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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허영 사이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by 글짓는 목수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


여자들은 사랑을 원하지만 돈이 없는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물질과 정신이 모두 풍요롭길 바란다. 그것을 남자를 통해 채우려 한다. 여자들은 돈 냄새를 잘 맡는다. 여성의 유전자는 강한 남성, 우월한 남성을 가장 빨리 파악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그래야만 자신과 자신의 아이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암컷이 본성이다.

오만과 편견 중에서

현대에 강한 강하고 우월한 남성은 바로 돈을 가진 남성이다. 물론 이제 현대여성은 독립적으로 변했지만 30만 년을 이어온 여성의 유전자의 속성이 고작 100년도 채 되지 않아 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부유한 남성 주변에는 여자들이 득실거린다. 반대로 가난한 남성 주변에는 여자가 없다. 그래서 남자는 돈을 좇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싶다면 벌어야 한다. 열심히... 그것도 남들보다 많이 벌어야만 여자의 몸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돈도 많고 시간까지 많다면 더 많은 여성을 품을 수도 있다.


남성의 부는 여성과 자녀의 수와 비례한다


일론 머스크는 5명의 여자에게서 14명의 자녀를 가졌다. 남자의 부는 여자와 자녀의 수와 비례할 수 있다. 부가 넘쳐나면 유전자도 잘 팔린다. 물론 모든 부자 남성이 그렇지는 않다. 이건 사회 도적적 관념에 얽매여 있는 남성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보수적인 동양의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남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중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요즘 같이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이렇게라도 낳을 수 있다면 낳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론머스크 가계도

남자에게 여자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매력 있는) 여자를 마다할 남자는 있는가. (물론 여자도 그럴 수 있다) 그건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남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때문이다. 수컷의 생물학적 목적이다. 하지만 이제 남성들은 변했다. 부유한 독신 남성은 여성을 원하긴 하지만 반드시 아내를 원하진 않는다. 부유하다면 많은 여성을 누릴 기회를 갖는다. 하지만 부유한 남성은 이제 여성이 자신이 목적이 아닌 돈을 위해 다가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사람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닌 세상이 아니 던가. 그 누구도 자신이 수단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남자는 돈이 많아도 돈이 적어도 결혼을 기피하게 된다. 전자는 잃기 싫기 때문이고 후자는 비참해지기 싫기 때문이다. 뭐든지 적당히 가져야 삶이 온전해진다.


아는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고전이었다. 고전 작가들은 남성이 대부분이다. 그건 과거 문학(글)의 세계가 남성들이 전유하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 중에도 여성작가가 있다. 남성문학에 그늘에 가려 있던 그녀들의 문학은 어쩌면 좀 더 치열했을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글을 쓸 기회도 적었지만 쓰는 것이 알려지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졌다면 그 여성 작가의 글솜씨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빛을 잠시 가릴 순 있어도 없앨 수는 없는 법이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제인 오스틴 (1775~1817)

제인 오스틴,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고전작가이다. 확실히 남성의 문체와 여성의 문체는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섬세한 감성과 세심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이건 여성이 남성보다 시각적인 관찰에 더 뛰어나다는 의미일 수 있다. 여자는 시각적 정보를 통해 감성적이고 또한 본능적인 느낌을 알아챈다. 남자는 시각적 정보를 통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으로 이어가려 한다. 여성은 그 정보 자체를 파악하고 남성은 그 정보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이 사물과 대상의 본질을 그대로 볼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어쩌면 여성이 대상 남성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상대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채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가 자신의 애정을 상대방에게 감쪽같이 숨기면, 그 사람을 잡을 기회를 놓칠지도 몰라… 상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도 진심으로 사랑에 빠지는 사랑은 드물어. 대개의 경우 여자 쪽은 실제로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호감을 표현하는 게 좋아.”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에서 -


여성들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성에게 실망하고 눈치를 채지 못한다며 질책하고 나무라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왜 이것이 남성의 잘못처럼 여겨지는 것인지 나는 이해하기 힘들게 되었다. 한국에서 살 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건 남자의 잘못이 아니다. 표현하지 않는 여성의 마음을 알아채는 수수께끼 게임이 사랑은 아니다. 이건 상대를 가지고 테스트를 하는 것이고 기만이다.


어쩌면 이런 것이 한국의 남녀가 쉽게 어우러지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언제나 남자가 먼저 다가가야 하고 호감을 더 많이 표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냐는 한국의 매스컴과 문화 매체의 영향과 관련이 크다고 생각한다. 너무 기울어졌다. 남녀의 사랑은 서로가 당기는 것이지 한쪽의 힘으로 당겨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모든 존재는 모두 중력을 가진다. 서로의 중력이 당기는 것이다. 별과 별이 만나는 것이지 별(항성)과 행성이 만나는 것이 아니다. 여자는 별에 종속되어 주변을 도는 행성이 아니지 않은가?

"결혼 생활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렸어. 서로의 기질을 속속들이 안다거나 원래부터 아주 비슷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냐."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에서 -


소설은 부유한 독신 남성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결혼이 인생의 가장 큰 화젯거리인 당대의 여성들에게는 돈과 남자를 함께 거머쥐는 것이 미래의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 보험과도 같다. 그런데 결혼은 해봐야 알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잘 맞는 남성과의 결혼을 꿈꾸지만 잘 맞는 것은 결혼 전에 서로가 맞춰주던 것이었지 결국 잘 맞는 상대는 없다. 그 누구도 나를 위해서 태어난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개별 소비자의 성향과 취향에 맞춰서 찍어낸 상품처럼 나에게 맞는 상대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다면 신은 널 위해 사람을 만든 것이 된다. 그럴 순 없다.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어있다. 그 개성과 성향이 비슷하게 보일 순 있어도 공장에서 만들어진 완전히 열쇠와 열쇠구멍처럼 한 번에 딱 맞아떨어질 수 없다.


결혼이란 결국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지 맞는 상대가 만나서 하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남녀가 맞지 않는다며 헤어짐을 맞는 상대를 찾을 때까지 이어간다. 이걸 알지 못하기 때문에 헤어짐은 반복된다.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지만 모두가 행복을 위해 결혼을 한다.


행복은 근원은 자신 안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모두가 행복을 타인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무지함을 알지 못한다. 소설은 그런 무지한 여성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자를 통해, 결혼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는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돈 많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다.

“기질은 세월이 지나면서 계속 달라져서 결국은 서로 부딪치게 되지. 인생을 함께 보낼 사람이라면 결점은 되도록 모르는 게 좋아.”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에서 -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는 남녀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 나이가 나이인지라 주변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는 중년의 부부들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그들은 이 문장에 공감할 것이다. 결점을 모르기가 쉽지 않다. 함께 살면 그것들은 어떻게든 다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결점을 모른 척해줄 수 있어야만 결혼생활이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부부는 서로가 그 결점을 꼬집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려 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겨난다. 물론 생활공간을 함께 써야 하기 때문에 많은 협의와 절충이 필요하지만 2~30년을 각자 따로 살아온 삶의 방식이 바뀌겠는가? 또한 결혼 이후에도 각자의 삶(사회활동)이 있기에 각자의 다른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그 속에서 또 부딪친다. 이 과정이 서로에게 고통이 된다. 그래서 결혼생활은 서로에 대한 기대를 놓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가난한 남자


한국 경제를 떠받치던 남성들의 세계였던 제조와 건설의 부흥기가 막을 내리고 다가 온 경제 불황과 저성장이 가난한 남자들을 양산해 내기 시작했다. 이미 여성들의 눈은 경제 부흥기를 거치고 여권이 신장됨에 따라 높아질 데로 높아졌다. 한 번 올라간 눈높이와 생활 수준은 낮출 수가 없는 법이다.


기준 미달의 가난한 남성이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아내가 줄어듬을 의미한다. 부유한 남성은 원래 부유해서 결혼을 않지만 그래도 중산층 남성은 아내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중산층 남성이 무너지면 아내는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족 번식의 욕구를 참지 못한다면 수입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은 다민족 국가이다. 많은 해외에서 온 여성들이 한국 남성의 유전자를 잉태하고 인구를 보전해 죽고 있다.

유아세례

매주 교회 예배당에 나가면 보는 흥미로운 일이 하나 있다. 예배 시작 전에 새로 태어난 아기가 첫 예배에 나오면 그 아이를 모든 성도들에게 소개하고 유아 세례를 준다. 나는 조용히 예배를 드리고 싶어 대형 교회에 나가는데 그곳에는 해외 이주 노동자와 국제결혼을 한 부부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부부는 보통 한 명의 자녀를 데리고 나와 유아세례를 하는데 비해 다문화 가정은 기본 2~3명이더라는 것이다. 언니 오빠가 막내 아기의 세례를 구경한다. 그들은 과연 부유해서 더 나은 것일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하다. 한국의 남녀는 물질경제에 의존해 인간을 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의 남녀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환경에서 멀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경제는 남녀의 사랑과도 직결된다. 이건 이미 일본이 10년 전에 겪었던 것이다. 같은 방식의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는 이 과정을 피해 갈 수 없다. 불황의 시기에 태어난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사토리 세대이고 한국은 MZ세대(혹은 N포 세대)이다.


여자는 남자의 물질과 사랑을 모두 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숨길 수 없는 유전자 깊숙이 박힌 본성이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모두 얻을 수 없다. 상대가 가진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가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남녀는 함께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PRIDE & PREJUDICE

“오만은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뿌리를 두고, 허영은 남이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지”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중에서 - [시공사_고정아]


소설은 말한다. 오만과 허영은 둘 다 좋지 않다. 하지만 오만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자존감이 넘쳐서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허영은 항상 남들을 의식하며 더 많고 좋고 예쁘고 고상하게 보이려는 것이다. 한국은 좀 그렇다.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다. 허영은 서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남녀는 서로의 허영에 넘어가서 사랑하지만 그 허영의 기만이 드러나면 사랑이 아니었다며 서로를 떠나간다.


남녀가 함께 하지 못하고 계속 헤어지는 이유이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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