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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사랑과 덧없는 사랑 사이

메꽃과 나팔꽃에 관한 상념

by 글짓는 목수

“어, 나팔꽃이네, 그런데 색깔이 왜 이렇지?”


이른 아침 강변을 산책하다. 강변 바위틈에 피어난 꽃을 발견했다. 나는 언제부턴가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엔 산에 오르면 겨울 때와는 다르게 시간이 더 지체된다. 꽃을 보면 그 자리에 서서 혹은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관찰하다 다시 길을 가기 때문이다. 며칠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꽃이 보였다. 나는 산책로에서 벗어나 강가로 조심히 내려가서 그 꽃을 들여다보았다. 모양은 분명 나팔꽃 같은데 색깔이 분홍빛이 감도는 하얀색이었다. 깔때기 모양의 꽃잎 가운데는 노란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형상이었다.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한 명의 여자(암술)를 5명의 남자(수술)가 둘러싸고 올려다보고 있다. 강변 바위틈 곳곳에 하얀 꽃들이 작은 군집을 이루었다. 나는 또 이리저리 꽃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꽃 이름을 검색했다.

강변에 핀 메꽃들

‘메꽃’이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요즘 처음 들어보는 꽃 이름이 많다. 봄이 오니 곳곳에 꽃이 피어나니 처음 듣는 이름들이 한 둘이 아니다. 세월의 흔적이 남긴 기억들 때문인지 그 꽃들의 모습이 아주 낯설지 않지만 한 번도 그들의 이름에 대해 궁금해 본 적이 없었다. 김춘수는 지금 내가 느낀 이런 감정을 시로 남겼던 모양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중에서 –


나 또한 그 꽃들의 이름을 찾아서 불러주고 나니 그들의 존재가 나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내년 이맘때 다시 보게 된다면 반갑게 이름을 불러줄 수 있을 것이다. 꽃이름을 알게 되면 우리는 더 많을 것을 알 수 있다.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이 이름으로 그것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려주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메꽃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팔꽃과 같은 과의 꽃이란다. 비슷하게 생긴 이유가 있었다.

나팔꽃 (Morning Glory)

나팔꽃은 나에겐 아주 친근한 꽃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다. 그 화단에 나팔꽃을 키웠기 때문이다. 여름이 다가오면 화단에 보라와 파랑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오묘한 색깔의 나팔꽃이 활짝 피어났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기둥을 세워주면 타고 올라간다고 했다. 나는 나팔꽃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기다란 나무 작대기를 화단에 꽃아 주었다. 그렇게 나팔꽃은 막대기를 타고 높이 올라갔다. 매일매일 올라가는 나팔꽃을 보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어린 시절 유독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많이 꿨는데 그 나팔꽃도 함께 하늘로 올라가길 바랐던 모양이다.


메꽃도 같은 덩굴 식물이라 나팔꽃처럼 타고 오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팔꽃처럼 무섭고 빠르게 오르지 않고 조용히 천천히 타고 오른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 하루가 다르게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나팔꽃을 보고 자라서일까? 커서도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성공으로 향해가는 삶을 원했던 것 같다. 숨 가쁘게 올라가야만 하는 삶은 마치 나팔꽃을 닮아 있는 것 같다.

일곱 천사와 일곱 나팔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 요한계시록 8:6 -


성경에서도 나팔을 발견했다. 나팔을 불며 천사가 내려오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쓰여 있더라. 그래서 나팔꽃은 그렇게 하늘로 높이 올라가려 했던 모양이다. 나팔꽃이 하늘에 닿으면 천사들이 그것을 하나씩 떼어내고 나팔을 불면서 땅으로 내려오는 상상을 했다. 세상 사람들이 계속 위로 올라가려고 숨 가쁘게 살아가는 것이 마치 나팔꽃 같아 보인다. 하늘에 닿은 나팔꽃은 소리를 내며 다시 내려온다. 그럼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해야 한다. 그건 현재의 모든 것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의미 없는 것으로 사라져 버림을 의미한다. 새로운 시작은 항상 파괴를 전제한다. 모든 곳이 무너지고 파괴된 폐허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는 법이다.


나팔꽃(Morning glory) vs 메꽃(Day glory)


나팔꽃은 빠르게 올라가고 또한 강렬한 인상(색깔)을 지녔지만 생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나팔꽃은 영어로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라고 한다. 해가 뜨는 아침에만 피었다가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향해가면서 그 생기를 점차 잃어가는 꽃이다. 하지만 메꽃은 다르다. 메꽃의 영어 이름은 데이 글로리(Day Glory)이다. 단어에서 느껴지듯 메꽃은 늦은 오후 저녁까지 종일토록 피어있다. 해가 뜨지 않는 흐린 날에도 꽃의 생기를 잃지 않고 피어있는다고 한다.


태양(빛)이 없어도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빛만 바라보는 나팔꽃과는 다르다. 빛이 없으면 생기를 잃어버리는 꽃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꽃도 있다. 인간들도 양지에만 사는 것이 아니고 음지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있듯이 세상 모든 만물은 음양이 골고루 존재한다. 빛이 있든 없든 한결같은 모습을 가진 메꽃에 더 애정이 간다. 그건 나이가 들고 세상의 밝음과 어둠을 모두 알게 되고 나서도 초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이다. 빛만 보는 자들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을 볼 수 없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월의 나팔꽃

견우꽃(牽牛花)과 나선꽃(旋花)


한자를 찾아보았다. 나팔꽃은 견우꽃이란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음력 7/7) 무렵에 꽃이 가장 생기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칠월의 가장 길고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그 자태를 뽐내는 나팔꽃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면 메꽃은 나선형의 꽃잎의 모양과 빙글빙글 돌면서 감고 올라가는 꽃의 생태를 이름에 반영했다.


나팔꽃은 한순간의 모습이 이름이 되었고 메꽃은 생김새와 생태가 이름이 되었다. 때문에 나팔꽃은 순간의 강렬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메꽃은 조용한 일상처럼 잘 기억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강렬한 인연을 찾지만 우리와 함께 하는 건 항상 메꽃처럼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임을 모른다. 항상 곁에 있는 자들의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화려함과 강렬함에 끌리고 편안함과 한결같은 것에 무심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두 꽃의 모습을 통해 알게 된다.

나선 메꽃 (Day Glory)

끈질긴 사랑과 덧없는 사랑 사이


'끈질긴 사랑'은 메꽃의 꽃말이고 '덧없는 사랑'은 나팔꽃의 꽃말이다. 꽃은 각자 이름이 있듯이 각자 그들만의 꽃말을 지니고 있다. 꽃말은 모습과 생태를 반영해서 지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내가 오늘 아침 두 꽃을 떠올리며 글을 쓰게 된 연유도 바로 이 꽃말이 준 영감 때문이었다.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가 사람을 기억할 때 이름으로 기억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준 인상과 느낌으로 기억하는 이유이다. 이름은 잊혀도 그 사람의 인상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자신의 명함이 적힌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려 한다. 이름과 함께 직업과 소속과 직위 그리고 연락처로 자신을 알린다. 꽃말은 없고 자신의 실용적 의미와 목적만을 알린다. 자신이 가진 자신만의 고유의 인상은 사라지고 모두가 비슷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에 수많은 꽃들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듯이 사람들도 그 많은 이름으로 그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여태껏 모은 명함들

내가 꽃의 이름만으로 기억하지 못해 항상 그 꽃의 꽃말을 찾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꽃말이 주는 느낌과 인상이 그 꽃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이 나에게 남긴 인상과 추억과 그 느낌이 다른 이들과 다른 무언가를 남겼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잊지 못하게 된다. 나는 10년 넘는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명함을 받았다. (해외 영업 쪽 일을 하다 보니 국내외의 수많은 명함을 주고받았다) 얼마 전에 오래된 나의 물건들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 명함집들을 발견했다. 명함집에 있는 그 많은 명함을 봐도 누가 누군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더라. 그건 그들이 내게 남긴 건 그저 종이 조각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기억되지 않는 덧없는 관계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 많이 만나고 많이 알아내고 많이 얻어내지만 정작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 꽃의 생태와 습성을 외웠을지는 모르지만 꽃이 주는 느낌과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타인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덧없는 관계들이다.


우리는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것에만 사랑과 관심을 쏟는다. 이건 모두 덧없음이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끈질기게 기다리는 사랑이 더 소중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깨닫는다면 당신은 이전에는 없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건 대부분은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 그리고 항상 지나치던 곳에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덧없는 사랑을 쫓지 않고 끈질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끈질긴 사랑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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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