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유라 Oct 02. 2024

슬로우보우트 투 차이나-2. 베이징 그리고 츠펑(2)

붉은 봉우리 혹 붉은 산


  - 붉은 봉우리 혹은 붉은 산     


   베이징에서 돌아온 후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가을에 시간을 내서 대련과 심양을 거쳐서 외몽고 자치주의 적봉을 가보기로 했다. 나의 중국 여행계획은 대개 가고 싶은 목적지를 먼저 정한다기 보다는 교통편을 먼저 정한 후 목적지가 결정이 되곤 했다. 적봉赤峯의 남서쪽엔 피서산장이 있는 승덕承德이 있고, 남동 쪽엔 우리의 고대사와 연관이 깊은 조양朝阳이 있다. 참고로 자오양 주변은 우리 고대문화와 관련이 깊은 유물인 비파형 청동검이 출토되는 지역이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이 끌려와 정착했다가 훗날 발해가 건국하자 유민들이 다시 합류했던 역사가 있는 땅이다. 츠펑에 가기 위해 베이징에서 출발해서 가는 것이 가깝고 편리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대련에서 출발해서 심양을 들르기로 했다. 심양에서 자정 무렵에 기차를 타면 다음 날 아침에 적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봉赤峯, 한자로 ‘붉을 적’에 ‘봉우리 봉’자를 썼다. 중국을 좀 아는 지인은 적봉을 ‘듣도보도’ 못한 도시라고 했다. 나도 여행계획을 짜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유명한 ‘홍산 문화’의 홍산紅山이 적봉에 있다는 것을 안 후에도 적봉과 홍산을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적봉 역에 도착하여 아침에 역을 빠져나오면서 적봉 역 간판을 보니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몽고어와 적봉赤峯이라는 한자어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그 땅은 근세 이전엔 몽고의 땅이었다.

몽고어와 '적봉' -적봉기차역


 적봉의 몽고어 지명은 ‘자오우다멍’昭乌达盟이었다. 하지만 1983년 즈음, 몽고 고원에서도 비교적 바깥쪽인 자오우다멍은 행정구역 상 ‘시’가 되어 ‘적봉’이라는 행정구역 이름을 받았다. ‘홍산’이 아니었다. 홍산 문명의 유적지가 발견되기 오래전부터 홍산은 항상 지역의 랜드마크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홍산’을 ‘적봉’으로 살짝 미묘하게 비틀었다. 그들은 무엇을 피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황하 문명과는 또 다른, 황하 문명 보다 더 오래 전에 대륙에 존재하던 요하 문명과 깊은 관련이 있는 홍산을 섣불리 언급하기 어려운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시내 버스를 타고 적봉 시외버스터미널로 갔고,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적봉시 산하 빠림주어치의 린뚱현으로 향했다. 행정구역상 적봉시라지만 린뚱현까지는 세 시간 반 거리였다. 린뚱으로 가는 길은 도시를 벗어나 몽고 가까이, 초원 깊숙이 가는 길이었다.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창 밖으르 이국적인 모습이 보였다. 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넓은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드넓은 초원의 끝엔 능선이 뾰족한 바위산이 보였는데 아주 먼 거리일 것 같았다. 그리고 초원에 누워서 쉬거나 풀을 뜯는 양이 점처럼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시베리아보다는 겨울이든 여름이든 기온이 높은데 왜 그 땅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했었다. 비가 적어서일까, 아니면 고도가 높아서일까.  


  나는 적봉에 가서 홍산에 올라가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얕은 산이고 포장된 등산로를 따라 산책처럼 다닐 수 있다고 하고, 홍산문화로 유명한 유물들 역시 적봉시에 있는 홍산문화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엔 홍산문화의 대표 유물이 나온 니우량허 박물관이 지어지지 않을 때였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보기 위해 적봉에 가기를 원했다. 

그리고 간 김에 요나라 상경 유적지가 있는 작은 마을까지 가보기로 했다. 

요나라 상경 유적지가 있는 린뚱현은 행정구역상 적봉시 산하 린뚱현이었지만, 적봉시내에서 버스를 타면 무려 세 시간 반이나 초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려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적봉을 거쳐 몽골 초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적봉시에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빠림주어치의 린뚱현까지 갔는데, 린뚱현은 거란족의 요나라가 처음 국가의 기틀을 다진 지역이었다. 여기서 몽골 지명인 ‘빠림주어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하얼호우터’, ‘허룬베이얼’, ‘******맹’ 같은 지명이 너무 낯설고 어려워서 여행계획을 짤 수가 없어 여행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이런 행정 지역명 중 무슨무슨 ‘맹’이나 ‘치’는 몽골이 아니라 청나라 시대의 행정구역 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지적하자면 적봉이나 임동같은 나에게 그래도 익숙한 한자어 지명이었는데 이것들은 아마 청나라와 중화인민공화국을 거치면서 부쳐진 이름이었다. 

초원을 많이 이용하던 유목민의 땅이라서 세세한 지명이 없거나 있어도 몽고어로 있던 그 지명은 없어지고 이제는 적봉이나 임동 같은 한자어 지명으로 불리게 된 것일 것이었다.       

요왕실의 초대 왕실 사원과 상경터가 남아있고, 상경터에서 나온 유물을 보관하는 박물관이 있는 도시였다. 거란족의 역사에 관심이 지대한 관심으로 계획한 여행은 아니었다. 먼저 야간 기차로 갈 수 있는 이국적 지역을 찾다가 몽고  고원의 초원지대로 가는 입구 같은 도시인 츠펑을 찾아냈다. 그리고 츠펑에서 3시간 반 버스를 타고 다시가는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내가 요상경 유적지가 있는 린뚱에 도착했을 땐 낮이었다. 숙소를 잡고 식사를 한 후, 택시를 대절해서 먼저 초기 요 왕실의 사원이 있는 산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길이었지만 가는 길에 보니 린뚱현 시내엔 나름 공사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몽골 초원 지역이다 보니 둘러보면 사방으로 초원이 널려 있는 곳에 솟아있는 그리 높지 않은 바위 산이었다. 바위산엔 동굴도 있어서 석굴암처럼 동굴 안에 모신 부천님도 있고, 우리의 성황당처럼 오방색 천을 매단 당나무도 있는 산이었다. 거란족의 고향이면서 근본 뿌리와 같은 곳임에 틀림 없었다. 

그 산엔 거란족의 왕실과 연관된 여러 가지 문화재가 남아 있는 산이었다.      

심양에서 적봉을 거쳐서 좀더 몽골 고원에 가까운 임동마을(林东镇 린뚱쩐혹은 巴林左旗)에 갔었다. 임동은 초원을 뛰어다니느 말과 소를 볼 수 있는 몽골 초원이었다. 그리고 초기 거란족의 발상지로 요나라 초기 상경유적지가 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택시를 불러서 요나라 왕실의 초기 사원(召庙)을 찾아갔다. 산이 많지 고원에 있는 산이라서 그런지 크지는 않지만 영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산 입구에서 나는 거대하고 괴상한 조형물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했다. 

2층 건물만한 향로 조형물


그곳은 몽고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거란족의 부족연맹체가 나라를 처음 세우고 도읍을 정한 땅이었다. 그런데 저 땅에 왜 저런 정鼎 모양의 솥인지 향로인지 알 수 없는 조형물이 있는 것일까? 높이도 대략 이삼층 빌딩만했다. 그 정鼎은 아무리 봐도 그 땅에서 살아온 몽고족이나 거란족 혹은 다른 유목민족의 문화와는 상관없는 상징물이었다. 보자마자 한족의 문화횡포라고 생각했었다. 중국어도 못 했지만, 이제는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현지인들에게 저 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유목민족의 영험한 기상이 서린 땅에 그 정기를 가로막기 위해 한족이 세운 상징조형물 같아서 씁쓸했다. 

이전 01화 슬로우보우트 투 차이나-2. 베이징 그리고 츠펑(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