로써 부정적 자기 정서를 긍정적 자기 정서로 변화시킨다.

그림_ https://corelifemd.com/self-compassion/


우리가 따뜻함으로 우리 자신에게 반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친절을 받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검증되고, 지원되고, 격려받는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림_https://thiswayup.org.au/why-we-need-more-self-compassion/


성인과 청소년 대상의 연구에서 자기 자비 자기 연민은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 및 자살 충동과 같은 부정적인 정신 상태 사이의 역 연관성을 나타내었다고 보고 되었으며, 자기 동정심의 증가가 5년 동안 정신병리와 외로움의 감소와 관련이 있다는 것 역시 밝혀졌다.


국내연구에 의하면, 자비자비는 심리적 안녕감과 상관을 보이며, 초등고학년 부모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부모의 자기 자비능력, 자기 친절이 자녀의 공격성과 같은 외현화 문제와 불안 우울과 같은 내재화 문제를 낮추며, 부모의 자기 자비능력이 결혼만족도를 높이는 연관성을 밝힌 바 있다.

홍선표, 2022

또한 부모의 자기 자비는 자녀에게 온정적이고 수용적인 양육태도로 대하게 하며, 그로 인해 아동의 문제행동을 낮추었다.


자기 자비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너그럽게 돌보고, 고통과 좌절의 경험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현재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봄으로써 평정된 마음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을 돌보는 태도를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혼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배우자의 결함이나 배우자와의 갈등 상황에서 대해서 수용적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모가 자기 자신에게 자비로울수록 타인에게도 수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므로 자녀에게도 온정적으로 대하고 자녀를 수용하는 양육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나는 얼마나 나에게 자비로운가?

다섯 손가락을 펼치고 다음의 문장이 나에게 해당되면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자.


나는 나 자신의 결점과 부족한 부분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비난하는 편이다.
나는 나에게 중요한 어떤 일에서 실패하면,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나는 내 성격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견디거나 참기 어렵다.
나는 정말로 힘든 시기를 겪을 때, 내게 필요한 돌봄과 부드러움으로 나를 대하기 어렵다.
나는 고통을 겪을 때는 나 자신에게 약간 냉담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모든 손가락이 다 접혀있는가? 아니면 모든 다섯 손가락이 모두 다 펼쳐져 있는가?

모든 손가락이 다 접혀있다면, 나를 친절하게 대하기 위한 노력을 반드시 시작해 보자. 자기 자비능력을 작은 노력으로 향상된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다정한 말을 적어 나에게 읽어주도록 하자. 힘들 때마다 읽어주자.


부정적 감정에 지배당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아래의 조건들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나는 감정 조절에 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매일 내가 STRONG 해 질 수 있도록 나를 잘 돌 봐나가 보면 어떨까?


셀프힐링키트 Self Healing Kit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 목록을 작성해 보자

나는 소중하니까

불안, 우울, 실망, 무력감, 분노 등 어두운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려면, 행복, 신나는, 즐거운, 뿌듯한, 자랑스러운, 만족스러운 일을 유지하고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셀프 힐링 키트 만들기는 내가 정말 정말 힘들 때, 나를 기운 나게 할 수 있다.


시각: 아끼는 누군가(의 사진)을 바라보기. 인터넷에서 자연 풍경 보기. 좋아하는 그림 감상하기. 내가 좋아하는 장면 순간의 사진, 행복했던 순간의 사진, 성취물을 남긴 사진
후각: 좋아하는 로션을 바르거나 향수 뿌리기. 꽃 향기 맡기. 자연의 향기 들이마시기
청각: 좋아하는 노래 듣기. 자연의 소리 듣기. 내가 아끼는 사람이 나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을 녹음해서 듣기, 내 스스로로 힘이 나는, 듣고 싶은 말
미각: 좋아하는 허브 차 마시기. 사탕, 초콜릿 등 좋아하는 간식 먹기
촉각: 안아주기, 반려묘 반려견 쓰다듬기. 따뜻하게 목욕, 샤워하기. 보송보송한 이불에 들어가기.
행동 및 활동: 좋아하는 활동, 이완이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활동
내가 인상적이었던, 나의 소중한 기억, 자부심 느껴지고 해냈다고 생각한 순간, 내가 뿌듯하게 해낸 일, 내가 자부심 느끼는 결과물 등을 수집하자.


호흡 Just Breathe!

JUST BREATHE! 그림 -https://completegamept.com/blog/26w89878nglljwy3tjrzw54p2h88ae


"긴장 불안 흥분됨이 느껴지면 숨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반복하자.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뇌 생리적인 측면에서의 호흡의 중요함을 알기에 청소년들과 상담할 때도 필요시 함께 코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쉬는 호흡을 하며 정서 조절을 돕는다.


긴장되고 불안하면 그 감정을 인식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가 커지고 빨라지는데, 머리로는 불안하다 지각하지 못하지만 뇌간에서는 생리적 반응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뜀을 인식하며 내가 긴장되고 불안하다는 신호를 나에게 보낸다.


메타인지, 정신화 등의 내 정서를 이해하는 측면은 인간의 뇌인 대뇌피질에서 처리하는 작업인데, 정서조절에 취약한 경우, 이 과정으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변연계에서 인식한 불안을 뇌간 수준인 생리적 흥분으로 알아차리게 되고, 상담에서도 대뇌피질 수준의 개입이 아니라, 변연계의 과부하를 낮추기 위한 감정의 인식, 교감신경계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호흡을 충분히 연습해 나감으로써 지금 현재 스스로 정서를 조절하는 것을 함께 해 나가는 것, 그 자체가 치료라 생각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안감과 화, 짜증 남, 두려움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가 뭔가 지금 안정을 바라는구나"의 신호로 파악하며, 빨라진 호흡과 이야기를 잠시 중단시키고 생리적 반응을 확인하며, 숨을 깊게 쉬어 보도록 하자. 스스로 정서를 조절함으로써 내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돌본다. 여기 지금 이 공간에서.


후각이 다른 감각과 다른 특이한 점은 감각정보가 시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변연계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변연계는 감정과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와 편도체가 있는 부위다. 후각이 즉각적인 감정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오래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도 떠올리게 하는 이유다.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4월 20일 자에는 코로 숨을 쉬면 후각을 통해 호흡리듬이 변연계와 변연계 앞 전전두엽에 전달돼 뉴런네트워크가 동조해 감정을 조절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변연계 앞 전전두엽은 변연계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공포와 불안을 지각하는 영역이다.


멈춰, 그리고 열기를 식히자 stop & cool down

누군가가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나에게 화를 내는 상황은 나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이를 테면, 학교에서 다녀온 외계인이 방에 혼자 있는데 숙제를 했는지, 학원은 안 가는지 등을 지구인이 묻는 과정에서 말투나 표정이 화가 나있거나 조금이라도 짜증스럽다면 외계인은 이를 스트레스로 지각하며 투쟁 또는 도피에 대한 신체가 준비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자동적인 생리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는 이때 상당히 빠른 공포 신경망이 활성화되는데, 반사적으로 빠른 이 체계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감각기관(눈, 귀, 피부, 코 및 혀)에서 받은 정보를 자율신경계를 담당하는 시상에서 감정의 뇌 중 한 부분인 편도로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따라서 자율신경계를 통해 외계인의 몸에서는 심박동 수가 증가하며, 눈이 커지고, 긴장하며, 이 위협에 대해 나를 보호하기 위한 투쟁의 몸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그저 감정의 뇌인 변연계 내의 편도체에서 벌어지는 일로, 지극히 반사적이며 자동적이다. 따라서 이성적 생각과 판단이 마비되며, 그저 나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 돌아갈 뿐이다. 이때는 사실 자칫 잘못하면 지나치게 공격적인 말과 태도가 충동적으로 나오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평상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마음속에 담아 둔 내 외계인에 대한 실망과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을 퍼부을 수도 있다. 혹은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으며, 물건을 던지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과 활성화된 변연계는 진정되어야 한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것은 나 자신에게 "멈춤"이라고 말하며 이 상황을 강제 중단하는 것이며, 내가 안전하고 마음을 진정시킬 어떤 자극도 받지 않을 나만의 공간으로 피신하여 호흡하고 셀프힐링키트 중 한 가지를 하며 흥분된 자율신경계를 그저 진정하는 것이다.


외계인과 나, 우리에게 cool down 열기를 식힐 순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건 가장 어른스러운 자세이며, 가장 훌륭하며, 정서조절의 멋진 모델이 되어줄 수 있는 순간이다.


우리는 천천히 시간을 가지며 인간의 뇌인 전전두엽이 잘 기능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진정이 되면 말로 충분히 전할 수 있다. 학원이 늦어 걱정되는 마음을, 숙제를 계속 안 하니까 혹시 너 자신을 포기할까 봐 두려운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물을 수도 있다, 그저 혼자 두길, 알아서 하겠다는 말에. 알겠다고 그 일은 나의 일이 아님을 받아들이며, 외계인의 일임을 수긍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지나치게 내 마음이 흥분될 때가 아니라, 조금 편해졌을 때,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하도록 하자.

잘 안된다면, 주문처럼 포스트잍에 적어서 한 곳에 붙여 두도록 하자.


지금은 열을 식힐 시간.
내 공간으로 가서 그저 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히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멋진 어른으로 내 외계인에게 기억될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다.



10년 전과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볼 때 가장 큰 성장은 "자기 돌봄" 즉, 나를 더 잘 돌보게 된 것입니다.  

제가 만나는 내담자들이 자기 돌봄, 자비롭게 자신을 생각하지 못하고, 처벌적인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보니 내가 나를 잘 돌볼 줄 알고, 나를 자비롭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은혜롭고 기쁜 일인지 더 체감하게 됩니다.


2011년에 나온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에 많은 청년들의 마음이 울렸던 건, 나를 정말 잘 돌보고 싶지만 잘 안되었던 그 시기의 힘듦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어요. 어쩌면, 수고했어 오늘도 라는 자기 위로가 가장 필요한 건 우리 양육자들일 것입니다. 특히 나 스스로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자기 돌봄이 참 중요할 것이에요.


내가 나를 돌볼 수 있을 때, 내가 나를 좋아하고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힘든 시기의 청소년 자녀들을 감당할 수 있을 테지요. 그들이 많은 뾰족한 말과 행동으로 나를 힘들게 해도 내가 훌훌 털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저 녀석도 힘들구나. 뭐, 나처럼 또 잘 털고 앞으로 나아가겠지 싶어 지겠지요.


2019년 KBS 동백꽃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에서 항상 동백이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던, 늘 인정의 말로 동백이의 자존감을 살려줬던 용식이를 기억하시나요?


"동백 씨, 이 동네에서요, 제일로 세고요, 제일로 강하고, 제일로 훌륭하고, 제일로 장해요. 매일매일 당신이 얼마나 훌륭한지 내가 말해줄게요"라고 말해주던 용식이


우리 양육자들에게도, 나만의 용식이가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없다면, 바로 나 자신이 나의 용식이가 되어주었으면 해요.



제목 그림은 ChatGPT4로 만들었습니다.


https://m.dongascience.com/news.php?idx=22199


부모의 자기 자비, 결혼만족, 온정 수용 양육행동 및 학령기 아동의 문제행동, 홍선표, 2022

김경의, 이금단, 조용래, 채숙희, 이우경 (2008). 한국판 자기-자비척도의 타당화  연구: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 건강, 13(4), 1023-1044.


https://www.annualreviews.org/doi/10.1146/annurev-psych-032420-031047


자해 청소년을 위한 DBT 워크북

정신치료의 신경과학, Louis Cozolino 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