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외계인은 지구인으로부터 정서적 물리적 독립을 원한다
외계인은 십대 아동청소년자녀, 지구인은 오늘도 그들과 동거하며 고군분투 감정소모 중인 우리 양육자들
우리는 모두 내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한 어린아이의 외계인을 기억한다. 내가 싫은 소리를 내고 화를 내도 이내 나에게 다가와 애교를 부리거나 나와의 연결을 원하는, 나를 끊임없이, 지겹도록 쳐다보고 나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던 그 시기의 외계인을 알고 있다.
그러던 외계인이 초등고학년을 맞이하며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가정 밖의 세상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사회 속 또래 또는 다른 가정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지구인과의 규칙을 잘 지켜나가던 외계인은 물음표를 갖게 된다. 인지적 성숙은 외계인이 내 경험 안에서의 인과관계, 비교, 분류, 서열화 등의 논리를 획득하게 한다. 사회적 논리적 규칙을 지켜 나가면서 어른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효능감을 느끼며 기뻐했던 외계인은 초등 고학년이 되며 물음표의 확장을 경험한다. 가설적 상황과 추론 과정을 고려할 수 있게 된 외계인은 부모와 학교, 사회가 정해둔 규칙에 물음표를 갖게 된다. “왜 꼭 그래야 하지?” 가 매사 튀어나온다.
"왜 꼭 그래야 하지?"
왜 밤에 8시까지 집에 와야 해? 친구 철수는 8시 반까지 있던데?
왜 꼭 학교에 늦으면 안 되는 거야? 철수는 지난번에 늦었던데 별일 없던데?
왜 엄마가 가라고 한 그 학원 계속 다녀야 하는 거야? 나 재미없고 집에서 좀 쉬고 싶어. 철수는 학원 하나 밖에 안 다닌대.
자기 나름의 논리로 자기 삶에 대한 자기주장이 생긴다. 이는 자율성에 대한 논리적인 주장이고 "나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예요. 나를 좀 큰 사람으로 대우해 주세요.."라는 표현이다.
부모로부터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혼자 힘으로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 중학생이 되어갈수록 부모와의 정서적 연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며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선택들에 있어서도 나 스스로의 자율을 주장하게 되며 자기주장과 자율에 대한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그야말로 자율성 쟁탈을 위한 지구인과의 대전쟁이 펼쳐지게 된다.
이렇게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의존을 원하는 양가감정의 이 시기 청소년이 바라는 부모는 아래와 같다.
우리에게 관심이 있고 필요할 때 손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부모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부모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며 우리를 찬성하는 부모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모습, 단점까지도 받아들여주는 부모
우리를 성인으로 대우해 주는 부모
좋은 성격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며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는 부모
이렇게 이상적인 부모상을 두고 늘 지구인과 치열하게 투쟁하는 외계인은 왜 이렇게 독불장군일까? 왜 이렇게 충동적이고 지나치게 이기적이며 괴물 같은 외계인의 모습이 되는 걸까?
내분비계의 성호르몬의 급증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폭발적인 급증은 충동적이고 예민하며 감정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게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 시기 외계인을 둔 지구인의 성호르몬은 감소하므로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떨어지고 기분은 불쾌해지며 인내심을 더욱 발휘하기 어렵게 되고 스트레스에 취약하게 된다. 갱년기 시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가정 내에 급변하는 두 세대는 작은 불씨에도 쉽사리 감정의 극단을 치솟아가며 나의 바닥을 드러내게 된다.
여전히 공사 중인 전두엽과는 달리, 뇌에서 감정적 반응 및 정서, 그리고 동기를 담당하는 부위인 변연계는 청소년기에 거의 다 완성이 되어져 정보에 대한 감정적인 처리가 더욱 풍부하고 정교해 진다. 다양한 압박과 역할요구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스트레스가 높은 시기, 이 시기 감정의 뇌인 변연계 안의 편도체는 자꾸 많이 활성화되어 다양한 자극을 불안, 위협감이라 지각하며 불안정해지고 짜증을 내기
쉬운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아직 인간의 뇌, 특히 전전두엽이 미성숙한 시기 이므로 현명하게 문제해결을 하고 차근히 자신의 감정, 타인의 감정을 돌아볼 여유도 능력도 없다. 공감, 자신을 돌아보는 메타인지, 적절한 판단과 문제해결, 정서조절 모두 전전두엽의 기능이다 보니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전전두엽은 그야말로 외계인 같은 모습을 드러내게 하며 지구인의 속을 타들어가게 한다.
지구인이 그저 외계인을 그대로 두는 것, 필요 요청을 할 때에만 같이 함께 도와주는 것, 기본적인 의식주 만 잘 제공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외계인의 스트레스를 증가시키지 않는 것 같다.
학원을 조금 늦더라도, 숙제를 조금 덜 하더라도, 주말에 내리 잠을 자더라도,
만약 학교를 잘 다니고, 자발적으로 하려는 것에서 의지와 에너지를 발휘 한다면 많은 실수와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이미 잘 해나가고 있는 것에 충분히 주목하는 지구인의 시선이 사실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시절 나를 보며 웃고 울며, 나에게 늘 졸랑졸랑 다가왔던 꼬마는 떠났다. 더 근사하고 멋진 성장을 위해 급변하는 외계인으로 나에게 존재한다. 내가 화를 내고 혼을 내도 이내 외계인은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왔다. 근데 이제 십대가 된 외계인. 나는 외계인을 본다. 근데 외계인은 더 이상 나를 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외계인의 손을 놔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외계인의 떠난 빈자리, 그 공허한 내 삶의 빈 여백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내 삶의 계획과 재 정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오롯이 아이로부터 독립된 나로서의 내 삶을 계획해야 하며, 이 시기를 계속 준비해야 한다. 드디어 나의 다음 stage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시기 내가 철저히 독립되어 있고 건강하지 않다면 나는 이 시기를 버티기가 너무 어렵다. 외계인의 손을 놓지 못하는 나는 외계인과의 사투에서 모욕스럽고 치욕스러우며 무시감과 외로움에 절망감을 깊게 느끼게 된다. 더 멋진 내 아이와 나의 다음 단계를 위하여 이제는 외계인의 손을 놔주어야 한다.
부모와 교사의 자율성 지지가 높을수록 청소년의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인 기본심리욕구 충족 정도는 향상되었다. 또한 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의 자율성 지지는 학교생활 만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청소년의 자율성 지지는 자아탄력성과 긍정적 상관을 가졌으며, 부모의 심리적 통제는 자아탄력성과 부정적인 상관을 가졌는데 이는 부모가 자율성을 지지할수록 심리적으로 통제하지 않을수록, 청소년 자녀의 자아탄력성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어떨까?
과학고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공감적 이해를 포함한 정서적 보살핌과 자율적 의사결정에 대한 존중을 더 많이 받고 학업성취에 대한 압력을 적게 받을수록, 일상생활에서의 행복감과 만족감이 더 많이 보고되었으며, 학업수행에 대한 자신감과 능력감이 높을 뿐 아니라 또래관계에서도 관심과 인정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계인이 방에서 계속 게임만 하는 것 같아서, 해야 하는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아서 감시 차원에서 문짝을 떼어버리는 지구인이 있을 수 있다. 또는 지속적으로 문자와 전화를 통해 지금 뭐하는지,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을 계속하는 지구인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하루의 스케줄을 외계인 대신 짜주고 이것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수행하지 못하는지를 체크하며 잘하지 못했을 때 혼을 내는 지구인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건강한 욕구인 외계인의 독립의 욕구를 방해하며 외계인의 자아탄력성, 행복감, 만족감, 스스로에 대한 유능성을 모두 저해한다.
결국, 정신적으로 건강할수록 이 상황에 놓인 외계인은 적극적으로 지구인과 사투를 벌이며 투쟁할 것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면 우울하고 무기력해 생기를 잃게 된다.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메마르고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 무늬만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욕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렇게 된 외계인은 사춘기가 끝나도 성인이 되어도 지구인으로부터 건강한 독립을 하지 못한 채 의존해 살아가게 되며, 지구인은 자율성 발달이 실패한 외계인을 떠안고 살아나가야 한다.
독립된 성인으로 살기 위해 자율성이 보장되며 실패해도 실수해도 그 경험을 통해 다시 딛고 일어서는 외계인을 지켜봐 주는, 지구인의 평정심 유지는 매우 중요하며, 사춘기를 맞이한 외계인이 이 시행착오를 함께 견뎌내 주는 것이 지구인의 목표 안에 세워져야 한다.
기억하자! 외계인이 혼자 삶을 꾸려 나가는 연습은 필수
지구인의 속이 터지더라도 외계인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혼자서 독립해서 살아나가는 연습을 해나가야 한다. 지구인은 그저 격려하며 지켜보아야 할 때이다.
그냥 지켜보기 어렵다면 이것을 적어나가 보자.
우리 자녀의 유능감은 어떤 상황, 어떤 것을 할 때 보이나요? 지금까지 우리 자녀가 잘 해온 것, 성취해 낸 것, 올해 해낸 성취 등을 떠올리며 적어봅니다. 또한 그 성취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적어보세요.
우리 외계인의 성취는 생각보다 많다. 우리 모두 외계인의 강점 수집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십대자녀와의 사투 중이신가요?“
정신적으로 건강할수록 자율성 확보를 위한 사투는 거칠어집니다. 병리적일수록 수동적으로 양육자의 훈육에 맞춰나갑니다. 건강한 사투를 벌이는 십대자녀를 불안해하지 않고 환영하는 시선을 가지시길 바라는 마음에 십대의 자율성에 대해 적었습니다.
십대자녀와의 대환장쇼를 진행중이시라면 조금만 견뎌주세요. 고등학생 이후부터는 훨씬 나를 덜 힘들게 합니다(건강한 발달을 하고 있다는 전제로요). 그때는 이미 뇌성장으로 더욱 성인 같아지면서 남이 되어 각자 살게 되기 때문이지요. 슬프지만, 갈길을 걸어나가는 자녀와의 독립을 저도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참고문헌
청소년 심리학, 정영숙 외, 시그마프레스
부모의 자율성 지지와 통제적 양육이 청소년의 학업성취와 또래애착에 미치는 영향: 자기 결정성 동기의 종단적 매개효과 홍국진, 이은주, 2017, 교육심리연구
부모와 교사의 자율성 지지가 청소년의 진로성숙도에 미치는 영향: 기본심리욕구의 매개효과와 성별 차이에 따른 다 집단 분석, 홍순혜, 2021
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의 자율성 지지가 학교생활 만족에 미치는 영향: 사회적 위축과 교우관계의 매개효과, 이의빈, 청소년학 연구, 2020
청소년이 지각한 부모의 자율성지지 및 심리적 통제와 자아탄력성의 관계에서 자기 수용의 매개효과, 이지련, 2020
과학고생이 지각한 부모양육태도와 주관적 안녕감의 관계: 학업적 자기 효능감과 또래관계의 매개효과, 송미라 한기백, 한국청소년학회, 2015
https://m.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1703012051005#c2b
그림출처_https://institute.careerguide.com/healthy-parent-teen-relationshi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