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7 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낭만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랑을 맹세한 것도, 아름다운 이별을 한 것도, 타임캡슐을 묻고 몇 년 뒤에 열어보자는 것도 아닌 그냥 단순히 기분 더러운 일이었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우리는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웠다.
오래전 일이다.
이제는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고, 그저 대차게 싸운 일 밖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동창들과 오랜만에 여행길.
그 여행지에는 멋진 느티나무 한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공터가 있었고, 7명의 친구들 중 나와 그 자식 단 둘이서만 그 나무 아래에 서 있었고, 다투기 시작하고 30분 뒤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으로 끝이 나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야 쉽게 끊어질 수도 있는 것이긴 하지만, 함께 지내온 세월이 10년이 넘은 사람과의 끝이 이렇게나 지저분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싸웠던 것 같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이유는 사소한 것일 뿐이지만, 그 자식과는 그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항상 사소한 것들로 인해 다투며 지내왔던 것 같다.
서로를 위해 진작에 연을 끊고 살았어야 할 사람들.
우리가 그 둘이었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 따위 언제든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나 보다. 서로에 대한 조그마한 배려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책임질 것들이 많아지고, 신경 쓸 것이 많아질 때, 얼마나 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 긴 세월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많은 친구들과 길을 달리하고 살아왔다.
이유야 천차만별이지만, 걔 중에 대부분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식은 아니었다.
더 빨리 끊지 못한 내가 미웠고 아쉬웠다.
서로가 서로의 감정쓰레기통이었던 듯 참 지저분했다.
지금에 와서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 함께하던 친구들과 나는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오고 있고, 그 자식은 뭐 하고 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참 쪼잔하고 유치하고 치사한 생각이지만, 내가 그 자식보다 나은 삶을 살았나 보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기도 하다.
하나도 아쉽지 않다고 수없이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이따금 씩 생각이 날 때마다,
어쩌면 나는 조금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올 해의 나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조금 더 행복한 기억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